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에서 만난 병령협과 병령사
▼ 운영자 알림: 중국의 오지를 탐험하는 독자 이준만씨의 오지 여행기 그 네번째 입니다. 지난번엔 옥황상제도 놀라 쉬고 갈만한 소삼협과 소소삼협의 비경을 소개해 많은 독자분들이 놀라워 했습니다.
이번엔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실크로드를 소개합니다. 그 중에서도 병령협과 병령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인터넷상에 실크로드 여행기로 병령사 석굴은 많이 올라오지만 병령협은 쉽게 찾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준만씨의 주옥같은 사진들은 '크게 보기'를 클릭해서 보시길 권장합니다.
중국 고대사에서 복희씨[伏羲氏/伏犧氏]는 삼황(三皇)의 첫머리에 꼽는 중국의 전설상의 제왕 또는 신으로서 어렵(漁獵)을 가르치고 팔괘(八卦)를 만들었다 한다. 그의 고향 천수에서 복희씨의 사당과 깍아내린 바위 절벽에 새긴 수많은 불교예술을 꽃피운 맥적산 석굴을 구경한 후 우리는 황하에 있는 병령협과 병령사를 찾아 길을 나섰다.
우리는 란주에서 버스를 타고 류가협댐(刘家峡大坝)에서 내려, 보트를 타고 병령사로 향하였다. 배를 타고 황하를 거슬러 올라가는 중 양쪽의 산들은 나무하나 풀한포기 구경할 수 없는 황무지의 산들뿐이다.
저기서 흘러내리는 진흙들이 황하에 스며들어 물의 색깔이 황토색이어서 황하라는 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황하 주변의 모습들 ☞ 큰 사진으로 보기
청해성에서 발원하여 7개의 성을 지나가는 황하는 매년 약 45.5만평방km의 진흙이 황하로 유실된다고 한다.
중국의 진흙유실 방지대책으로 제방들을 쌓고 있는데, 2020년까지 그 제방을 모두 쌓으면 매년 4억톤이상의 진흙유실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어느새 병령협에 들어서자, 풀한포기 없는 황량한 바위들이 마치 성곽처럼 높다랗게 솟아있었다. 모두들 카메라를 들어 풍경을 찍기에 바빴다.
병령협 파노라마 ☞ 큰 사진으로 보기
사실 병령사 석굴의 모습보다는 병령협의 풍경에 더 심취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병령협은 병령사가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란주에서 북쪽으로 황하를 따라 거슬러 약 110km 에 있는 병령사(柄靈寺)석굴은 서진(西秦) 건홍(建弘)원년(서기 420년, 그 많은 석굴중에서 연대가 정확히 표시된 것은 이곳밖에는 없다.)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현재 석굴은 183개, 크고 작은 돌로된 조상(雕像)은 694개, 진흙으로 만든 것이 82개, 벽화가 900 평방미터, 이 모든 작품들이 당나라 시절, 특히 측천무후 시절에 만든 것이 2/3 를 차지한다.
병령사(炳灵寺)의 최초 이름은 당술굴(唐述窟),강(羌)족어로“귀신굴(鬼窟)이라는 의미이다. 그 후에 용흥사(龙兴寺), 영암사(灵岩寺) 등으로 불리다가 명나라 영락때 장족어로 10만불(十万彿)이라는 뜻의 병령사(炳灵寺)라 칭하고 있다.
이중에서 125번 굴의 석가모니 상이 병령사 석굴중 걸작품에 속한다. 그리고 벽화는 6국(六國)시대의 서북부 지역의 사회풍습, 서민정서, 음악과 춤등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169번과 175번굴은 각각 300원을 주고 구경할 수 있다.
감숙성에는 맥적산 석굴, 병령사 석굴, 둔황의 막고굴, 유림굴, 서천불동굴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 둔황의 막고굴의 단연 으뜸으로 친다. 모두 그 모양들이 다르게 되어 있다.
그중에서 막고굴은 가는 모래입자로 된 토양 때문에 큰 굴을 파고 정중앙에 부조형식의 석가상과 제자상, 넓은 동굴안에는 온갖 벽화로 치장되었지만 맥적산과 병령사는 바위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둔황의 막고굴처럼 큰 동굴이 존재하지 않고 바위 표면에 자그마한 굴을 파서 석가상과 벽화를 만들것이 전부이다. 그리고 유림굴은 벽화의 모양이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탐험가들이 이 유림굴을 발견하였을 당시, 이곳이 곧 정토의 세계구나 라고 했다.
유림굴의 토양은 막고굴보다 굵은 입자와 약간의 자갈이 섞여 있어 막고굴보다는 큰 동굴을 파지 않고 약간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서천불동굴은 유림굴보다 더 굵은 자갈과 모래로 되어 있어, 굴을 파기에는 무척 힘든 토양을 갖고 있었다.
병령사 안쪽에 있는 모습- 마치 요새나 성곽의 모습을 하고 있다. ☞ 큰 사진으로 보기
그래서 이곳 각각의 굴들이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은 토양과 밀접하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굴들은 시대가 변하면서 색깔을 덧칠하고 여러가지 조각상도 각기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초기 서진때의 벽화들은 선과 색깔이 매우 거칠고 단순함을 띄었지만, 당나라때 와서는 선이 매우 부드럽고, 색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그리고 서하시대나 원나라때의 그림은 그림이 매우 단순하고, 화려한 색깔을 칠하지도 아니하였다.
과연 시대가 흐르면서 불교의 예술이 어떻게 변하고, 서양의 기독교 예술이 가미되면서 벽화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석굴의 안내자들이 설명을 하지만, 불교에 대한 지식과 불교예술에 대한 심미적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이 있었다.
병령사 석굴의 파노라마 ☞ 큰 사진으로 보기
단지 장안을 나와 서역으로 가는 상인들이나 군인들 모두, 무시무시한 사막을 넘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야하는 그들로서는 그들의 안전과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불교에 의지하고, 그 기원이 담긴 염원을 이곳 석굴에 표현하고 또한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높다란 대불을 보며 우리의 실크로드 여행에 대한 심도있는 가치가 가득하길 빌어보았다.
도깨비뉴스 블로거= 이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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