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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모를 찾아서’ 보다 휘황찬란한 해저탐험

사오정버섯 2008. 1. 23. 12:44

‘니모를 찾아서’ 보다 휘황찬란한 해저탐험

 

▲다이버들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해 ‘꿈의 고기’로 불리는 고래상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고래상어 어미의 몸길이는 12m 내외며 최대 18m까지 자란다. 몸무게는 15~20t에 달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고기 중 가장 크다. 성격이 온순해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캐논 EOS 400D, EFS 10-22mm 렌즈, ISO 200, 1/60, f5.6, 파티마 400D 전용 수중 하우징)

 

 ‘딸랑 딸랑, 딸랑 딸랑….’ 먼 데서 작은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여러 사람들이 종을 흔드는데 합류하면서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얼른 고개를 들었다. 일렁이는 물살과 산호와 작은 물고기 외에는 딱히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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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앞뒤로, 좌우로 돌리며 확인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12m 길이의 고래상어가 나타났다. 숨이 턱 막히는 놀라움도 잠시, 정신없이 손에 들고 있던 수중 카메라 셔터를 100번 정도 눌러댔다.


 그렇다. 이곳은 태국 푸껫에서 95㎞ 떨어진 시밀란 군도의 수심 20m 바다 속. 딸랑이 소리는 다이버들이 신기한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다른 다이버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다이버 생활 4년, 다이빙 경력 896번 만에 고래상어는 처음 봐요.” 짝을 지어 함께 다이빙을 하던 태국의 다이브숍 ‘마린프로젝트’ 변병흠 강사의 말이다. 다이빙 경력 47번째인 초보자로선 행운 중의 행운을 누린 셈이다.


 도심에서, 실체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일상’이라는 놈에게 쫓기며 살아온 지 36년. 3년 전 만난 바다 속 세계는 바쁜 도시인에게 ‘자유로움’이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가르쳐줬다. 육지의 중력을 벗어난 상태에서는 숨 몇 번 깊이 쉬면 엄청난 기암괴석도 훌쩍 뛰어넘고, 좁은 동굴도 발로 물만 몇 번 차면 스르륵 통과한다. 자신의 숨소리만 있는 고요한 세상에 있으면 인생도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다는 말이 진리로 느껴진다.


 있는 힘껏 달려야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 있는 세상. 신기술이 개발돼 하루 종일 걸리던 일을 1시간 만에 해치울 수 있게 됐는데도 일하는 시간은 늘어나기만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어지럼증을 느낄 때, 바다 속으로 떠나보자. 겨울이라고? 무슨 상관인가. 태국 시밀란처럼 건기인 11~4월에만 문을 여는 바다도 있다. 잘만 뒤져보면 필리핀, 호주, 홍해, 카리브해뿐만 아니라 동해, 제주도 등 한국에도 다이빙 명소가 많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리브어보드 전용선

 

배에서 숙식하며 오로지 다이빙만 하다 ‘리브어보드’
 오후 8시30분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6시간 비행 끝에 푸껫에 도착한 건 현지시각으로 밤 12시 30분. 바로 다이빙 전용선으로 갈아타고 잠을 청했다. 배에서 4박5일간 생활하면서 오로지 다이빙만 하는 ‘리브어보드(Liveaboard)’가 시작된 것이다.


 리브어보드는 통상 2박 3일~4박 5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40만~60만 원의 고가 여행상품이라 배에는 항상 뷔페식 음식과 간식이 놓여있다. 대여용 다이빙 장비, 공기탱크를 충전하는 시설, 에어컨이 달린 2인용 객실, 공용 욕실, 휴게시설, TV, 오디오 등이 갖춰져 있어 생활하기 편리하게 돼있다.

 

▲영상제공= 마린프로젝트


 태양이 수평선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오전 7시에 첫 다이빙이 시작됐다. 아직은 약간 어둡고 차가운 바다. 시리도록 투명한 쪽빛의 바다 속을 하강하면서 해파리, 스내퍼, 스콜피언피쉬 등 이름도 낯선 심해의 물고기들을 만났다. 물살에 따라 흐느적거리는 바다채찍산호, 부채산호, 아네모네가 가득한 곳을 지나 기암괴석과 동굴을 만났다. 40~50분간 다이빙을 한 뒤 배가 아주 고파질 즈음 상승을 시작했다.

 

 


 다이빙을 시작하기 30분 전 어떤 곳에서 물에 들어가 어떤 곳으로 나와야하는지, 조류의 세기는 어떤지, 만날 수 있는 해양 동식물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 브리핑을 듣고 장비를 착용한다. 팔 다리를 완전히 덮는 다이빙 슈트를 입고, 공기통을 메고, 컴퓨터 시계를 차고, 김 서림 방지제를 바른 코까지 덮는 마스크를 쓰는 것으로 준비를 끝낸다. 다이빙 포인트에 배가 멈추고 경적소리가 울리면 20여명의 다이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바다로 뛰어든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일수록 바다 속 풍광이 멋진 곳이 많은데 이런 곳은 오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당일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배에서 먹고 자는 리브어보드가 개발된 것. 당일치기 때는 다이빙을 하루에 2,3번 정도 하지만 리브어보드를 하면 4, 5번까지 하게 된다.


