뚫었다! 바다를, 기름을, 미래를
해저 원유·가스 시추선 ‘드릴십’…한국을 먹여살릴 ‘드림십’
한척에 6000억 황금시장 한국이 세계 점유율 73%
高유가 시대 희망 퍼올리는 기술로 김덕한 기자 ducky@chosun.com
수심 1500m가 넘는 깊은 해저(海底)에 구멍을 뚫어 원유나 가스를 시추해 내는 선박인 ‘드릴십(drill ship)’. 바다 밑 구멍은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 마구잡이로 드릴을 돌려대다간 자칫 해저에서 원유·가스가 분출, 바다만 오염시키고 유전을 망쳐버릴 수 있다. 유정(油井)의 구멍은 쇠파이프가 아닌 특수한 진흙(mud)으로 뚫는다. 깊은 해저 역시 흙인데 어떻게 진흙으로 뚫을 수 있을까. 또 바다 위에 떠서 조류와 파도에 흔들리면서도 다른 곳으로 떠내려가지 않고 한 곳에 머물며 구멍을 뚫을 수 있는 비결은 뭘까. 드릴십 기술의 비밀 세계로 들어가 보자.
6000억원 넘는 ‘황금알’ 드릴십
삼성중공업은 지난 11월 10일 극지(極地)용 드릴십을 세계 최초로 건조, 명명식을 갖고 발주처인 스웨덴 스테나사에 인도했다. 드릴십은 파도가 심한 해상에서 일정한 위치를 스스로 유지하면서 심해 해저를 파내려 가야 한다. 그만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척당 가격은 보통 6000억원이 넘는다. 고(高)부가가치선에 속하는 초대형유조선(VLCC)의 4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의 2배가 넘는 조선산업의 대표적 블루칩이다. 배를 운용하는 석유회사 입장에서는 드릴십을 빨리 해저 유전에 투입할수록 수익이 커진다. 때문에 계약기간보다 납기를 앞당기면 조선사들은 보너스도 두둑하게 받을 수 있다. 아무나 만들 수 없는 해양설비이기 때문에 계약착수금 역시 다른 선종(船種)에 비해 월등히 많다.
오늘날 수심 1500m 내외의 해저 유전개발 기술은 거의 완성돼 있다. 드릴십이 구멍을 뚫고 나면 FPSO(부유식 원유저장 생산 설비)가 그 구멍을 통해 원유·가스를 뽑아낸다. 원유가격이 많이 오르고, 또 쉽게 원유를 뽑아 올릴 수 있는 지상 유전의 매장량이 줄어들면서 해저, 특히 아주 깊은 심해나 북극해 등 작업이 어려운 곳의 유전 개발 바람도 불고 있다. 그러니 해저 유전 개발 장비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고차원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번에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드릴십 ‘스테나 드릴막스’는 에베레스트(8848m) 높이보다 더 깊은 해저 11㎞까지 파내려 갈 수 있다. 높이 16m의 파도와 초속 41m의 강풍에서도 일정한 지점을 유지할 수 있는 최첨단 위치 제어기술도 채택했다. 특히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도 작업이 가능한 ‘극지용’이다. 작년 산업자원부로부터 ‘세계 일류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기술력 때문에 한국 조선소들은 전 세계 드릴십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2005년부터 전 세계에서 발주된 드릴십 총 22척 중 16척을 수주, 시장점유율 73%를 차지했다. 고(高)유가 시대에 가장 유망한 해양설비 시장에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진흙으로 구멍 뚫고 부스러기도 제거
해저에 구멍을 뚫으려면 우선 암석을 파괴할 수 있어야 하고, 굴착된 암석 부스러기를 효과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뚫어낸 구멍이 무너져 내리지 않아야 하고 원유·가스의 분출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채택한 것이 진흙(mud) 순환방식이다.
해저에 시추관을 내리면서 그 안으로 진흙을 흘러내려 보낸다. 시추관 끝에 도착한 진흙은 노즐에서 강한 압력으로 분사되고, 분사 후에는 유정(해저에 뚫은 구멍)의 벽과 시추관 사이 틈을 통해 다시 위로 밀려 올라온다. 그냥 올라오는 게 아니라 파낸 흙·암석 부스러기를 함께 운반한다. 노즐의 압력으로 분사되는 힘으로 바닥에 구멍을 뚫고, 또 진흙의 점착성을 이용해 절삭된 부스러기를 위로 가져 올라오게 됨으로써 구멍 뚫기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원리.
어느 정도 깊이까지 굴착이 진행되면 유정의 붕괴와 원유·가스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시추관을 끌어올린 후 파이프를 유정 구멍에 삽입한다. 그리고 파이프와 유정 벽 사이에 시멘트 반죽을 압축해 넣은 다음에 굳혀 안정된 구멍을 확보한다. 그러면 구멍 지름은 처음 뚫은 것보다 줄어들게 되고, 이후에는 좀 더 지름이 작은 시추관을 이용해 원유·가스가 매장된 곳까지 굴착을 진행한다. 시추에 성공할 확률은 100개 중 2~3개 정도.
자세 유지하는 데 GPS·음파·레이저 총동원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드릴십이 한 곳에 계속 멈춰 있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동적(動的) 위치제어시스템(DPS·Dynamic Positioning System)이 그 해법이다. 모든 선박은 해상에서 전후, 좌우, 상하로 흔들린다. DPS는 이런 움직임을 제어해, 선박의 정확한 기동과 조종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선박운항 시스템의 통합 시스템이다.
우선 디퍼런트 GPS 시스템.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측정한 GPS 정보를 통해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다. 다음은 음파위치정보(hydroacoustic position reference). 배 아랫부분에 장착된 음파송수신기에서 음파를 발사해, 유정 주변에 오각형으로 배치된 음파반응기의 반응정보를 통해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측정하는 장비로, 수심이 깊은 지역에 적합하다. 또 하나는 레이저 링크(laser link). 지상의 특정 위치에 고정된 구조물에 레이저 빛을 쏴 반사돼 돌아오는 빛의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구조물과 선박 간의 거리와 위치 정보를 획득한다. 토트 와이어(taut wire) 시스템은 해저 면의 일정 지점과 선박을 팽팽한 줄로 연결해 선박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줄의 변화를 측정함으로써 선박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장비다. 이 같은 복합적인 기술을 통해 드릴십은 떠 있으면서도 똑같은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
해저 유전 개발은 1953년 멕시코 만에 수심 10m 플랫폼을 설치한 것이 최초다. 1970년대 중동전쟁을 계기로 유럽의 북해 유전 개발이 본격화됐고, 최근 고유가 시대를 맞아 또 다른 심해유전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에 한국 조선소들이 서 있다.
드릴십(drill ship)
수심이 깊거나 파도가 심해 고정된 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는 해상에서 원유와 가스 시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선박 형태의 시추설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해 척당 6000억원이 넘는다.
수면하 3000미터 까지 드릴작업하여 기름을 뽑아 올리는 배, 선저 밑면에 프로펠라가 6개나 장착되어 있어요 (다음카페 거제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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