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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와 선비정신

사오정버섯 2007. 2. 2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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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과학세상] 매미와 선비정신

(전문게재)

“어렸을 때 선친께서 들려 주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조선시대 임금이 평상복으로 정사를 볼 때 머리에 쓴 관을 익선관(翼蟬冠)이라 하는데, 그것은 관 뒷면에 달린 장식이 매미의 날개와 같았기 때문이라 하셨다. 임금이 관을 쓸 때마다 매미 날개의 의미를 생각하게 했고,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고자 하는 의지가 그 관에 나타나 있었다.

힘차고 낭랑한 매미 소리에는 비밀이 없고 거짓도 없다. 그리고 매미는 집이 없다. 달팽이, 우렁이도 집이 있는데. 매미는 깨끗하여 수정같이 영롱한 이슬 몇 방울을 마시고 살 뿐이다. 집이 필요 없으니 부동산 욕심이 없고, 먹는 것이 별로 없으니 사리사욕도 없다. 또 먹은 것이 없으니 버릴 것도 없어 뒤가 깨끗하다. 죽을 때를 미리 알고 첫서리 내리는 밤에 어디론가 사라진다. 떠나야 할 때는 주저않고 떠날 줄 안다.…”

필자가 쓴 책 ‘생물의 죽살이’ 중 ‘임금님의 머리에 앉은 매미’라는 글의 일부다. 매미의 삶을 객관적으로 서술한, 선비정신이 물씬 풍기는 글이다. 한마디로 매미처럼 살다 죽고 싶다. 맑디 맑아 작은 거짓 않으매 좋고, 욕심 하나 없이 일생을 살다 말없이 사라져 버리니 좋다.

금년은 매미의 노랫소리가 더 요란하다. 새벽녘에 시작한 울음은 하루 종일 시끌벅적 그칠 줄 모르고, 햇살 쨍쨍한 점심 때쯤이면 고함이 절정에 달한다. 합창교향곡이 학교 교정을 온통 뒤덮으니 한마디로 장관이다!

알다시피 목성 좋은 놈은 모두 수컷이고 암놈은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벙어리’다(종에 따라 울음이 다름). 하긴 암놈이 목청 좋은 동물이 어디 있나. 수놈들이 울어대는 ‘맴맴맴맴…’. 저 소리가 암놈을 꼬드기는 ‘사랑의 노래’임을 알고 들으니, 어쩐지 부럽기도 하고 되레 서글퍼진다. 나 또한 힘 빠져버린 늙다리 매미가 되어버렸구나.

음성 좋고 몸집 우람한 멋진 유전인자를 가진 수놈 한 마리를 택한 암놈은 씨를 받아서 알에다 정기(精氣)를 불어넣는다. 암놈은 수놈이 갖지 못한 뾰족한 산란관(産卵管)을 식물의 줄기나 배, 사과 같은 과일에 꽂아서 거기다 알을 낳는다. 알은 보통 10여개월이 넘게 걸려(부화) 애벌레(유충)가 된다.

우리나라 매미는 대략 15종이 되는데, 그 중에서 생활사(生活史)가 잘 알려진 것은 참매미다. 참매미의 유충은 땅 속에서 ‘굼벵이’로 7년 간(서양 것들 중에는 13년, 17년이 걸리는 것이 있음) 나무뿌리에서 진을 빨아먹고 자란 다음 껍질을 벗고 날아나온다(번데기 시기가 없는 불완전 변태를 함). 이제 남은 삶은 고작 2, 3주에 지나지 않는다. 기이하게도 유생의 삶은 길지만 성충시기는 더없이 짧다. 한 보름 살려고 7년이나 공들이며 기다렸다니.

성충은 이 나무 저 나무 옮겨다니며 끝이 예리한 빨대(구침ㆍ口針)를 나무줄기에 꽂아 체관에 흐르는 단물을 빤다. 그러면서 수놈은 터져라 ‘러브 송’에 전력을 쏟는다. 매미를 잡아 배(복부)를 들춰보면, 첫째 마디에 흰 뚜껑 모양이 있는데 그 아래에 소리통(발성기)이 들어있다. 수놈의 것은 커다랗고 암놈 것은 무척 작다. 우는 매미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랫배가 실룩거리고 들썩거린다. 매미의 배 안은 거의 비어있어 그것이 울림통(공명기) 역할을 한다. 공기가 들락거리면서 통 속의 근육을 떨게 하여 ‘맴맴’ 소리를 낸다.

매미는 위험하다 싶으면 오줌을 찍 갈기고 날아간다. 하긴 개구리도 그렇지 않던가. 펄쩍 뛰면서 발등에 찬 오줌발을 튀긴다. 아, 그것이 다 적(敵)에게 한 방 먹이는 물총이었다!

매미는 곤충으로, 날개가 4장이고 매우 투명하며 속 날개가 크고 겉 날개가 작다. 앞에서 ‘익선관’ 이야기가 있었다. 날개 ‘익’ 매미 ‘선’. 즉 매미날개 닮은 관이 익선관이다. 그 맑은 종잇장 날개에 그물 같은 시맥(翅脈)이 뻗어나 있다. 시맥은 날개를 단단하게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신경과 피가 흘러, 날개도 살아 숨쉬게 한다.

저 낭랑(朗朗)한 여름 매미의 울부짖음에서 밝음과 맑음, 무욕과 청빈을 읽어보자. 인생은 더없이 짧다는 것을 일러주는 수매미의 울음이 아니던가.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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