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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의 비밀 풀렸다

사오정버섯 2007. 2. 19. 22:04
곱슬머리의 비밀 풀렸다
존스홉킨스대 네이선스 박사 “유전자가 털 형태 좌우” 밝혀 ‘프리즐드6’ 유전자 삽입하면 직모(直毛) 가능해

머리카락이 심하게 곱슬거리는 부모의 한결같은 소원은 내 자식만은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갖는 것일 게다. 그러나 유전 형태를 보면 곱슬머리가 우성이어서 곱슬머리와 직모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곱슬머리를 갖게 되어, 그 소원은 오로지 꿈에 그칠 뿐이다.

그런데 지난 5월 말경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제레미 네이선스 박사팀이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최신호에서 ‘프리즐드6’이라는 유전자가 없을 때 곱슬머리가 된다는 비밀을 밝힘으로써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 주게 되었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직모를 가진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도 약 3%의 곱슬머리가 태어나고, 직모와 곱슬머리인 부모에게서는 곱슬머리가 68%, 직모가 24%의 비율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동양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머리는 으레 곱슬머리가 된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머리카락을 비교 분석하여 머리털의 단면이 타원형일수록 곱슬머리가 되고 이 원인이 유전적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은 있어 왔다. 그러나 유전자를 구체적으로 찾아내기는 이번의 네이선스 박사팀 연구가 처음이다.

쥐 실험 통해 유전자 역할 규명

머리카락이 곱슬거리는 정도는 털의 단면 모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면이 동그랄수록 털은 곧게 자라며 단면 모양이 계란형일수록 털은 더 곱슬거린다. 동양인의 머리털은 단면이 원형이므로 곧게 뻗은 머리칼인 직모이고, 서양인의 머리털은 타원형으로 길쭉하기 때문에 동양인보다 웨이브가 심한 곱슬머리다. 흑인의 머리털은 서양인의 털보다 타원인 정도가 더 심해서 거의 납작하거나 심한 경우 리본 모양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곱슬머리가 된다.

어떤 경우에는 모낭 자체가 곧바로 펴 있지 않고 휘어져 있기 때문에 털이 자랄 때 곱슬거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직모냐, 곱슬모냐를 결정하는 원인은 키가 크냐, 작으냐의 문제처럼 유전적인 이유다.

신체 부위별로도 털이 곱슬거리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머리털은 직모인데도 겨드랑이 털같은 것은 곱슬거릴 수도 있다. 대개 겨드랑이 털과 음모가 다른 털보다 유난히 곱슬거리는데 이것은 유전적 요인보다는 후천적 요인이 크다. 이들 털은 주로 옷과 마찰을 일으키기 때문에 원래 곧던 모양이 휘어지게 된다. 또한 겨드랑이털의 경우에는 겨드랑이가 팔과 몸통이 만나는 부분이기 때문에 털이 살과 자주 닿는 일도 휘어지는 원인이 된다. 만일 원시시대처럼 옷을 벗고 산다면 음모와 같이 옷이 닿지 않는 부위의 털은 지금처럼 곱슬거리지 않을 것이다.

털이 곱슬거리는 정도와 마찬가지로 털이 몸에 많고 적음에도 인종적인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서양인은 턱수염, 겨드랑이털, 체모, 음모가 동양인보다 많다.

그렇다면 곱슬머리 또는 직모 등 각 개인의 형질 차이는 유전자 어느 부분에 차이가 있는 것일까. 같은 유전자라도 염색체에서 극소수의 염기서열이 뒤바뀌면 곱슬머리가 직모로 변해 버릴 정도로 그 영향은 크다.(인간의 유전자는 DNA로 이뤄져 있고, DNA에 담긴 정보는 ‘ACGT’라는 4가지 염기 물질의 배열로 저장돼 있다.) 이것을 단일염기 변이(SNP)라 하는데 그 기능의 대부분을 밝혀내지 못했다.

네이선스 박사의 연구팀은 이러한 사실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수없이 하는 과정에서 직모냐, 곱슬모냐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프리즐드6’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본격적 실험에 들어갔다. 먼저 쥐에게서 ‘프리즐드6’ 유전자를 없애고 나서 털이 어떤 모양으로 자라나는지를 살폈다. 그 결과 정상 쥐의 털과 다르게 자랐다.

정상 쥐의 머리와 뒷발에서는 털이 직모처럼 반듯하게 자라는 데 반해 ‘프리즐드6’이 제거된 쥐에서는 소용돌이치듯 구불구불 자랐다. 특히 발가락 방향으로 반듯하게 자랐던 뒷발의 털은 한쪽 발에서 시계 방향으로, 다른쪽 발에서는 반시계 방향으로 소용돌이치며 자랐다.

이 결과는 곱슬머리와 유전자의 관계를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또한 사람에게서도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네이선스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프리즐드6’을 털이 자라는 형태를 조절하는 유전자로 지목했다.

▲ 전자현미경으로 확대한 머리카락 사진. 머리카락의 단면이 동그랄수록 털은 곧게 자라며 계란형일수록 더 곱슬거린다
흑인에게는 곱슬머리가 제격

쥐와 인간은 유전적으로 꽤 유사하고 프리즐드 유전자를 똑같이 10종류씩 갖고 있기 때문에 만일 사람에게서도 ‘프리즐드6’ 유전자를 제거한다면 곱슬머리가 될 것이다.

네이선스 박사는 지난 5월 25일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도 프리즐드6이 없으면 털이 소용돌이치듯 구불구불 자랄 것”이라고 밝혔다.

곱슬머리를 고민해 오던 사람들에게 네이선스 박사의 연구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곱슬머리가 외관상 단정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이로운 점도 있다. 열대 기후에서 살아가는 흑인들에게는 곱슬머리가 딱 좋다.

열대 지역의 높은 기온에서 체온 상승을 막는 방법의 하나가 곱슬머리다. 곱슬머리는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차단하고 체열을 빨리 공기 중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걸을 때 가장 먼저 햇볕을 받는 곳이 머리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쬘 때, 머리카락이 서로 뒤엉킨 흑인의 곱슬머리는 머리카락 사이에 공기구멍이 많은 스펀지처럼 단열 공기층이 형성되어 단열재의 구실을 한다.

즉 태양광선이 머리 피부에 도달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흑인들의 머리를 보호해 주고, 또 공기가 잘 통하기 때문에 머리 피부에서 나오는 땀을 효과적으로 증발시켜 머리를 빨리 냉각시킨다. 물론 피부의 땀샘 수도 500만개로 온대 지방 사람들의 두 배 정도다. 이런 면에서 볼 때는 꼭 직모만을 원할 일은 아닌 듯싶다.

네이선스 박사팀의 연구 결과를 역으로 생각하면 곱슬머리인 사람들은 ‘프리즐드6’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제 털이 자라는 형태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찾았으니 앞으로 남은 과제는 ‘프리즐드6’ 유전자를 집어넣어 없는 사람들에게 갖게 하는 일이다. 직모를 갖고자 하는 사람들의 소원이 ‘프리즐드6 유전자의 삽입’이라는 기술 성공으로 하루 빨리 앞당겨지기를 기대한다.

김형자 과학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