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살어요/알면 좋은 상식

닭의 금실

사오정버섯 2007. 2. 19. 21:58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닭의 금실

▲ 수놈은 벌레 한 마리를 잡아도 제가 다 먹지 않는다. 구구구 하고 소리를 내질러서 암놈을 불러 그것을 먹여준다. 물론 암놈들은 그때마다 얻어먹으러 수놈에게 조르르 달려간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수놈이 암놈을 쪼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암놈이 달려드는 일도 절대로 없다. 이것이 닭의 금실이다.
을유년(乙酉年), 닭띠의 해다. 흘러가는 해를 왜 토막 내어 저렇게 야단들일까. 한데, 결혼식장에 웬 닭 한 쌍이 저렇게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리고 있단 말인가. 옛날에 동네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본 광경인데 결혼식에는 저것들을 떡하니 그냥 올려놓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내왔다. 닭처럼 행복하게 살라고 그런 줄로 알았다. 신랑 신부가 식을 끝내고 방에 들 무렵이면 나무로 깎은 원앙 한 쌍을 집어 던지는 것도 보았다. 원앙새를 산 채로 잡을 수만 있었다면 예식장의 닭 자리에 원앙이가 앉아있었으리라.

시골에선 아직도 웬만한 집에는 장닭 한 마리에 암탉 서너 마리를 끼어 같이 키운다. 그것들이 밭에서 어떻게 노는지 보자. 수탉 놈은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고 연해서 목을 한껏 빼고는 고함을 질러댄다. 그 다음에는 다른 집닭이 날개를 치고 울고…, 돌아가면서 하루 종일 소리를 내지른다. 왜 저렇게 힘들게 돌림노래를 하는 것일까. 어릴 때 본 경험은 이렇게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고모부님들이 오시는 날이면 반드시 수탉이 한 마리 죽어나간다. 일종의 닭서리다. 닭장에서 목을 비틀어서 잡아 놓고는 할머니께 “장모님, 저기 닭이 죽었던데요…”하고 사랑채로 내빼신다. 할머니는 의당 그럴 줄 알고 계신다.

다음 날 아침에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가. 옆집 수탉 놈이 어느새 달려와서 우리 집 암탉을 몰고 다니지 않는가! 태연하게 따라다니는 우리 암탉이 왜 그리도 미웠던가. 아침에 죽은 수놈이 울지 않았으니 옆집 그 놈이 귀신같이 알고 달려온 것이다. 사람인들 별 수 있나…,기웃거렸겠지. 수탉들이 왜 온종일 목청을 뽑아대는지 이제 알았을 것이다. “내 여기 있으니 가까이 오지 말 것이다.” 하는 경고요, 텃세를 부린 것이다. 그들의 세계에도 다 제 땅, 영역(領域, territory)이 있다. 그 금을 넘는 날에는 죽기 살기로 싸움질을 해댄다. 어떤 날은 수탉 놈의 볏이 피투성이가 돼 들어온다. 제가 남의 영역을 넘었거나 다른 놈이 침범해 오는 것을 막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수탉과 암탉이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이, 2차성징(二次性徵)이라는 것으로 수놈은 덩치가 크고 깃털이 예쁘며, 볏이 크고 꼿꼿하고, 꽁지깃이 길고 다리에 예리한 싸움발톱이 있다. 펄썩 뛰어서 뾰족한 그 발톱으로 상대의 가슴팍을 찌른다. 물론 볏을 물어뜯는 것은 예사로 하는 일이다. 목 갈기를 삐죽 세워 퍼덕거리면서 싸우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하니 투계(鬪鷄)에 돈을 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필자도 우리집 닭에게 된장을 먹여서 친구네 닭과 싸움을 붙여보곤 했다. 한참을 지나 힘이 부치는 놈은 삼십육계를 놓는다. 풀숲이나 짚가리 틈새에 대가리를 박고 숨는다. 이것 봐라! 이긴 놈은 끝까지 따라가서 패자의 등짝을 밟고 우뚝 서선 한 곡조 빼는 그 모습이라니! 역시, 힘을 키워야 한다.

다시 밭으로 돌아가서 평화롭게 암수가 노니는 모습을 보자. 두 발로 쉼 없이 땅을 후벼 파서 쌓인 지푸라기들을 긁어낸다. 떨어진 씨앗은 물론이고 지렁이나 벌레들을 집아 먹는 것이다. 수놈은 벌레 한 마리를 잡아도 제가 다 먹지 않는다. 구구구 하고 소리를 내질러서 암놈을 불러 그것을 먹여준다. 물론 암놈들은 그때마다 얻어먹으러 수놈에게 조르르 달려간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수놈이 암놈을 쪼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암놈이 달려드는 일도 절대로 없다. 이것이 닭의 금실(琴瑟)이다. 하여 예식장에 그렇게 닭이 한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암놈 사이나 햇닭과 묵은 닭 사이에는 다툼이 있다. 모이를 주면 제일 힘 센 암놈이 가운데서 약한 것들을 계속 쪼면서 다 차지하려 든다. 약한 것들은 가능한 한 다치지 않고 먹이를 먹으려고 들락거리면서 조심해서 주워 먹는다. 위계질서(hierarchy), 계급(階級)이 서있다는 말이다. ‘pecking order’라 하여 먹는 데도 순서를 지킨다. 한번 정해진 순서는 평생을 가니 서로 싸움을 하여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생존에 유리한 것이다. 사람만큼 어른 아이 모르고, 높고 낮음 없이 사는 동물은 없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