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 자연이야기] 60g짜리 ‘단세포’ 달걀의 비밀 |
지난 회에 우리는 복잡다단한 닭의 세계에서 오직 한구석을 보았다. 이번에는 달걀의 비밀을 한번 캐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시시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창조론자에게는 닭이 먼저고, 진화론자에게는 달걀이 처음이다. 맨손 수업을 지양하는지라 강의시간에 달걀을 들고 들어가기도 한다. 그것을 치켜들고 “이게 뭐냐”고 묻는다. 묻는다기보다는 “어서 답하라”고 닦달한다. “달걀요” “계란요” 소리가 거의 반반이다. 달걀은 분명 ‘닭의 알’이 준 말이다. 한데 달걀과 계란(鷄卵) 중에서 어느 표현이 더 좋은가. 의당 우리말은 우리가 아껴야 한다. ‘언어는 곧 문화’라고 하지 않는가. 다음으로 이어진다. “달걀은 몇 개의 세포인가?”하고 다그친다. 머뭇거리다가도 정답이 나온다. 맞다. 하나다. 달걀은 그렇게 크지만 세포는 하나다. 무게로 환산하면 60g이나 된다. 영어로는 세포(細胞)를 작은 방이란 뜻으로 ‘cell’이라 한다. 여기에서 휴대전화기의 영어이름 ‘cellular phone(줄여서 cell phone)’이 생겨나니, 그대로 번역하면 ‘세포전화’다. 아주 잘 붙인 이름이다. 복잡한 기능을 모아서 여러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 큰 공중전화기를 작은 손안에 들고 다니는 것만도 놀랄 일이다. 과학기술이 어디까지 가는지 어디 한번 기다려보자. 달걀은 살아있는 세포이기에 여러 가지 물질대사가 일어난다. 달걀 표면에는 7000여개의 눈에 안 보이는 작은 홈이 그득 있다. 적은 부피에 가능한 표면적을 늘리자는 의도다(모든 생물의 구조가 그렇다). 그래서 산소가 많이, 그리고 쉽게 들어간다. 덧붙이자면, 껍질을 통과한 산소는 그 안의 양분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내고, 그것으로 달걀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달걀일수록 내용물이 점점 줄고, 아주 오래되면 안이 비어 꿀렁거린다. 그래서 달걀을 삶았을 때 껍질이 쉽게 벗겨지는 것은 늙은 것이며, 신선한 것은 알이 꽉 차서 잘 벗겨지지 않는다. 괜스레 안벗겨진다고 욕을 얻어먹는 신선한 달걀. 엉뚱한 질문이다. 달걀을 삶을 적에 왜 소금을 넣는가? 학생들은 하나같이 껍질이 잘 벗겨지게 그런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별 다르지 않을 듯하다. 달걀을 아무리 잘 간수해도 작은 금이 가는 수가 있다. 물에 넣고 삶으면 공기집의 공기가 팽창하면서 흰자위를 그 틈새로 밀어낸다(공기집이 뭉툭한 곳에 있으니 냉장고에서 그것을 위로 두면 달걀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 껍질 밖으로 밀려난 흰자위를 먹지 않고 내버리니 아깝다. 소금을 물에 넣으면 간수성분이 단백질(흰자위)을 응고시키므로 허실이 덜 생기게 된다. 허허, 요리에 과학이 스며있는 것이다. 찬물에 식히면 노른자 샛노랗게 돼 그러면 달걀을 삶은 다음에 찬물에 식히는 까닭은? 달걀을 삶아 흰자위를 먹고나면 안에 노른자위가 나온다. 누구나 경험한 일이겠지만, 어떤 노른자위는 샛노랗다. 그러나 어떤 것은 푸르스름하다. 왜 그럴까. 달걀에는 황(S)이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철분(Fe)도 있다. 이 둘이 화학반응으로 결합하면 황화철(黃化鐵)이 되니 그 색이 지저분하다. 결국 찬물은 황과 철의 결합을 막아서 노른자가 제 색을 내게 한다. 달걀 삶는 데도 화학이 숨어있다. 매사를 ‘다들 그렇게 하니까’하는 관성에 의존하지 말고 원인과 이유를 따져보는 것에서 과학을 찾아야 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 친구들에게 자랑을 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퉁명스런 반응을 보인다. 화가 난 콜럼버스는 옆에 있던 달걀 하나를 들어 친구에게 주면서 그걸 세워보라고 한다. 친구가 세우지 못하자 확 빼앗아 책상 위에 탁 쳐서 세웠으니 이것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발상전환의 예로 자주 든다. 이 이야기를 들어온 탓에 아무도 달걀을 그냥 세워보려들지 않는다. 편견과 선입관은 창조적인 사고에 최고의 장해물이다. 달걀은 실제로 잘 선다. 열 손가락으로 오긋이 쥐고 세우면 된다(믿음과 끈기가 필요하다). 달걀을 세운 후의 그 성취감이라니! ‘무릇 창조는 선입관의 타파에서 비롯한다’는 말을 공책에 받아 적게 하고는 한 시간 수업을 끝낸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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