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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섹스

사오정버섯 2007. 2. 19. 22:06
[권오길의 과학세상] 꽃의 섹스

정말로 대자연(大自然)은 아름답다! 잎사귀 돋고 꽃피고, 흩날리는 나비 벌에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아우러져 웅장한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지 않은가. 삼라만상이 기지개를 켜는 봄, 봄이 우리 곁에 온 것이다.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봄맞이 오라고 요염한 손짓을 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서 우리의 어머니,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 그들과 더불어 듣고 보며 봄을 즐겨볼 것이다. 그 매섭게 아린 칼 같은 겨울이 있었기에 봄이 이렇게 따스하고 아름다운 것이리라.

젊어 고생을 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행복을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언제나 여름인 적도 지방의 벌은 꿀을 모으지 않는다. 안정된 환경에 사는 생물에게는 절대로 변화(진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까다로운 환경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바뀜이 생긴다. 성공한 사람들 거의 모두가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겨낸 이들이 아니던가. 추운 겨울이 없는 곳에 살면 먹을 것이 지천으로 있는데 왜 벌이 꿀을 따 모으겠는가. 그래서 그곳의 사람들도 매한가지로 게으르고 느려터졌다. 아무튼 환경에 따라 생물의 행동과 습성이 달라지니 어느 하나 환경의 산물이 아닌 것이 없다.

흐드러지게 맵시를 뽐내고 있는 꽃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꽃은 무엇이며, 왜, 어째서 저렇게 철따라 피어나는 것일까. 우리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울긋불긋, 형형색색으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정녕 아니다. 벌이나 나비 또 다른 곤충들을 불러들여서 수술의 꽃가루(花粉)를 암술에 달라붙게 하여 씨를 맺자고 저러고 있다. 꽃을 아주 좋아했던 식물학자로, 학명 쓰기를 창안해낸 유명한 분류학자 스웨덴의 린네(Linnaeus)는 꽃을 보면서 “가운데 자리에 한 여자(암술)가 드러누워 있고 둘레에 여러 남자(수술)가 둘러앉아서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맞는 말이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 동물은 생식기를 몸 아래쪽에 달고 있는데, 식물은 몸(줄기)의 위 끝자락에 수줍음 하나도 없이 덩그러니 매달아 곤충들을 꼬드기고 있다. 사람들은 그 꽃을 혐오스럽게 생각지 않고, 코를 들이대고 음액(陰液)의 냄새까지 맡고 있으니…. 곤충이 옮겨준 꽃가루를 받아 자식(씨앗)을 만드는 생식기가 꽃이다. 그런데 꽃에 따라서는 꽃가루를 바람에 태워 날리는 것(풍매화)도 있고, 곤충을 통해 옮기는 것(충매화)도 있다. 사막에서는 꽃가루를 벌새나 박쥐가 배달하기도 한다. 꽃은 이런 동물들을 끌어들이려고 오만가지 향기에다 더없이 달콤한 꿀을 만들어 놓는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는가. 벌레들이 꿀을 얻어 먹는 대가로 꽃가루를 옮겨주니 하는 말이다.

한 꽃송이에 암술과 수술이 다 있는 꽃을 양성화라 한다. 그런데 제 꽃 수술의 꽃가루를 안에 있는 암술머리에 묻혀주면 열매가 잘 맺힐까. 과수원에서도 배나무나 복숭아, 자두나무를 가능한 여러 그루를 모아 심는다. 저 멀리 홀로 서 있는 자두나무에는 열매가 잘 맺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그루의 꽃가루를 그리고 가능한 한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아야 씨가 잘 맺힌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즉 같은 꽃의 꽃가루와 가루받이(受粉)를 하지 않으려 든다는 것이다.

제 꽃송이의 꽃가루를 받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는 성질을 자가불임(自家不稔)이라 한다. 묘하지 않은가. 식물도 유전자가 비슷한, 가까운 사이에는 종자를 맺지 않는다는 것이. 같은 꽃에서도 암술을 아주 길게 늘어뜨려서 자가수분(通情)을 피하는가 하면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를 달리하여 제꽃가루받이를 피한다. 영리하기 짝이 없다.

지렁이나 달팽이는 제 몸에 정자를 만드는 정소와 난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자웅동체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다른 개체와 교미를 하여서 딴 정자를 받는 타가수정도 한다. 자가수정은 사람에 비유한다면 근친 결혼인 셈이다. 근친 결혼을 하면 좋지 못한 유전자끼리 만나서 나쁜 형질의 자손을 낳기 쉽다하여 굳이 피한다. 동성동본끼리 결혼을 삼가는 것이 그런 것이다. 우생학(優生學)은 우리보다 동식물이 더 먼저 알고 있다.

(권오길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