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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이 붉은 까닭은?

사오정버섯 2007. 2. 19. 21:51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진달래꽃이 붉은 까닭은?

계절은 제 먼저 알고 훌쩍 찾아든다. 꽃샘마루 잎샘언덕을 어렵사리 넘고 넘어 바야흐로 봄철에 다다랐다. 칼바람 쌩쌩 불고 얼음 땡땡 어는 한겨울에 봄 생각하기란 언감생심, 영원히 동토(凍土)에 남는 줄만 알았지. 과연 이런 봄을 몇 번 더 맞고 이승을 떠날지 나도 잘 모른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찬란한 세기의 이 봄을 한껏 즐길 것이다.

진달래는 전국 어디에나 피어나고 참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새 중의 새가 ‘참새’요, 나무 중의 나무가 ‘참나무’라면, 꽃 중의 꽃이 ‘참꽃’이다.

어릴 때 이야기다.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도중에 너 나 할 것 없이 야산자락에 기어오른다. 진달래 가지를 한아름씩 꺾어들고 양지바른 언덕배기 아래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꽃잎을 허덕허덕 따먹는다. 진달래꽃 피는 때가 바로 보릿고개 철이다. 먹을 게 없으니 초근목피로 연명을 한다. 진달래 꽃잎은 양반이고, 찔레 순에다 송기(松肌), 띠풀(비삐)의 꽃대 ‘삘기’, 잔디뿌리까지 캐서 꾹꾹 단물을 빨아먹곤 한다. 서럽다. 배고픔보다 더 서러운 게 또 어디 있는가. 북쪽의 어린이 사진을 대할 때마다 옛날의 나를 보는 듯 가슴이 저려온다.

실컷 뜯어먹고 나면 입가가 푸르죽죽해진다. 제 입에 묻은 줄은 모르고 남의 입만 그런 줄 알고 하! 하! 배꼽을 쥐고 웃어젖힌다. 그렇게라도 허기를 면하고 나면 어린이의 본성, 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는다.

꼬마들은 놀지 않고 못 배긴다. 강아지가 그렇고 사자 새끼도 놀면서 자란다. 진달래꽃에 눈이 간다. 진달래 꽃잎 끝은 다섯 갈래로 짜개져 있고, 그 안에는 굵고 길며 짙은 색을 띤 암술 하나와 짧고 가늘며 옅은 색을 한 열 개의 수술이 둘러나있다. 암술이 수술 위로 쭉 뻗어난 것은 제꽃가루받이(자가수분)를 하지 않겠다는 심보다.

드디어 암술 하나를 조심스럽게 뽑아서 침을 쓱 바른다. ‘꽃술 싸움’이다. 짝꿍끼리 암술을 X자로 잡아 걸고 끌어당겨 잘라지는 쪽이 지는 것. 서로 짧게 잡겠다고 샅바싸움이 오래간다. 이긴 사람은 희희낙락, 손가락 끝에 호호 입김 쐬어 친구 이마에 딱! 꿀밤을 먹인다. 이렇게 당시에는 주변의 모든 것이 먹거리요 놀잇감이었다.

진달래는 그늘 지고 북으로 엇비슷한 곳(北斜面)에 잘 자라고 씨앗으로 번식한다. 진달래꽃을 두견화(杜鵑花)라고도 한다. ‘두견화 피는 언덕에 올라 풀피리 맞춰 불던 내 친구야….’ 진달래꽃이 필 무렵이면 저 멀리 대만이나 인도, 호주 근방에서 겨울을 보낸 두견이(소쩍새)가 날아온다. 너무나 통절(痛切)하게 울어대어 듣는 이의 가슴을 찢어놓는 두견이! 늦은 밤 소쩍소쩍 내지르는 소리가 남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왜 그리도 슬피 우는지. 심장이 다 멎는다. 두견이는 중국의 촉(蜀)나라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붙었다는 전설을 가진 새다. 그리고 진달래꽃도 한 맺힌 두견이가 토한 피(吐血)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서 진달래꽃잎은 붉다. 핏빛 진달래!

진달래 따라 이른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저 산수유, 목련, 산철쭉, 철쭉, 개나리들은 죄다 지난 가을에 이미 꽃망울을 달고 있었다. 하여 봄이 오자마자 저렇게 서둘러 봉오리를 터뜨리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준비하면 우환이 없다’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을 그들에서 배운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