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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사용하는 침팬지

사오정버섯 2007. 2. 27. 11:18

힘 약한 암컷이 사냥무기 개발… 침팬지도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도구 사용한 까마귀 “누가 날 바보라 했나”

 

이영완기자 ywlee@chosun.com
입력 : 2007.02.26 23:08 / 수정 : 2007.02.27 09:15

 

 

1960년대 초 석기(石器)를 사용한 250만년 전 인류의 화석이 발견되자 과학계는 진짜 인간의 조상을 찾았다고 환호했다. 이 화석은 ‘손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로 불렸다. 그런데 최근 인류와 가장 가까운 영장류인 침팬지도 오래전부터 도구를 사용해왔으며 심지어 사냥용 무기까지 만든다는 사실이 잇따라 밝혀져 주목을 받고 있다. 과연 침팬지에게도 독자적인 문명이 있는 것일까.

 

◆사냥무기 제작 첫 확인

지난 22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인터넷판에는 침팬지가 창을 만들어 작은 동물을 사냥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침팬지를 비롯해 일부 동물들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졌지만 사냥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처음 확인됐다. 세네갈에 사는 이 침팬지들은 나뭇가지 끝을 입으로 다듬어 날카로운 창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것으로 덤불에 숨은 먹잇감을 끌어냈다.

논문에 따르면 힘이 센 수컷보다는 암컷이나 어린 새끼들이 주로 사냥무기를 사용했다. 연구팀은 암컷이 도구로 모자란 힘을 보충한 것이며 어린 새끼들은 어미로부터 이를 배운 것으로 분석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딱 들어맞는 얘기다.

▲ 돌을 사용해 딱딱한 열매 껍질을 깨는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침팬지. /캐나다 캘거리대 제공
 
평생을 침팬지 연구에 보낸 제인 구달 박사도 도구를 사용하는 침팬지에 대해 많은 사실을 보고했다. 구달 박사에 따르면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흰개미 집에 쑤셔 넣고 개미들이 달라붙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에 훑어 먹는다. 막대기를 무기나 지렛대로 사용하거나 조준해서 던질 수도 있다. 또 나뭇잎을 휴지처럼 사용해 상처를 닦는다. 구달 박사는 다만 침팬지는 자기 주변에 있는 물체들을 도구로 쓰지만 하나의 도구를 사용해 다른 도구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 마리가 사용하면 따라 배워

그렇지만 구달 박사는 시간만 있으면 침팬지 역시 세련된 도구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원시인이 세련된 형태의 석기문화를 만들어내기 이전 수천 년간 초기형태의 단순 석기를 계속 사용한 것처럼, 많은 시간이 지나면 침팬지도 좀 더 복잡한 도구문화를 발달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

이미 침팬지는 많은 시간을 지나왔다. 캐나다 캘거리대 훌리오 메르카데르 교수와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인터넷판 12일자에 4300여 년 전 침팬지들도 견과류를 깨는 석기를 사용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의 노우로 지역에서 최근 발굴된 석기들을 연구한 결과, 주변에 침팬지가 먹던 견과류 흔적이 남아있고 석기의 크기가 사람이 사용하기엔 너무 큰 점을 볼 때 침팬지가 사용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밝혔다. 메르카데르 교수팀은 2002년 5월 ‘사이언스’지에도 같은 지역에서 침팬지들이 사용했던 석기들을 발견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학습도 이뤄지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침팬지 한 마리가 도구를 사용하면 다른 침팬지들도 따라 배운다. 게다가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도구의 종류도 다르다. 따라서 어쩌면 지금 침팬지들은 먼 옛날 조상들이 물려준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침팬지는 어떻게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일부에서는 침팬지가 같은 지역에 살던 사람을 모방했을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4300여 년 전 침팬지 석기가 발굴된 지역에서는 사람이 농사를 지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침팬지들이 도구를 독립적으로 개발했을 가능성과 인간과 침팬지가 누군가로부터 도구 만드는 기술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침팬지 유적지가 더 많이 발굴되면 그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갈고리 만드는 까마귀

도구를 쓰는 동물은 침팬지 외에도 많다. 이집트 대머리수리는 부리로 돌을 집어던져 두꺼운 타조 알을 깨 먹는다. 갈라파고스섬의 딱따구리 핀치새는 선인장 가시를 입에 물고 나뭇가지 속에 박혀있는 벌레를 빼먹는다. 핀치새는 가시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쓸 뿐 아니라 재(再)사용하기도 한다. 검은댕기해오라기는 미끼 격인 물체를 물에 던지고 여기에 몰려든 물고기를 잡는다.

최근 가장 주목을 받은 ‘도구 동물’은 머리 나쁠 때 주로 비유하는 까마귀다.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행동학자들은 2002년 ‘사이언스’지에 뉴칼레도니아 섬에서 잡은 까마귀가 도구를 제작해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베티’란 이름의 이 까마귀는 철사를 갈고리처럼 구부려 통 속에 있는 먹이를 낚아 올렸다.

야생의 까마귀는 돌이나 나무 틈 사이의 먹이를 사냥하는 데 나뭇가지를 쓴다. 적당한 나뭇가지가 없자 철사로 도구를 만든 것이다. 신기하게도 까마귀들은 사람이 왼손잡이, 오른손잡이가 있는 것처럼 도구를 항상 오른쪽 뺨이나 왼쪽 뺨으로 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서부 아프리카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 지역에서 침팬지들이 돌로 견과류의 껍질을 깨는 모습. /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제공

  • 철사를 구부려 먹이를 꺼내는 갈고리로 사용하는 까마귀 '베티'. / 영 옥스퍼드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