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자연이야기] 겨울의‘먹보’조류와 포유류 | |
겨울 뒷산을 살펴보니 황량하기 짝이 없다. 짙푸르렀던 풀은 말라 비틀어져 버리고 소나무ㆍ잣나무를 빼고는 모두 나목(裸木)이 되어 본체(本體)를 드러내고 서있다. 사방 득실거리던 벌레들은 다 어디로 가고 텅 빈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게 추위가 무서운 것일까.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온통 그 앞에서는 벌벌 떨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정적이 감도는 겨울에도 발랄하게 활동하는 생명들이 있다. 아침 밭 주변에서 언제나 만나는, 검고 흰 바탕의 옷을 입은 ‘박새’와 짹짹거리며 떼지어 다니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다. 또 잣나무에는 ‘청설모’가 그네를 타며, 고목에는 ‘딱따구리’ 놈이 날아와서 나무껍질 벗기느라 ‘딱 딱’ 진동음을 울려댄다. 그 시간에 ‘들고양이’가 쓰레기를 찾아 헤매고, 그놈이 지나칠라치면 양지쪽 둔덕에서 모가지를 쏙 내밀곤 하던 ‘들쥐’ 놈들이 혼이 빠져 굴 속으로 내뺀다. 여기까지가 이른봄에서 늦가을까지 나의 영혼을 씻어왔던, 내 텃밭 자락에 앉아서 보이는 뒷산, 겨울 생물들을 엿본 모습이다. 그런데 새 중의 새라고 하여 ‘참새’라고 부르는 이 놈은 눈을 닦고 봐도 보이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알 낳을 집을 지을 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참새는 짚 이엉을 얹은 한옥의 처마에 주로 알을 낳는데 시골도 한옥이 다 사라져 버렸고 기와집 지붕도 시멘트로 꽉꽉 틀어막아버린 것이다. 이렇게 내 아침잠을 깨워주던 참새가 사라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다시 우리집 주변의 생물로 생각을 돌려보자. 식물은 접어두고 앞에서 이야기한 동물을 나눠보면 우연찮게도 새(조류)와 짐승(포유류)이 아닌가. 다른 동물은 추워서 꼼짝 못하고 모두 따뜻한 곳에 숨어 버렸다. 따뜻한 곳이란 주로 땅 속을 말하고, 일부 모기나 파리 따위는 사람이 사는 지하실이나 방에 들어와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과연 이 두 무리의 공통 특징이 무엇이기에 추위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일까. 세상에는 세포가 하나로 된 원생동물부터 포유류까지 수많은 무리가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중 오직 조류와 포유류만이 피의 온도가 변하지 않는 ‘정온동물(온혈동물)’이고 나머지는 모두가 ‘변온동물(냉혈동물)’이다. 물론 사람도 체온이 일정한(그것이 조금만 오르거나 내려도 큰 병이 됨) 정온동물이다. 해서 인정머리 없는 사람을 ‘냉혈동물’이라 일컫던가. 조금 설명을 덧붙이면 이슬이 내린 아침에 뱀을 만났을 때 그 뱀은 죽은 듯 활동을 하지 못한다. 나비를 채집하러 갔다면 이른 아침엔 그들을 채집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비는 날개를 벌려서 아침햇살을 충분히 받아 체온을 올려야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도마뱀도 매한가지로 해가 잘 비치는 곳에 기어나와서 몸을 데우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태양열이 변온동물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가 있다. 그러면 추운 날 정온동물은 어떻게 체온을 유지해 추위를 이겨 나가는가. 그 비결은 쉴새 없이 먹이를 먹는 것이다. 그 먹이에서 힘(에너지)을 얻고 동시에 체온을 올려서 추위를 견디고 이겨낸다. 그래서 여름보다는 겨울날에 사람도 음식을 더 많이 먹는다. 만일에 우리 사람도 변온동물이었다면 겨우살이 걱정없이 땅에서 겨울잠이나 실컷 잘 수가 있었으련만. 아무튼 가장 고등한 동물인 새와 짐승만이 정온동물인 것임을 다시 힘주어 말해 둔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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