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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의 사랑이야기-9편(사랑을 위하여-백수 드디어 취직하다)

사오정버섯 2008. 3. 11. 09:38
사오정의 쉼터
 
 
<< 백수와 만화방 아가씨 >>

백수의 사랑이야기-9편
(사랑을 위하여-백수 드디어 취직하다)
 

 

 

  등대꽃-사오정

 

만화방아가씨 :
 
그 녀석하고 많이 가까워 졌다.
하루하루 그녀석이 나타나기만을

고대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직 약간은 어색하지만 이제 제법

그가 나한테 말을 건다.
쥐포도 구워주고...

만화책정리도 해주며 만화방 일을 도와준다.
그리고 손님이 아무도 없을 때면
음악을 틀어놓고 같이 앉아 만화책도 봤다.
옆에서 킥킥거리는 녀석이 점점 사랑스러워진다.
백수면 어때 같이 만화방하면 되지 이런 생각까지 든다.
이제는...


 
백수 :
 
그녀하고 점점 거리가 가까워짐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녀 앞에서 더듬거리던 말솜씨도
제법 멋있는 말도 할 줄 아는 화술로 바뀌어 가고 있다.
그리고 손님이 없을 때면 그녀가 틀어놓은 음악을 들으며
같이 앉아 만화책을 보며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옆에 앉아 있는 그녀에게 점점 내 마음을 고백하고 싶다.
그치만 난 여전히 백수다..

 

만화방아가씨 :
 
오늘 그가 다른 때보다 더 헐떡이며 만화방을 찾아왔다.
드디어 발령 대기가 풀렸다면서... 기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수원으로 연수를 떠난다고 했다.
기숙사생활을 하며 단체생활과 그 회사의

기업정신 등을 배운다고 했다.
적지만 월급도 받는다며 자랑을 했다.
하지만 잘못하면 바로 짤린대나... 잘되었다.
부디 열심히 잘해서 자신감을 찾기

바란다며 기쁜 표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아쉽다.
그가 일주일 뒤부턴 만화방을 못나올 것이기에.
것두 100일씩이나...
그래도 그 백수딱지 그때쯤이면

말끔이 떼어 냈으면 좋겠다.

 


백수 :
 
오늘 회사 다녀와서
아버지 어머니께 드디어 취직이 되었다고 했더니
부부가 얼싸안고 꺼이꺼이 우신다.
백수인 날 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참 안스러워셨나 보다.
만화방으로 달려가서 이 사실을 그녀에게 알렸다.

그녀도 기쁜 모양이다.
하지만 난 일주일 뒤 수원으로 떠난다.
100일 동안 그녀를 못볼걸 생각하니
취직되었다는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 크게 밀려온다.

 

만화방아가씨 :

 
오늘 그가 만화방에 나오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수원으로 떠났나 보다.
서운했다.
이미 나도 그에게 사랑의 감정이 생겼나 보다.
이 자식 취직됐다고 날 모른척 하기만 해...
훗! 그 녀석 잘해낼까...

 

백수 :
 
오늘은 가슴이 떨려 만화방에 가지 못하겠다.
그러나 내 마음은 지금 몹시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장식되어 있다.
나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내가 없는 동안 누가 그녀한테 껄덕 될까봐 걱정이 된다.
그녀가 없는 그곳에서
과연 그리움을 참아내며 잘 해낼 수 있을까?...

 

만화방아가씨 :
 
그가 떠난지 열흘만에 전화가 왔다.
사관이 졸라 재수없다고 그랬다.
빨간체육복을 생활복으로 줬다는데

쪽팔려 죽겠다 그런다.
하하... 그 체육복 입은 그의 모습이 보고 싶다.
전화는 자주 못할 것 같다고 그러면서
시간나는데로 편지를 보내겠다 한다.
만화방 앞에 편지통 하나 설치해야겠다.

 

 

 

백수 :
 
얼마나 비참한 백수 생활을 했던 걸까...?
이 방 놈들 몰골은 꼭 북한에서

목숨걸고 귀순한 사람들 같다.
동병상련을 느끼고 잘해보자며 서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금방 친구가 됐다.
사관이 여간 깐깐한게 아니다.
빨간 체육복 입혀서 아침마다 운동장을 돌게 한다.
숨은 안 가쁜데 쪽팔려 죽겄다.

