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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일부종사’

사오정버섯 2007. 2. 23.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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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자연이야기] 나비의 ‘일부종사’

(전문게재)

벌과 나비, 봉접(蜂蝶)이 없는 세상은 상상키가 두렵다. ‘지성인’인 벌은 다음에 논하기로 하고 여기선 ‘백치미인’ 나비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나비’라는 말은 ‘보드랍게 나부끼어 흔들린다’는 뜻을 가진 ‘나불거리다’ ‘나붓거리다’에서 오지 않았나 싶다. 우리말의 어원을 다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양 사람들은 나비를 ‘butterfly’라 하니 ‘누르스름한 색을 띠는 벌레’로 본 듯하고, ‘다리가 달린 나뭇잎’이라 하여 풀숲에 앉으면 잘 보이지 않는 의태(擬態)를 그 특징으로 삼았다.
어쨌거나 나비는 하늘하늘 하늘을 떨어질 듯 솟아오르기를 되이어가면서 날아간다. 나비를 잡아보면 날개의 비늘 가루가 손에 그득 묻는다. 작은 비늘은 지붕의 기왓장을 포개놓은 듯 날개 겉을 깔고 있다. 물고기 비늘이 살갗을 보호하듯이 나비의 비늘도 날개를 지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색소를 머금고 있어서 날개의 색과 무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비들은 비늘에서 반사하는 자외선을 느껴서 친구를 알아내고 또 암수를 구분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비는 비늘로 짝을 찾는다. 물론 같은 종(種)이 아니면 서로 신호가 달라서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데 늙다리 수놈 나비는 비늘이 벗겨지고 떨어져 나가버려서 자외선 반사가 적게 되어 암놈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반면 튼튼하고 싱싱한 수놈의 비늘은 반짝반짝 빛나기에 암컷들이 몰려든다. 사람이나 나비나 죄다 늙으면 정녕 불쌍타.
암수 나비 한 쌍이 만나면 다른 나비가 없는 곳으로 피해가면서 둘만의 사랑을 즐긴다. 살랑살랑 공중을 날면서 놈들이 스치듯 만났다가 떨어지기를 계속하지 않던가. 흔히 그것을 보고 나비의 밀월여행이라 하여서 짝짓기한다고 보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사실은 수컷 나비가 암컷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행위가 쌍쌍이 나는 이유다. 수놈의 항문 부근에 있는 연필 지우개 닮은 돌기를 암놈의 긴 더듬이에 문질러 사랑의 향수(성 페로몬ㆍpheromone)를 뿌리고 있다. 그렇게 전위행위를 한 시간이 넘게 계속하다가 이때다 싶으면 암놈이 안전한 곳에 내려앉고, 그리고 짝짓기를 한다. 공중에서 하늘거림은 바로 그런 행위였던 것이다!
이제 암놈 나비는 알을 낳을 차례다. 물론 짝짓기를 한 수놈 나비는 힘이 빠져 죽어버리고, 암놈도 새끼치기를 하자마자 일생을 마친다. 배추흰나비 암놈은 배추나무 잎에다 알을 낳는다. 알은 깨어서 유충이 되고 그것이 번데기로 바뀌어 흙 속에 들어가 월동(越冬)을 한다. 겨울나기를 끝낸 번데기에서 성충인 나비가 날개를 달게 되니, 알→애벌레(유충)→번데기→어른벌레(성충)로 완전변태(탈바꿈)를 한다.
나비는 성충과 새끼 애벌레가 먹는 먹이가 다르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자연 현상의 하나다. 어미는 꽃의 꿀을 빨아먹고 산다. 그런데 애벌레는 뭘 먹는가. 배추나무 잎을 갉아먹고 자라지 않는가. 그리하여 어미와 자식 간에 먹이 다툼을 피해가는 것이다. 이 얼마나 오묘한 자연 현상인가. 이런 현상을 다형성(多形性·polymorphism)이라 한다.
대부분의 나비는 한 번만 짝짓기를 하기 때문에 상대를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한다. 서로가 튼튼한 형질(유전인자)을 가진 짝을 고르려 한다는 말이다. 나비 중에서 애호랑나비 무리와 모시나비 무리는 아주 특이한 짝짓기를 한다. 수놈이 짝짓기를 하면서 암놈의 몸 속(자궁)에 정자와 함께 아주 큰 영양분 덩어리를 집어넣는다. 암컷이 이것을 양분으로 써서 튼튼한 알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물질은 암놈 나비로 하여금 다시 짝짓기를 하고 싶지 않도록 만든다. 성욕억제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양 덩어리는 처음에는 반투명하지만 조금 지나면 회백색으로, 하루가 되면 갈색에 가까워지면서 일부가 굳어져서 자궁의 입구를 막아버린다. 이것을 수태낭(受胎囊)이라 부른다. 얼마나 이기적인 수놈의 생식 행태인가. 딴 수놈과의 교미를 못하게 하여 제 씨만 퍼뜨리겠다는 수놈 나비의 고약한(?) 심보에 아연 혀가 내둘린다. 그러나 수놈은 제 몸의 10%나 되는 영양물을 암놈에게 제공하였다. 남성들이여, 몸의 일부를 뚝 떼어 암놈에게 바치는 수놈의 희생정신, 헌신적인 사랑을 배우고 본받을지어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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