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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는 나무인가 풀인가

사오정버섯 2007. 2. 19. 21:50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대나무는 나무인가 풀인가

조선 중기의 시인 고산(孤山)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고등학교 때 배운 그 빼어난 글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다. ‘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이어 그 다섯을 차례대로 풀어나가는데 그 중에서 대나무에 관한 부분을 보자.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四時(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그렇다. 여기 대(竹)의 글에서 ‘나모도 아닌 것이 플도 아닌 거시’라는 구절이 눈을 끈다. 대를 ‘나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줄기가 매우 딱딱하고 키가 큰 것은 30m를 훌쩍 넘는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대나무’라 부른다. 그런가 하면 대는 외떡잎 식물이고 때문에 부름켜(형성층)가 없어 부피자람(비대생장)을 못하니 나이테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풀’이라는 주장이다. 고산께서도 익히 그것을 알고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읊으셨던 모양이다. 대를 나무라고 여기는 이들은 좀 떨떠름하겠지만 생물학적으로 풀이하면 외떡잎에다 부름켜가 없기에 정녕 대는 나무(木本)가 아닌 풀(草本)이다.

대나무는 벼와 비슷한 식물이다. 대(bamboo)는 벼과 식물로 세계적으로 400여종이나 되며 주로 동남아 등의 따뜻한 곳에 번성한다. 다년생 식물로 무엇보다 꽃의 모양이나 특성이 벼꽃을 닮았다. 아무튼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대는 크게 보아 왕대(중부 이남에 나는 큰 대), 조릿대(전국의 산허리에 나며 아주 작음), 해장죽(중부 이남에 살고 부채 등을 만듦), 이대(남부에 자생하고 낚싯대, 담뱃대 감) 등 4무리로 나뉜다.

대나무는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로 아래로 푹 숙인 바소(발채) 모양의 잎사귀와 텅 빈 속은 겸손과 무욕에 비유되어 덕을 겸비한 선비의 상징이다. 둘째는 지조와 절개를 표상한다. 대나무 줄기는 곧게 쭉 뻗고 마디마디가 또렷하며 마디 사이는 속이 비어 통을 이루고 사이사이는 막혀 강직함을 유지한다.

대나무의 어린 순을 죽순이라 한다. 우후죽순(雨後竹筍), ‘비 온 뒤에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솟는 죽순’이란 뜻으로, 어떤 일이 한때에 많이 일어날 것을 비유하여 쓰는 말이다. 어떤 죽순은 하루에 무려 80㎝ 이상 자란다고 하니 놈들 자라는 소리에 개가 놀랄 판이다!

대는 얼마간 살고는 꽃이 핀 다음에 죽으니 그것을 ‘개화병(開花病)’이라고 하는데, 종류에 따라서 60년, 100년 주기로 일어난다. 중국 대나무는 그 꽃에 빨간 열매가 맺히니 그것을 ‘죽미(竹米)’라 하여 봉황새가 먹었다고 한다. 대나무의 일생은 그리 짧지 않은 편이고 필자도 목격했지만 이 마을 저 마을 동시에 사그라지고 만다. 그러나 생명은 질겨서 일부가 남아 다시 대밭을 일궈놓고 만다.

대나무를 재료로 쓰는 것이 수두룩하다. 어디 한번 보자. 대빗자루, 죽통, 대젓가락, 퉁수, 피리, 대금, 활, 죽부인, 대자, 주판, 대소쿠리, 대고리, 대바구니, 대광주리, 목침, 대삿갓, 담배통 등 모두 다 쓰기에 너무 버겁다. 한마디로 무궁무진하다. 소주를 대통에서 몇 번을 걸렀다거나, 그 안에서 익힌 밥이 몸에 좋다고 하고, 황토로 아가리를 막고 아홉 번을 구워 낸 죽염 등 끝이 없다. 또한 대는 평안(平安)과 무사(無事)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편지 봉투나 편지지 등의 문구류에까지 대나무를 그려 넣었다고 한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