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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 일송정 해란강 상록수 초가집 향수

사오정버섯 2007. 2. 19. 16:41

선구자  일송정  해란강 상록수 초가집 향수

 

지난세기 초 그리고 어렸을 때 얘기를

메일로 엮어보고  싶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그림을 모으고

글을 모으고 보충글을 써 보았습니다.

 

 

 

 


 

 

              선   구   자

조두남(趙斗南) 작곡, 윤해영(尹海榮) 작사. 작곡자가 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을 때인 1933년, 경력을 알 수 없는 작사자의 청에 의해 작곡한 것이다. 만주 벌판을 말을 달리던 옛날 선구자의 모습을 그리며 작곡한 것으로, 두도막형식으로 된 힘차고 정열적인 가곡이다.

곡의 흐름이 유창하고, 강인한 의지와 선구자의 개척정신이 노래로서 잘 표현되어 있다. 각층에서 많이 애창되는 가곡 중의 하나이다 

작시 : 윤해영    작곡 :조두남  
노래 : 대우합창단

一松亭 푸른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海蘭江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 때

뜻깊은 용문교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 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이 가곡의 가사는

북간도 용정(龍井)을 배경으로 작시한 것으로,

가사 첫머리의 <일송정(一松亭)고개>는

독립투사들이 오가며 쉬던 곳이며,

해란강(海蘭江)>은 그 옆을 흐르는 강 이름입니다.

조두남은 당시 망명청년으로서 1933년 21세 때

이 시에 곡을 붙였다고 합니다

일     송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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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독립운동의 근거지  용정! 

오늘날에는 관광지로 우리 국민들이 많이 찾는곳!  

연길에서 용정으로 가다가  야산 위에

자그마한 정자가 눈에 띄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일송정'입니다.


전에는 늠름한 자태의 소나무가 한그루 서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작은 소나무 한그루와 정자가 있습니다.
이 소나무 밑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항일의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고 합니다.


이를 미워한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넣어 일송정을 고사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위의 정자는 1980년대 후반 중국정부 에서 이곳에

'일송정'이라는 이름의 정자를 건립하여

이를 기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1991년  중국과 국교가 수립 되기전 이곳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차에 탄 동료 분들이 마음과 입을 모아 이 선구자 노래를 몇번이고 합창으로 불렀습니다.

마음이 뭉클 해 지고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고생하시면서 독립을 위해 힘을 기울이셨을가?

그때는  이 노래글을 누가 썼으며 곡을 부쳤는지도 모르고 몇번이고 반복 했습니다. 

그때 같이 그 차에 타셨던 동료 분들

지금 제 메일을 같이 보시고 계실 줄 압니다.

 

 

해  란  강  (海蘭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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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구자에 나오는 용정지역의 강입니다.
이 강이 선구자에 나온 이유는 우리 민족이 간도 지방에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이 해란강 주변의 들판이었고,

그 중심 젖줄이 해란강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제법 물이 흐르는 강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위에 보이는 그 모습이군요.

 

 

 


상록수와 초가집

저는 얼마전 TV에서 추억의 영화 상록수를 본 적이 있고

또 안산 상록구에 있는 용신거리를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와 주변의 초가집과 풍물들이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씨멘트 빌딩과 아파트와 아스팔트 도로로 변해버린 이 거리가 상록수의 무대였단 말인가?


문득 옛 추억이 떠오르고  옛것을 보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의 상징이 초가집이고 옛날의 풍물이어서 그것을 찾아 제 메일을 함께 하시는 회원님들과 같이 감상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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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는 심훈님이 농촌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현상모집에 응모하여 당선된 작품으로,

심훈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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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님과 살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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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沈熏)닠의 장편소설. 1935년 동아일보사의

<창간15주년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서 당선되어

같은 해 9월 10일부터 1936년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습다.

80%가 넘는 사람들이 농.어촌에 살던 때 였습니다.

더 이상은 설명드림 필요가 없을줄 압니다.


아래 사진은 변해버린 안산시 상록구 용신로 주변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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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날의 최은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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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들의 모습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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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님의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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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초가집 들에은 다음의 댓글이 붙어 있습니다,

 


정이 물씬 풍기는 시골풍경이 정겹지요,


기우뚱한 기둥에 못생긴 흙벽은 허리 아플때 기대볼만 하지요,


손바닥으로 문질려서 바른 뜨끈뜨끈한 아랫묵은 와그리 그리워질까?

눈쌓인 초가삼간에 밤이 찾아들면 화로에 묻어둔

군고구마 생각이 절로 납니다,


 


평온한 풍경이 너무 정겹네요.


저의 집은 대궐같은 조선 중기의 집이라 초가집에서는

살아보지 못했지만 친구 집에 가 보면 뜨끈한 아랫목이 좋았답니다.


특히 겨울에 군밤을 구워 주시던 친척 할머님의

따사로운(사실은 거칠었지만 보드랍게 느껴졌음)

손길이 좋았었답니다


초가집들이 다 예쁘네요..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릴적 저희 집은 못생긴 초가집이었는데..


산으로 둘러사인 시골 출신이라 이런 사진을 보면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