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6] 권오길의자연이야기 청개구리는 냉동 개구리? | |
아무리 “이 겨울이 덥지 않아 좋다”고 되뇌어봐도 살 밑으로 파고드는 냉기에 “춥다” 소리가 절로 입에서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 칼추위에 청개구리는 어떻게 겨울나기를 하고 있을까.
곰이나 오소리들처럼 추우면 굴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겨울날에도 날씨가 좀 풀리면 슬슬 바깥으로 기어 나와 어슬렁거리고, 또 추워지면 기어 들어가는 이런 잠은 겨울잠이 아니다. 추위를 피해 활동을 줄이는 것일 뿐. 청개구리의 겨울잠을 보자. 청개구리는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나무에 사는 놈이다.(그래서 영어로는 tree frog라 하고, 열대 우림지대에는 이것이 80%를 차지한다.) 개구리는 앞다리에 발가락이 네 개, 뒷다리에 다섯이 있다. 뒷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데, 청개구리는 나무에 주로 살기 때문에 물에서 헤엄칠 필요가 없어서 물갈퀴가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나 무서운 적응인가. 필요 없는 것은 버려버린다! 송곳바람이 불면 물개구리는 잘 얼지 않는 냇물에, 참개구리는 따스한 굴 속에 떼지어서 월동(겨울나기)을 하는 데 반해서 바보(?) 청개구리는 가랑잎 덤불 속에 몸을 파묻고 땡땡 어는 겨울을 지낸다. 딴 개구리는 대부분 몸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나 청개구리는 몸이 꽁꽁 얼어붙어 버린다. 한겨울에 낙엽 속에 웅크리고 있는 청개구리는 죽은 시체나 다름없다. 연두색 몸도 변색이 되어 거무죽죽해지고 잡아서 건드려 보아도 꿈쩍않는다. 쇳덩어리처럼 빳빳하게 굳어 있다. 이 청개구리는 심장과 대동맥 어름(서로 맞닿은 곳)에만 피가 돌아 겨우 생명만 부지하고 있다. 몸의 혈관(핏줄)은 죄다 얼어버린 상태다. 피까지 얼어버린 청개구리라! 근육이나 신경은 물어보나마나. 가을에 벌레 잡아먹어 지방 비축 다른 말을 빌리면 결국 ‘냉동 청개구리’다. 청개구리인들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싶을까. 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녀석들도 가을에 벌레를 많이 잡아먹어서 몸 안에 지방(脂肪)을 그득히 비축해 놓고 있다. 그 기름을 이용하여 열을 내기 때문에 심장이나마 조금은 살아있는 것이다. 용감하고 불쌍한 청개구리다. 아니다! 청개구리도 다 꿍꿍이속이 있다. 몸뚱이가 얼어 터져도 좋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몸이 영하로 내려가면 물질대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몸에 저장한 양분의 소모가 적어지고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어려운 말로는 목숨을 겨우 유지하는 기초대사량(基礎代謝量) 이하로 양분의 손실을 막는 것이 겨울잠이다. 어떻게 하든 영양분을 적게 쓰겠다고 저 추위를 즐겁게(?) 견뎌내는 것이다. 정자를 얼려서 보관했다가 필요하면 꺼내어 쓰는 정자은행이라는 것이 있다. 보통 동물세포를 영하 196도까지 내린 냉동 통에 넣어둔다. 온도가 너무 낮아서 물질대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오래오래 죽이지 않고 보관이 가능하다. 실은 죽었다고 생각드는 저 청개구리가 봄이 오면 스르르 되살아난다. 독하다, 생명이라는 것이…. 그래서 얼음이 되어 죽은 듯 살아있는 청개구리를 너무 가엽게 여길 일이 아니다. 녀석들! 변온동물의 기막힌 생존작전에 혀가 내둘릴 뿐이다. 어쨌거나 청개구리가 발딱발딱 뛰는 포근한 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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