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 자연이야기]
해삼의 생존법
해삼을 먹는 나라는 지중해 연안의 몇 나라와 동남아, 중국, 일본, 한국 정도다. 우리는 해삼을 ‘바다의 인삼’이라 부르는 데 반해 서양에선 생긴 모습에 따라 ‘바다의 오이’라고 부른다. 해삼은 위기에 처하면 내장을 토해 적(敵)이 먹게 하지만 그래도 살아남아 내장을 재생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그래도 여름엔 바다 이야기가 안성맞춤이다. 이번엔 바다로 가서 해삼을 잡아보자. 해삼은 영어로는 ‘sea-cucumber’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바다 오이’다. 산에 나면 산삼(山蔘)이요, 바다에 살면 해삼(海蔘)이라, 이 ‘삼(蔘)’자가 붙은 것이라면 사족(四足)을 못쓴다. 우리는 먹는 데 정신이 팔려 ‘바다 삼’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저쪽 사람들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아 그것이 오이를 닮았다고 ‘바다 오이’로 표현한다. 임어당(林語堂)께서 하신 말씀이 언뜻 떠오른다. “우리 중국 사람은 물고기를 보면 잡아먹을 생각을 먼저 한다. 서양인은 그것의 발생, 생태를 알고 싶어하는데 말이지.”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가?
살아있는 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이 원통형으로 길고 등짝에는 오돌도돌한 돌기가 나있어 진짜 오이를 빼닮았다. 학자들은 해삼을 불가사리, 거미불가사리, 성게와 함께 극피동물(棘皮動物)에 넣는데, 이미 2300여년 전 ‘생물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을 무혈류(無血類)와 유혈류(有血類)로 나눴으며, 해삼을 무혈류로 분류하였다. 기원전(384~322년)에 62세를 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시대로는 아주 장수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생물학자들은 하나같이 오래 살았다. 필자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해삼을 먹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아서 지중해 연안의 몇 나라와 동남아, 중국, 일본, 우리 정도라 한다. 그 비싸고 맛있는 해삼을 먹지 않는다니 바보들이 아닌가. 어떤 나라는 그걸 잡아서 비료로 쓴다니 말이다. 예부터 해삼은 혈분(血分)을 돕는다고 한약재로 썼다고 하며 그것말고도 해삼백숙, 해삼알찌개 등 중국요리만도 2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해삼은 위기에 처하면 내장을 토해내어 그것을 적(敵)이 먹게 하는 자해(自害)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인간 나부랭이’ 자해공갈단이 펼치는 자해와는 의미가 다름에 유의하자. 심하면 도마뱀이 꼬리를 던져주듯이 몸의 일부를 잘라버리니 자절(自切)이라 한다. 속 다 빼주고 살아남아 내장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재생(再生)을 한다니 모질고도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하겠다.
해삼의 소화관의 끝 쪽, 항문 안에 호흡수(呼吸樹)라는 호흡기관이 있다. 물고기 중에 ‘숨이고기’라는 작은 놈이 이 항문을 들락거리며 살고 있으니, 그들 사이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공생(도움살이)이 일어난다. 큰 고기가 숨이고기를 잡아먹으러 달려들면 재빨리 해삼 똥구멍으로 쏙 들어가버리니 잡아먹을 수가 없다. 게다가 해삼은 독이 있어 언감생심(焉敢生心)이고. 이렇게 숨이고기는 해삼한테 톡톡히 신세를 지는데 어떻게 그 빚을 갚는가. 그렇다. 숨이고기가 항문으로 들락거려서 바깥의 새 물(水)이 들어가고 속의 더러운 물이 나감으로써 호흡수에서 깨끗한 공기(산소)를 얻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것이다.
숨이고기가 아닌 놈이 항문에 침입했다면 맹낭(盲囊)을 터뜨려 독을 뿜는데 눈도 코도 없는 해삼도 적과 동지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포식자들은 언제나 피식자의 내장을 좋아하는지라 물고기들이 해삼(맹낭)이 분비한 점액 덩어리를 냉큼 먹어 치운다. 점액에는 홀로수린스(holothurins)라는 독소가 들어 있어서 한번 크게 당한 물고기는 다시는 해삼에게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어느 생물이나 다 제 몸을 보호하는 방어장치를 가지고 있더라!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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