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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Shangrila)를 찾아서! - 이준만씨(2/2)

사오정버섯 2007. 11. 9. 14:53

                    진정한 샹그릴라는 각자 마음속에 있다

 

 

 

▼ 운영자 알림: 샹그릴라(Sangri-La)는 티베트어로 '내맘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된 마을이죠. 소설은 주인공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다가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는 '샹그릴라'에 불시착하면서 겪게되는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도깨비뉴스 독자 이준만씨는 중국의 오지만을 다닌다고 합니다. 이에 이준만씨는 소설에 나오는 샹그릴라와 거의 비슷한 마을을 찾아 도깨비뉴스 독자들을 위해 이렇게 사진과 글을 보내왔습니다.

3번에 나누어 소개하려 했던 것을 내용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오늘을 마지막으로 합니다.

 

샹그릴라에서의 여행과 파티…

 

이튿날, 온 몸의 피곤이 다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눈을 떴다. 산장이래야 난방시설도 없고, 각 방에는 전기도 안 들어 오고, 따뜻한 물은 이 마을 모두 태양열을 이용하여 온수를 사용한다. 그런 저런 불편한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지난 밤은 너무 피곤한 탓에 잠에 일찍 취한 것 같다.

☞ 샹그릴라 1편: 진짜 샹그릴라는 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곳

 

이곳은 워낙 깊은 골짜기이기 때문에 이곳에 햇볕이 드는 시간도 다른 곳보다도 늦은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에 비출 때 그 모습은 너무 가까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산장에서 바라본 매리설산의 모습 

 

다음 목적지는 따뻔잉(大本营)과 삥후(冰湖)를 구경하는 코스이다. 아내는 말을 타고 가기에 나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혼자 짐을 가지고 출발을 하였다.

 

샹위뻥(上雨崩)마을을 지나는 중에 초등학교를 지나가기에 빼꼼이 열린 문틈 사이로 바라다 보니 조그만 간이 의자를 놓고 약 10명의 아이들이 젊은 여교사한테서 수업을 듣는 것을 보았다. 수업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려고 하다, 나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저 아이들의 수업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아침 날씨는 매우 쌀쌀할 정도로 차서 손을 비비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을 옮겼다.

 

 

 

초등학교 쉬는시간. 교실도, 책상도, 의자도 없다. 유일하게 있는 여교사가 아이들과 놀고 있다.

 

그곳의 삼림은 정말이지 자연 그대로 원시림이다. 작게는 한 아름드리, 어떤것은 거의 족히 서너 아름드리 침엽수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솟아있다. 이런 관목들 사이로는 두꺼운 이끼들이 3~5cm 씩 층을 이루고 있다.

 

정말이지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된 아름다운 원시림이다. 잡목들 사이로는 가시오가피 나무가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고, 계곡에는 맑은 물이 강처럼 흘러 굵은 통나무 다리를 건너자, 어느 덧 따뻔잉(大本营)에 도착하였다.

 

 

 

 

 

따뻔잉(大本营)

 

이 곳에는 여러 채의 통나무 집들이 있었다. 이곳은 1980년대 중국과 일본의 탐험대들이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을 정복하기 위해 베이스 기지로 삼았던 곳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목적지인 삥후(冰湖)를 찾아 나섰다. 설산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지만, 이제 부터는 숨이 턱에까지 올라온다. 워낙 고지대이다보니 조금만 가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는 힘이 들었다.

 

그렇지만 삥후(冰湖)를 찾아 가는 곳에 어떤 이정표도 없어 무척 찾기가 힘들었다. 태양이 뜨겁게 작열하는 설산을 향해 올라가면서 계곡에서는 설산에서 흘러나오는 깨끗한 물을 손으로 떠서 마시고는 설산 아래까지 도착하였다.

 

사람이 올라갈 수 있을 때 까지 올라가려고 눈을 디뎌보자, 나의 발이 거의 무릎 이상 빠지기에 여기가 내가 올라 갈 수 있는 한계이구나. 그 이상은 전문 산악인이 해결해야 할 몫이구나 하며 삥후(冰湖)를 찾는 일을 포기하고 하산하기로 하였다.

 

 

 

 

삥후(冰湖)를 찾기 위해 설산의 끝에 다다렀다. 그러나 길이 더 이상 없고 눈이 무릎위까지 쌓여있었다.

 

어제 고지대를 등산했던 피곤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4~5시간을 걷다보니 이제 배고픔과 허기에 지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 사실 가는 곳곳에 휴게소가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먹을 준비를 단단히 하지 못한 것이 약간은 불찰이었지만 배낭에 들어있는 초콜릿 몇 개와 설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더군다나 다른 여행객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산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한참후에  다른 중국인들이 하나씩 돌아오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삥후(冰湖)를 찾아서 사진을 찍었다고 하면서 나에게 보여 주었다. 설산의 깍아내린 절벽의 동굴안에 있는 호수였다. 겉에서는 도저히 찾기 힘든 곳이고, 이곳 주민들도 이곳을 신성시 여기며 이곳에 와서 기도를 한다고 한다.   

 

어느 덧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 곳은 해질녘 이후에만 전기가 공급된다고 한다. 그래서 휴게실에만 등이 켜지고, 여행객들은 휴게실에서 식사와 술을 마시며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야외 통나무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어둠이 내려 앉은 이 곳 내가 명명한 샹그릴라를 바라 보았다. 바로 앞에 우뚝 솟아 있는 설산의 하얀 빛 반사때문이지 이런 깊은 계곡에는 어둠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 아니했다.

