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수와 만화방 아가씨 >>^^*
백수의 사랑이야기-6편 (빗나간 생일-빗나간 장난전화)
백수 :
만화방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는 날짜가 있는 걸 보았다.
무슨 날일까?
아마 한달에 한번 정도 그 삭막한 아저씨가 오는 그날인가 보다.
무슨 날인가 ......?
(음흉한 웃음) 조심해야겠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긴 해도
그녀의 성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가스통같은걸 안다.
그날 잘못 걸리면 뭔가 날라올 것 같은 으시함이 들었다.
만화방아가씨 :
며칠있으면 내 생일이다.
이젠 내 생일날을 축하해 줄 사람도 별루 없다.
슬프다.
달력에다 동그라미를 쳐놓고 나를 달래 보았다.
혹 그 백수가 이 표를 보고 내 생일인걸 생각할 수 있을까?
괜한 기대는 하지 말자.
그 녀석은 인간의 탈을 쓴 바보다. 저길 봐바.
가스총에 맞은 것처럼 으시시대잖아...
백수 :
그녀를 보러 만화방으로 갔다.
오늘은 이름과 나이를 꼭 알아야 겠다.
"에... 아줌마... 아줌마 노처녀 맞죠?"
얼떨결에 이렇게 말해 버렸다.
만화방아가씨 :
이 백수녀석이 아줌마도 모자라서
이제는 노처녀라고 놀린다.
열 받아서 25살도 노처녀야? 라고 따졌다.
백수 :
25살? 생각보다 훨씬 어리네.
그럼 나하고 3살 차이니까... 음... 딱 좋네.
이렇게 생각하니 그녀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인다.
만화방아가씨 :
그 녀석이 내가 만으로 25살인걸
눈치챈 것 같은 요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27살이라고 말해버릴까?
저 녀석 나이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쪽은 몇 살 먹은 백순데요?" 라고 말했다.
백수 :
역시 그때 내가 백수라고 한걸 들었구나... 흑
28살이나 되어 가지고 백수라 그럴까봐
아줌마보다는 한살 많아요 라고 말했다.
잘했쥐...
만화방아가씨 :
뭐야 연하잖어...!
연하도 괜찮을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저 녀석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다음에 기회 봐서 말을 놓아야겠다.
백수 :
만화방에 오늘은 좀 늦게 갔다.
안에는 그때 삭막하게 생긴 아저씨가 있었다.
그래서 만화책만 뒤적이다. 그냥 집으로 갔다.
가다가 생각하니 오늘이 그날이다.
조심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껏 그녀를 좋아만 했지
뭐하나 준게 없다.
편지도 한번 안 보냈으니...
호주머니에는 만원짜리 하나가 있다.
뭘 사가지고 갈까...?
아무래도 먹는게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떠올렸다.
순대, 족발, 통닭, 닭똥집, 비암, 개고기,모기눈깔,...
아무리 떠올려도 그녀가 좋아할만 한게 없다.
근처에 제과점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저기 가면 뭔가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케익을 샀다. 졸라 비쌌다.
만원으론 거기 있는 것 중에
제일 작은 거 밖에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포장을 해놓으니
순대나 족발 싸놓은거 보다는 있어 보인다.
아직 그녀가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구 있다.
저 자린 아마 졸리게 만드는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거 같다.
그 아저씨한테 이 물건을 주며
어떤 멋있는 단골이 줬다라고만 말하라고 했다.
아저씨가 썩 나를 쳐다봤다.
왜 보셨을까...?
나도 의심이 갔다. 그래서 한마디 더했다.
"이거 먹지 마요..."
그 아저씨가 왠지 그녈 안주고
먹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자꾸 들었다.
그래도 오늘 뭔가 내 마음을 표시한 것 같아 기분이 괜찮았다.
만화방아가씨 :
오늘 내 생일이다.
아빠 엄마한테서 연락 온거 말고는
아무도 내 생일을 기억하며 전화해준 사람이 없다.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 친구를 만나 술이나 한잔하구 자축해야겠다.
그러던 차에 삼촌이 오셨다.
오늘 내 생일이신 걸 아셨나 부다.
내가 만화방 봐 줄테니
오늘 하루라도 맘껏 놀다 오라 그러신다.
겉모습과 달리 마음이 참 상냥하신 울 삼촌이시다.
같이 늙어가는 친구 불러서 놀았다.
그냥 조용하게 제과점서 케익 사서 파티하고
저녁무렵에 괜시리 그때 그 영화 또 봤다.
친구가 딴 거 보자고 그랬는데
그냥 그 영화가 보고 싶었다.
만화방에 가니 삼촌이 뭘 준다.
좀 덜 떨어진 백수같은게
그냥 단골이라 준다 그러면서 놓고 갔다는 것이다.
케익이다.
누굴까? 혹시 그 백술까...?
좀 덜 떨어진 놈이라니... 그런 거 같다.
근데 그에겐 그럴만한 센스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나 오래 못살 거 같다.
미인박명...ㅎㅎㅎ
내 미모는 아무리 감출려고 해도 안되나 보다. 흑흑...
그 녀석이 주었을까...
감히 백수연하 주제에...
근데 나 이거 그가 선물한 것이면 좋겠다.
백수 :
그녀 이름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오늘은 과감히 만화책을 빌리자.
자연스럽게 내 이름도 가르쳐 주고
기회를 봐서 그녀이름도 물어보아야겠다.
그 케익은 잘먹었을까?
