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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사오정버섯 2007. 2. 19. 22:02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어느 시인은 들국화를 “비탈진 들녘 언덕에 니가 없었던들 가을은 얼마나 쓸쓸했으랴. 아무도 너를 여왕이라 부르지 않건만 봄의 화려한 동산을 사양하고 이름도 모를 풀 틈에 섞여 외로운 계절을 홀로 지키는 텅빈 들의 색시여…”라고 썼다. 사군자(四君子)의 하나가 국화(菊花) 아니던가. 그리고 어디 그뿐인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천둥은…, 먹구름은….”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나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나니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들국화는 보통 가을철 산이나 들에 피는 국화과 식물을 통칭하는 말로, 식물학적으로는 구절초속(屬), 쑥부쟁이속, 개미취속들의 식물이 여기에 든다. 하지만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들국화란 국화과의 산국(山菊,Chrysanthemum boreale)과 감국(甘菊,C. indicum)을 일컫는 말이다. 이 식물들은 언덕이나 길가, 마을 주변의 비탈진 언덕배기 등 주로 나지막하고 양지 바른 곳에 자라며, 단풍이 질 무렵이면 그 자그마한 꽃을 떼거리로 피운다.

들국화는 색이 노랗다고 황국(黃菊), 야산에 핀다고 야국(野菊)이라 하며 개국화라고도 부른다. 산국과 감국은 다년초로 높이는 1~1.5m이고 이파리에는 털이 많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며, 꽃의 크기는 감국(2.5㎝)이 산국(1.5㎝)보다 조금 크다. 그리고 앞의 산국이나 감국의 학명에서, 속명(屬名)인 Chrysanthemum은 희랍어 chrysos(황금색)와 anthemon(꽃)의 합성어로 ‘금색 꽃’이란 의미가 들어있다. 여기서도 원래 국화꽃은 노란색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런데 흔히 들국화 하면 쑥부쟁이나 구절초를 묶어 말한다. 실은 산국이나 감국은 그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보고도 지나치기 일쑤다. 그러나 쑥부쟁이와 구절초는 가을 들판이나 야산 어디서나 흐드러지게 핀다. 모두가 국화과 식물이라는 점에 이들을 들국화라 불러도 그리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알고 보면 들국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둘은 꽃 색을 제외하고는 보통사람 눈에 별 차이가 없다. 쑥부쟁이는 꽃이 보라색이지만 구절초는 불그스름하거나 흰색이고, 구절초는 꽃송이가 좀 큰 편이다. 구절초(九折草)는 5월 단오 때는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9월 9일(重九日)에는 아홉 마디가 되는데, 이때 줄기를 잘라 말려서 약으로 쓰니 구절초라 한다. 산국과 감국이 낮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들국화라면 구절초 무리들은 고도가 약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이제 국화 한 송이를 잘 살펴볼 차례다. 국화꽃 송이는 머리를 닮았다고 두상화(頭狀花)라 칭한다. 그리고 둘레에 큰 꽃이 둘러나고 있으니 그 모양이 혓바닥 모양을 한다고 설상화(舌狀花)라 하는데, 그것은 씨를 맺지 못하는 불임성(不稔性·식물이 씨를 맺지못하는 현상)인 가짜 꽃이다. 그 꽃으로 다른 곤충을 불러들이자고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안에 들어있는 작은 꽃이 진짜 꽃으로 관상화(管狀花)라 부른다.

산국은 바깥의 커다란 설상화가 20여개, 안쪽의 작은 관상화가 40여개다.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길게 끌고 가는 이유가 있다. 국화 한 송이는 여러 개의 꽃이 모여 된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그러면 안에 들어있는 꽃(관상화) 하나를 따서 잘 들여다보자. 암술 끝이 두 갈래로 뾰족 솟아 나와 있고 그 아래에 암술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여럿 있으니 그것이 수술이다. 즉 산국 한 송이는 60여개의 꽃이 모여 된 것이다.

산국과 감국을 복용하면 혈기에 좋고 몸을 가볍게 하며 위장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국의 유향이란 사람은 평생 동안 국화꽃 먹기를 하여 1700(?)살까지 장수했단다. 진하되 은은한 국화차 향과 맛이 입안에 동한다. 마른 국화 한 잎이 찻잔 위에 쫙 퍼져 살아 뜨지 않는가. 국화는 굳은 절개의 상징이다. 노란색 국화는 실망과 안타까움이라는 꽃말을 가진다고 한다. 국화 이야기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저 남녘엔 아직도 가을이 머물고 있으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