 

잠시 후 불도 켜지지 않는 숙소에서 잠을 청하려고 할 때, 산장 주인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한국 친구 휴게소로 오라고 하면서……. 나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휴게실로 들어가니 많은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맥주와 안주를 놓고 파티를 시작하려고 하고 있었다.

 

주인의 말은 이곳에는 사실 한국인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하며, 외국인들은 가끔 온다고 한다. 그래서 산장주인이 한국인 친구를 위해 오늘 파티를 연다고 하였다.

주인은 다른 중국 여행객들에게 한국에서 온 우리들의 친구라고 소개를 하였다.

 

 

 

산장주인이 나를 위해 파티를 열어주고 있다. 등이 보이는 사람이 산장 주인이다.

 

이 곳 마을의 젊은이들과 중국 각 지방에서 온 여행객들, 심천, 광주, 북경, 중경, 항주등 각 지방에서 온 젊은이들과 술을 마시며 하나씩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이곳 젊은이들의 전통춤을 같이 어울려 추었다.

몸의 움직임이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그들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게 되었다.

 

이 마을의 젊은 여성들의 의상도 멋하고는 아주 먼, 때가 더덕더덕 달라붙은 옷으로 흥겨운 춤과 노래를 참 잘 불렀다. 젊은이들은 말이나 당나귀를 끌고 산을 넘을 때나 일을 할 때 고성의 느린 템포의 노래를 잘 부른다. 아마 힘든 일을 하면서 그런 애달픔을 노래로 표현하는 우리 옛날 사람들의 소리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이에 아주 먼 이곳에 와서 순수한 젊은 사람들과 흥을 나누고, 이들에게서 따뜻한 대접을 받은 나로서는 정말 잊지못할 하루의 밤이었다. 그렇다고 진수성찬이 가득한 대접이 아닌, 이 사람들의 따뜻한 사람 대 사람의 훈훈한 인간미가 느껴오는 것 같았다.

 

최근 들어 이와 같은 인간미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치열한 경쟁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숨막히는 순간들의 긴장속에서 살다가 이런 모습을 보니 마치 소설속에 나오는 주인공 콘웨이가 샹그릴라에 들어와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들은 여행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적은 돈으로 이 샹그릴라에서 살지만, 그들은 언제나 흥이 있다. 남녀 노소 일을 할때면 언제나 노래를 부르고 때묻은 옷을 입고 매일 매일 생활하지만 언제나 웃는 미소를 아끼지 않는다.

 

약 밤 11시가 가까워지자, 산장 주인은 여행객들이 내일 아침 또 산행을 해야하니 내일을 위해 이것으로써, 오늘의 한국인 친구를 위해 마련된 파티를 마치자고 제안하며 각자의 숙소로 모두 헤어졌다. 그리고는 어둠속에서 창가에 비추는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의 하얀 눈을 바라보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우리의 목적지는 션푸(神瀑)였다. 신선이 산다는 폭포이다.

시아위뻥(下雨崩)마을을 지나, 목장에서는 야크, 양, 말, 당나귀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과연 목가적인 풍경이 이것인가 라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모습이었다. 이 곳 션푸(神瀑) 가는 길에 서너 가족의 장족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산 꼭대기에 있는 절에 가서 기도하고, 션푸(神瀑)에 가서도 기도를 하러 간다고 하였다. 말을 타고 가던 여행객도 2/3 지점 부터는 말이 갈 수 없으니 걸어가라고 해서 나와 함께 산을 올랐다. 목적지에 가까이 올때쯤 어디선가 계속적으로 대포쏘는 듯한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마치 멀리서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폭파하는 듯하기도 했다.

 

 

 

 

     

 

션푸(神瀑). 신선이 산다는 폭포이다

 

목적지에 다가오자, 그 소리는 폭포의 꼭대기에서 눈덩이와 얼음덩어리가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대포 소리와 같았던 것이었다. 폭포의 높이는 족히 500m는 되어 보였지만, 우기가 아닌 건기에는 많은 물이 흘러내려오지 않아 아쉬움은 있었다.

 

그대신 작은 곳에는 폭포물이 쉴새없이 떨어졌다. 장족들은 그 폭포의 줄기를 맞으며, 또한 물을 마시며 기도를 하였다. 우리는 많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오늘 이 샹그릴라를 빠져나와 페이라이스에서 오늘밤 휴식을 취한 후 다음날 우리는 중띠엔(中甸)으로 들어가야만 하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하산을 하였다.

 

산장에 들러서 배낭을 꾸리고 산장 주인에게 환대해 주어서 정말 고맙고, 이 곳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인정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산장 주인은 내년에 다시 한번 꼭 오라고 하면서 우리를 멀리까지 따라오며 배웅해 주었다.

 

 

 

 

 

나는 비래사에서 설산아래 깊숙이 감춰진 샹그릴라에서의 추억을 머리속에 되새기고 또 되새기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주인공 콘웨이는 다시 이곳을 찾아 갔을까??

 

이 고개를 넘으면서 나는 수십 번도 더 뒤를 바라보며, 이곳 샹그릴라를 찾아 몇 날을 헤메었던가.  이제 이 고개를 넘으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며 한 번이라도 이곳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곤 하였다.

훗날 다시 이 곳을 찾는다면 그 때는 이곳도 많이 발전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다면, 이 아름다움을 상실할 것이 너무나 확연하다.

 

내 마음의 샹그릴라!

내가 명명하고픈 샹그릴라, 상위뻥(上雨崩)과 시아위뻥(下雨崩) 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메이리슈에샨(梅里雪山)

안녕…..

 

도깨비뉴스 블로거= 이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