만화방아가씨 :
그 녀석이 오늘 무슨 결의를 하고 온거 같다.
역시 그때 그 케익은 그가 준 것이...
무슨 고백이라도...?
근데......
약간이나마 기대를 했던 내 자신이 한심스럽다.
들어올 때 날 쳐다보지도 않고
만화책 몇 권을 뽑아와 가지고
경색된 얼굴로 이거 빌려가겠습니다 라고 그랬다.
난 또... 좀 아쉽다.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 빌려가는 거 같다.
이 녀석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 절호의 찬스다.
나보다 한살 어린걸 알고 있는 터라...
버릇처럼 반말이 나왔다.
"이름이 뭐야? 주소하구 전화번호 불러봐요..."
백수 :
뭐야? ...
지금 나한테 반말을 한건가?
한 살 정도 많은 놈한텐 자연스레 반말이 나온다...?
옛날에 잘 나갔던 여자같다.
그래도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맘은 변함이 없다.
만화방아가씨 :
이름이 하우서이구...
전화번호가... 255-2152. 흠...
심심하면 장난전화나 걸어봐야겠다.
백수 :
우쒸... 내 이름만 가르쳐 주고,
그녀이름을 못 물어봤다.
만화책 안 갖다 주면 울집에 전화가 오겠지...
그때 기회를 잡자...
만화방아가씨 :
그 백수녀석이 또 며칠째 안나온다.
내가 그동안 장난전화쳤던걸 눈치챈걸까?
빌려간 만화책을 잃어버렸나?
내일도 안나오면 만화책 가져오라고
전화를 해야겠다.
만화방 안에 손님은 많은데
그 녀석이 없으니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근데 그 녀석 전화 받는 태도는 고쳐야겠다.
나보고 사오정 귀 파는 소리하지 말고
썩 꺼져라고 그랬다. 나쁜 놈...
백수 :
만화책을 사흘동안이나 안 갖다주었는데도
그녀한테서 전화가 없다.
요 며칠동안 어떤 이상한 년이 자꾸 장난전화를 했다.
동물원이냐? 사자한테 밥은 줬냐...?
심지어 아우웅 아우웅 별 개같은 소리까지 내었다.
그렇지만 난 좋은 말로 타일러 이런 짓 하지 말라고 했다.
내일도 전화가 안 오면 그냥 갖다줘야겠다.
지금 그녀가 몹시 보고 싶다.
백수 :
그녀가 오늘도 전화가 안 올 것 같다.
그래서 아침 일찍 만화책을 들고 만화방으로 향했다.
설렌다.
오랜만에 그녀의 모습을 본다는 기대에
만화책을 들고 하늘을 날듯이 뛰어갔다.
만화방아가씨 :
오늘도 그녀석이 안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화장을 하고 아침 일찍 그 녀석 집에 전화를 했다.
전화를 할려고 하던 차에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만화방으로 들이닥쳤다.
백수 :
백수는 뭘 들고 함부로 뛰어서는 안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만화방 들어오기도 전에 탈진해 죽는 줄 알았다.
만화방 안에 손님이 아무도 없다.
화장을 하고 그녀가 어디에 전화를 하고 있다.
그새 딴 놈하고 선 본게 아닌가 싶다.
찌리릭 쳐다봤다.
만화방아가씨 :
숨을 헐떡거리며 못마땅한 듯 날 쳐다본다.
아무래도 내가 장난 전화한 걸 이 녀석이 눈치챈 거 같다.
그런거 같다고 생각하니
난줄 알면서도 그딴 소릴 나한테 했단 말이야?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그래 내가 사오정이다." 라고 말했다.
백수 :
갑자기 왠 사오정...?
그녀 이름이 오정이었나...?
내가 그녀 이름을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혹시 그녀도 나한테 관심이 있나?
근데 이름이 너무 이상하다.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이름이 오정이었어요?
여기 만화책 가져 왔는데요...
이름이 참 이쁘군요. 성도 특이하고..."
라고 내 딴에는 엄청 길게 또박또박 말했다.
나도 할 수 있다. 아자!
만화방아가씨 :
뭐야 이 녀석 누가 오정이라고?...
내가 장난 전화한거 모르는건가?
그렇다고 내 이름을 사오정이라고 믿어버리다니.
확실히 덜 떨어진 놈임에 틀림없다. 할 수 없다.
저 녀석 성격에 아줌마, 노처녀,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오정이라고 날 부를게 틀림없다.
성까지 붙여서 말이다.
그래서
"제 이름은 지윤이에요. 권지윤.
누가 오정이라고 그랬어요?...
하여간 우서씨 연체료 물어야겠네요..."
말했다.
백수 :
야 단골한테 이럴 수 있나?
하루 늦은 걸루 연체료라니...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왜 난 그녀한테 그런 말할 용기가 없으니까...
아까 왜 사오정이라고 그랬을까?
연체료 내고 나니 만화책 볼 돈이 없다.
할 수 없이 그냥 집으로 왔다.
그녀 이름이 권지윤이랜다.
권지윤. 햐 이름한번 이쁘다.
그리구 그녀가 오늘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내 마음은 그녀가 그려져 있는 아침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만화방아가씨 :
괜히 연체료를 물렸나...?
바보같은 자식...
그렇다고 삐져서 집에 가버리다니.
화장까지 했는데...
역시 속이 좁은 놈이군
한 살이라도 많은 내가 참자.
... 계속...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거~
모든 근심 다버리고 삽시당~
사막의 장미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