 

만화방아가씨 :
 
멀리 떨어진 그가 오늘따라 그립다.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화방에 그가 모습을 감춘지 이제 일개월 째다.
가을날 떨어지는 한 잎 낙엽이 그 녀석 모습이 되어
바람에 흩어진다.
그 녀석한테 편지가 왔다.
귀여운 데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애틋한 글로 날 감미롭게 할 줄도 안다.
자기 방에 온통 애인 사진 붙여 놓은 놈들 때문에
서러버 죽겠다라며
최근에 이쁘게 찍은 사진 있으면 보내달라고 했다.
뭐야 이놈... 누가 자기 애인이라도 된다는 거야?...
오늘 난 그에게 답장을 쓰고 있다.

내일 아침 일찍 그에게 이 편지를 보내야겠다.
오후에 찍은 내 사진을 고이 넣어서 말이다.
나는 그대가 곁에 없어도 그대가 항상 떠오른다.
그대가 그리움으로 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백수 :
 
그녀한테서 편지가 왔다.
너무나 애틋하다.
이제 서럽지도 않다.
이 방 벽에 붙어 있는 모든 여자들보다
이 사진 속의 그녀가 백배는 이쁘기 때문에...
오늘 그녀한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너무 없다.

뒤에 있던 놈이 넌 애인일지 몰라도
난 마누라다 그러며 빨리 끊어라 그런다.
끝까지 이 전화기를 사수하리라.
그러나 오늘까지 전화 못하면
마누라한테 맞아 죽는다라는

그 녀석 말이 너무 실감나게
들려 그녀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만화방아가씨 :

 
그 녀석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무 반가웠다. 할말이 너무 많은데..
뒤에 있는 사람이 자꾸 빨리 끊어라고 하나 부다.
아쉽고 그리고 그 녀석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금 그의
모습이 그립다.
뒤에 어떤 녀석인지 내 손에 잡히면 주거!...

콱..밟아뿌까~마.

 

백수 :
 
그녀가 너무 그립다.
바깥 찬겨울 공기는 이미 제 삶을

다한 듯 싸늘히 식어 있다.
아침에 빨간 체육복입고 도는게

이제는 더 이상 쪽팔리지 않다.
스피커에서 그 성질 더러븐 놈이 지껄인다.
밥도 안주고 또 모이라고 한다.

꼬로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에그 배고파라 어떤 간부가 나오더니 뭐라 그런다.
저놈이 뭐라 그러던 들을 힘도 없다.
근데 다들 함성을 지른다.
뭔 일일까?...

내 앞에서 날뛰는 한 놈을 꺼집어 앉히고 물어 봤다.
"회사가 돈이 없대...
그래서 연수기간을 이번 주로 줄이고 정식 발령이 난대...
토요일이면 집에 갈 수 있다..."
야호... 토요일이면 집에 간다.

그리운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지윤씨가 먼저 떠오릅니다.
이래서 자식은 다 필요없다고 하나 보다.
며칠 뒤면 지윤씨를 보는구나...!
전화를 해야쥐...

배고픈 것도 잊고 기숙사 방으로

달려가 전화카드를 찾았다.
그리고 전화를 하려고 가봤더니 벌써 줄이 길다.
새끼들 전화 좀 빨리 끊어라.
한 놈 한 놈 넘 오래한다.
꺼이 꺼이 우는 놈도 있다.
3개월 가까이 잡혀 있었던게 뭐 그리 섭고 대단하다고...
군대가 8개월도 꼼짝않고 박혀있어 봤는데...

너무하다...
배도 고프다.
끝까지 기다리다간 굶어 죽겠다.
전화차례 기다리다 그녀가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날 보면
상당히 감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좋네...


만화방아가씨 :
 
아침에 까치가 만화방 창틀 위에서 울었다.
누구 반가운 이라도 올려나?
그 녀석 생각이 난다.
만화방 문이 열리면서 그가 나타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가 올려면 아직 보름이상 남았다.
갑자기 만화방 문이 열렸다...

괜히 그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본적이 있는 녀석이
이제는 저게 한때는 노란색이었다는 것만 짐작이 가는
잔뜩 때묻은 츄리닝녀석과 함께

딸딸이를 질질 끌며 들어왔다.
아까 그 까치 어딨어? 잡아 주길껴...

 

 


백수 :
 
아침에 잔뜩 긴장이 된 채 정식발령자명단

붙은 거를 보았다.
잘못 보였다면 짤릴 수도 있다.
23번 하우서 구미 **지사 관리부.
야! 안 짤렸다.
거기다 구미면 집에서 통근도 된다.

아부지 어머니...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또 지윤씨가 먼저 떠오릅니다.
지윤씨 이제 나 백수 아니야... 흑흑...
기숙사 방에서 짐을 꾸렸다.
짐이래야 세면도구하구 빨간 체육복뿐이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으로 짐을 싸구 있다.
하하... 드디어 집에 간다.