 첫 다이빙을 마치고 배에 오르니 아침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태국의 대표적 국물 음식인 톰얌쿵, 볶음밥으로 푸지게 아침식사를 한 뒤 휴식을 취하는 사이 배는 그날의 최고 포인트로 이동했다.

 

 


 오전 10시30분 두 번째 다이빙을 하고 나면 열대의 강한 햇살이 점점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환하게 열린 바다를 향해 세 번째 다이빙 지역으로 이동하는 동안 점심식사를 하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시원한 객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한다.


 하늘과 바다를 구분할 수 없는 안다만 해를 감상하다보면 인간의 존재도 그대로 자연이 된다. 대국민 사기극을 치고 해외로 도피했던 인사가 검찰에 잡혀 귀국하던 현장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치열한 자리다툼도, 음식사진을 찍기 위해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던 스튜디오의 분주함도 어느덧 남의 일인가 싶다.

 

▲영상제공= 마린프로젝트


 오후 2시에 시작된 세 번째 다이빙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노라면 수평선 너머로 태양이 붉은 자취를 남기고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네 번째 다이빙인 야간다이빙을 위해 배 위에서는 다이버들의 손길이 분주해 진다. 암흑 속에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바다를 살펴야하기에 장비를 더 철저히 점검한다.

 

 캄캄해졌을 때야 비로소 붉은색, 오렌지색 등 강렬한 색깔을 드러내는 물고기와 산호들을 보노라면 밤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 수많은 별을 옮겨놓은 듯하다. 이렇게 4박5일간 경험한 다이빙은 총 14번이었다.

 

 

▲만타레이

 

바다에서 니모를 찾다-바다 속 생물들
 신혼여행지나 휴가지에서 스노클링을 해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얕은 바다에 엎드려서 먹이를 주며 몰려드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스노클링에서 한 발짝 더 나가면 스쿠버다이빙의 세계가 열린다.

 

 

▲바라쿠다


 스쿠버(SCUBA)는 자가수중호흡조절장치((Self Contained Underwater Breathing Apparatus)의 머리글자를 모은 것이다. 수면 아래의 풍경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므로 수영을 잘 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크지 않다. 수영이나 육상처럼 신기록을 갱신해야하는 스포츠도 아니고 축구나 야구처럼 득점을 해야 이기는 경기도 아니다. 이겨야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며칠만이라도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다운시프트 족(族)’이 돼볼 기회다.

 

 

▲고스트파이프피시


 스쿠버다이버가 되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빛깔을 갈아입는 물 속에서 각양각색의 열대어와 산호의 군무를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뱃피시


 미국 픽사사(社)가 2003년 만든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도 바다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고기 중 하나다. 니모의 진짜 이름은 아네모네피시. 물의 흐름에 기다란 촉수를 내맡겨 이리저리 흩날리는 아네모네(말미잘)에 알을 낳고 사는 물고기로 암수가 구분되지 않으며 수놈으로 살아가다 번식기에는 암컷으로 성전환을 한다.

 

 

▲스내퍼


 영화에서 바다 속 장면에 늘 등장하며 떼로 몰려다니는 물고기들은 바라쿠다, 스내퍼 등이다. 바라쿠다는 제법 크고 무섭게 생겼는데 두 눈을 번쩍이며 주위를 맴돌면 겁이 날 때가 많다. 반면 노랗고 파란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스내퍼를 만나면 열대 바다에 온 기분이 절로 난다.

 

 

▲모레이


 바다 속 미확인비행물체(유에프오·UFO)로 불리는 만타레이를 만나는 것은 고래상어만큼이나 다이버를 흥분시킨다. 몸길이는 2.5~6m, 몸무게는 500~1500㎏이나 되는 만타레이는 국내 수족관에도 있는 쥐가오리로 거대한 나비를 연상시킨다.

 

 

▲라이언피쉬


 수중 사진작가에게 단골 모델이 되는 물고기도 있다. 화려한 색깔이 돋보이는 날개 같은 지느러미를 가진 라이언피시,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는 앵거피시, 날카로운 이빨은 내보이면 숨을 쉬는 모습 그 자체가 공포인 모레이, 긴 주둥이와 산호에 자신의 몸을 숨기는 재주가 뛰어난 고스트파이프피시, 산호초 위에 바위처럼 있다가 수초같은 돌기에 먹이가 접근하는 순간 번개같이 낚아채는 스콜피언피쉬. 참 그 뚱한 입술과 불쑥 튀어나온 눈을 보면 가끔 미안한 생각이 드는 그루퍼도 있다.

 

 

▲아네모네피시


 이런 수천 종의 다양한 수중생물이 서식하는 곳들 가운데 유명한 곳으로 태국 시밀란 이외에도 이집트의 홍해, 호주 케언즈,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제도 등이 있다. 돈과 여유가 생기면 어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나폴레옹피시


 5일째 오후 6시. 시밀란에서 푸껫으로 돌아오는 길에 돌고래 떼와 밍크 고래가 물 위로 뛰어오르며 환송해준다. 물 속에서 느꼈던 거대한 생태계와의 일체감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다음을 기약한다. 그래, 우린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에 충실한 삶을 즐기다 어느 순간 만나고 헤어질 뿐인 것이다.

 

 

▲앵거피시
 

 

▲푸퍼피시
 

 

▲그루퍼

 

글·사진= 동아일보 사진부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