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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섹스

사오정버섯 2007. 2. 23.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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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자연이야기] 지렁이의 섹스

비온 날 아침이다.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니 학교에 간다고 나서던 아이가 땅바닥에 엎드려 뭔가를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다. 주저앉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궁금하여 고개 숙여 본 어머니는 질겁한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아들 녀석이 집게손가락으로 들어올리고 있지 않은가. 반사적으로 앞집의 그 어머니는 냅다 아이의 등짝을 세차게 내려치곤 아이의 목줄기를 낚아챈다.

왜 지렁이들은 땅바닥에 그렇게 널려 있었던 것일까. 지렁이는 땅에다 굴을 뚫고 산다. 밤새 비가 내려 그 굴에 물이 가득 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렁이는 살갗으로 숨을 쉰다(피부호흡을 하는 것이다). 집에 물이 가득 차니 숨이 막혀 땅 위로 올라오지 않을 수 없다. 길바닥에 뒤둥그러진 지렁이는 집을 잃은 수재민인 셈이다. 이제 머지않아 뜨거운 태양이 내리비칠 테고 말라 죽어야할 운명에 처했으니 지렁이들이 참 불쌍하다.

‘지렁이’란 이름은 어쩐지 징그러운 느낌이 든다. ‘지’는 땅이라는 뜻의 ‘地’일 것이고, ‘렁이’는 구렁이, 능구렁이, 우렁이 등에 붙은 ‘렁이’일 터. “땅속에 사는 꿈틀거리는 놈” 정도가 지렁이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면 지렁이는 흙에서 뭘 먹고 살까. 큰 화분 하나만 잘 관찰하면 거기에 그 정답이 있다. 화분에는 거름(유기물)이 들어있고 그것을 먹고 똥을 눈다. 한 구석에 보통 흙과는 다른, 여태 없던 것이 모여있다! 씹어 뱉은 듯, 작은 알갱이들이 가득 쌓여있으니 그것이 지렁이 똥이다. 밭이나 정원의 지렁이는 가랑잎이나 유기물을 먹고 소화시켜 똥을 누니 아주 좋은 거름이 된다. 지렁이는 흙을 걸게 하는(영양분이 많게 하는) 더없이 유익한 놈이다.

그리고 두더지처럼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기에 흙에 통기(通氣)가 잘 되어서 식물의 뿌리호흡에도 그지없이 좋다. 또 지렁이가 약 된다고 잡아먹으니 지렁이의 딴 이름이 ‘흙에 사는 용’, 토룡(土龍)이다. 지렁이를 찌고 볶아서 가루를 내어서 사람이 먹도록 가공한 식품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다. 지렁이의 혈액엔 피를 응고되지 않게 하는 항응고(抗凝固) 물질이 들어있어서 그것을 순수 분리하여 피가 굳어지는 혈전(血栓)의 예방이나 치료에 쓴다.

흙 속 거름 먹고 똥도 눠

지렁이는 예사로운 생물이 아니다. 지렁이는 암수한몸(자웅동체)으로 한 마리의 몸 안에 정자를 만드는 정소(精巢)와 난자를 형성하는 난소(卵巢)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지렁이는 제 몸의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자가수정(自家受精)을 절대로 하지 않고 반드시 다른 지렁이와 서로 정자를 맞바꾼다(교환한다). 왜 그럴까. 사실 지렁이뿐만 아니라 다른 하등 동물들도 자웅동체지만 반드시 딴 것과 짝짓기(교미)를 하는 타가수정(他家受精)을 한다.

사람도 가까운 집안끼리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 이는 지렁이 같은 다른 동물에서 배운 것으로 근친결혼(近親結婚)을 하면 유전형질이 좋지 못한 자식을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렁이도 우리보다 먼저 우생학(優生學)을 다 알고 있더라!

지렁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앞의 어머니가 지렁이를 관찰하는 아이를 너무 심하게 다루었다는 말로 끝맺을까 한다. 일부러라도 지렁이를 잡아 같이 관찰하고 또 관찰을 시켜야할 어머니가 아닌가. 그 아이는 과학(관찰)을 하고 있었고 그런 것에 한창 흥미를 느끼며 자라는 시기다. 다치지 않을 일이면 무엇이든 “해 보라”고 타이르는 부모, 용기를 주는 어머니의 자식에게서 나중에 노벨상이 나온다. 아이들은 흙(자연)을 만져야 한다. 자연으로 돌려보내라!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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