간단한 조례를 했다.
우리 한번 열심히 일해서 어려운

이 시기를 잘 헤쳐 나갑시다.
자꾸... 뭐라 그런다.
한마디로 앞으로 잘하라 그 소리 아닌감...
잘하께! 빨리 끝내라...
집에 갈 채비를 모두 마쳤다.
그때 지윤씨가 보내준 그 사진을 자꾸 꺼내어 보았다.
삼 개월 동안 뭐 변한게 있으련만...

참 새롭게 보인다.
드디어 대구 가는 버스를 탔다.
설렌다. 밖의 전경들이 너무 애틋하게 지나간다.
오늘 그녀를 보면 말하리라.
그동안 사랑했었다고. 아니 사랑한다고...
그리고... 하하... 과연 할 수 있을까?
날씨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잔뜩 흐려있다.
갑자기 소변이 마려 온다.
조금만 참자... 조금 있으면 휴계소다.

 


만화방아가씨 :
 
어제 밤에 무엇인지 기억되진 않지만 그가 나타났다.
지금 아련한 그의 영상으로 난 가슴이 떨려온다.
아침에 그렇게 멍한 상태로 밥을 먹었다.
마음이 울적해 온다.
오늘이 주말인데...

그 녀석이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
그가 주말오후는 외출이 가능하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아! 그가 왜 이리 보고 싶을까...
뱅크의 6집 앨범을 틀었다.
음악 때문이었을까...
괜히 그가 더 그리워졌다.
에이 열쇠가 왜이리 안 잠겨...
만화방에 열쇠를 채우고 있는데...
단골이 되어 가는 츄리닝녀석이
"아줌마 오늘은 만화방 안하는 겁니까?"
"안해 쨔샤..."

뒤도 안 돌아보고 택시를 잡아 탔다.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애뜻하게 지나치는 이젠 벌거숭이가

된 논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가 날 보며 좋아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게 그 위에 그려진다.
갑자기 찾아간 날 보면
그가 왠지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것 같다.
하늘은 왠지... 첫눈이라도 내리게 할 것 같이 흐리다.

 

 

 
 

백수 :
 
이제 배까지 아파 온다.
아저씨 빨리 좀 가요.
금강휴계소가 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아 시원하다. 화장실 안에 스피커가 있나 보다.
디게 시끄럽다.


대구발 서울행 10시 XX우등고속

승객분은 탑승바랍니다.
서울발 대구행 9시30분 현철고속

승객분은 탑승바랍니다.
졸라 시끄럽네...
싸고 나오니 왠지 배가 고프다.
휴계실로 들어가 우동을 하나 사먹었다.
자판기에서 캔커피 하나 뽑아서 차에 탔다.

 

만화방아가씨 :
 
이번 금강휴계소에서 잠시 정차한다고
운전기사가 방송으로 안내했다.
배가 조금 고프다.
휴계실에 가 우동이나 하나 먹어야 겠다.
휴계소 이름이 참 이쁘다.
우동을 먹고 나서 자판기에서 커피를 하나 뽑았다.

근데 하필이면 자판기가 남자화장실

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냐?...
기분 나쁘다.
커피를 뽑아 드는데 안내 방송에...
대구발 서울행 10시 XX우등고속승객은

탑승하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타고 온 버스다.
이젠 휴계소 들리지 말고 곧장 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올라가는데 그를 볼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백수 :
 
이젠 곧장 대구로 간다.
자꾸 그녀얼굴이 떠오른다.
진짜로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리라...
이젠 백수가 아니기에...
그녀가 뭐라 답해줄지 궁금하다.
연습이나 해볼까...?


지윤씨...! 저 더 이상 백수가 아녜요...
에... 당신이 아줌마가 아닌걸 안 순간부터
쭉 사랑해 왔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지윤씨... 넘 긴가...? 하하
창밖에는 이런 나에게 축복이라도 하듯이
첫눈이 나리고 있다.

 
만화방아가씨 :
 
그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자꾸 맘이 설레어진다.
그가 날보고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까...?
기대는 되지만 후...

분위기가 영 없는 놈이라...
그래도 이제는 백수딱지도 뗐는데...
그래 고백할거 같다.
그러면 난 뭐라 그러지.

음 이게 좋겠다... 연습이나 해볼까?
그래요. 저두 언제부턴가 우서씨를

사랑하게 됐었나 봐요...
넘 솔직한가... 호호.
창 밖에는
이젠 가슴 저리는 가을이

끝났음을 알리는 눈이 소담스럽게
나리고 있다...........
 

재미나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끝---

 

박태기나무 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