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살어요/알면 좋은 상식

조개껍데기 구멍의 진실

사오정버섯 2007. 2. 19. 18:13

[권오길의 자연이야기]

 

                조개껍데기 구멍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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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물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지 않네/ 랄~~’.

여러분은 여름 밤바다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윤형주의 이 노래를 많이도 불렀을 터. 그런데 조개껍데기를 어떻게 묶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목에 걸어준담? 송곳으로 뚫어 실로 꿰었을까?

한데 바다가 뭐기에 그렇게 동경의 대상이 되고, 뭇사람이 내달려가 풍덩풍덩 몸 담그며 좋아들 하는 것일까? 그렇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생명체가 제일 먼저 바닷물에서 생겼다고 여긴다. 굳이 진화를 말한다면, 여기에서 생긴 원시생물체가 발달하고 변하여 지금의 나, 우리가 됐다는 것. 그리고 가만히 보면 우리가 280일간 자랐던 어머니의 태(胎) 속의 물, 즉 양수(羊水)가 요상하게도 바닷물의 짜기(염도)와 비슷하다!

누구나 바다에 가면 ‘바닷가의 나그네(stranger on the shore)’가 되어 모래사장을 어슬렁거리게 된다. 군중 속의 고독을 즐기는 외로운 길손은 저 멀리 아스라이 굽어진 수평선을 쳐다보기도 하지만 저절로 모래바닥에 고갤 떨구기도 한다. 거기에는 쪽빛 바다파도에 밀려온 수많은 조가비(이매패·二枚貝)들이 속배를 드러내놓고 흐드러지게 널브러져 있다. 워낙 오랫동안 물에 씻기고 햇볕에 바래져서 하나같이 껍데기가 새하얗다. 펄썩 주저앉아 바싹 눈을 들이대고 어지러이 널려 있는 것들을 살펴본다. 조개껍데기에 일부러 파낸 동그란 구멍이 뚫려 있다!

정신을 가다듬고 봐야 한다. 조개껍데기는 분명히 겉과 속이 있다. 어느 쪽에서 구멍을 뚫어 들어갔는가를 보란 것이다. 밖에서 안으로? 아니면 안에서 바깥으로? 맞다. 널따랗게 파기 시작해 안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좁아들다가 결국은 작은 구멍이 동그랗게 뻥 뚫려버린다. 밖에서 뭐가, 누군가가 일부러 구멍을 낸 것이다. 바닷속에는 포악한(?), 육식하는 천적(天敵)이 있으니 바로 ‘구슬우렁이(moon shell)’다. 모양이 둥그스름하고 껍데기가 아주 딱딱하고 표면이 반들반들한 것이 이 무리의 특징이다.

조개에 난 구멍은 바로 ‘죽음의 구멍(hole)’이다. 구슬우렁이 놈들이 꽉 닫힌 조개를 쉽게 열어 먹을 수 없으니 옆구리에 구멍을 내기 시작한다. 입 안에 있는 끌 모양의 치설(齒舌)로 껍데기를 갉아내고 또 문지른다. 여기서 치설이란 조개를 제외한 모든 연체동물(軟體動物)만이 갖는 기관으로, 먹이를 핥거나 자르는 일을 하는 일종의 이빨이다. 몇날 며칠을 삭삭 긁고 녹여 조아드는 소리를 조개는 듣고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게 문제로다. 우렁이는 조개껍데기(패각·貝殼)가 염산(鹽酸)에 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입에서 그것을 펑펑 쏟아부어 몰랑해진 껍데기를 줄칼로 쓱쓱 녹여 들어간다. 굴착기(掘鑿機)가 따로 없다.

결국은 조개껍데기에 구멍이 나고 만다. 먹고 먹힘의 순간이다! 드디어 고둥은 능청맞게 이죽거리며 침샘의 독물을 조개 몸 안에 쏟아붓는다. 조개는 나른하게 마취되면서 결국 폐각근(閉殼筋)이 힘을 잃고, 두 장의 껍데기가 스르르 맥없이 열려버린다. 구슬우렁이는 단방에 주둥이를 들여 처박아 게걸스럽게 여린 조갯살을 뜯어먹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멍이 조가비구멍이요 한 맺힌 ‘죽음의 홀’이다. 그 구멍에다 실을 꿰어 목에다 걸어주었고 또 걸어줄 것이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