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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의 저주

사오정버섯 2007. 7. 17. 12:48

                                           다이아몬드의 저주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프 다이아몬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농촌에서 처음 발견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는 사실 태고적부터 있어 왔지만, 이것이 1866년 서양인들의 눈에 띄면서 보석이자,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탈바꿈한다.

1870년대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로 부자가 되기 위해 "다이아몬드 러시"를 이룬다. 이때 진짜 큰 돈을 번 사람이 인부들을 동원해 조직적인 채광 시스템을 갖춘 세실 로즈(Cecil Rhodes)였다.

 

                                                        

 

세실 로즈는 188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킴벌리에 다이아몬드 채굴 및 판매 기업인 드비어스를 설립하고 전세계 다이아몬드 산업을 독점하기 시작한다.

드비어스라는 회사의 이름은 남아프리카의 촌구석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 니콜라스 드 비어(Nicolaas de Beer)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드비어는 자신의 땅에 엄청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된 것도 모르고 열심히 농사만 짓다가 교활한 사기꾼에게 땅과 집을 헐값에 넘겨 버렸다. 이 드비어의 땅을 광산으로 만들어 드비어스(DeBeers) 사를 설립하고 떼 돈을 번 사람이 세실 로즈였다.

로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국 식민지, 케이프의 총리가 돼 모든 정책과 법을 영국인들과 드비어스 사에 유리하게 만든다. 심지어 그는 군대를 일으켜 보어 원주민들과 전쟁을 벌이는 등, 자신의 돈과 정치력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철저히 수탈했다.

20세기 초 금권정치와 잔혹한 식민지 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 중 하나가 된 세실 로즈는 은퇴 후 자신의 이름을 딴 "로즈 장학금"을 설립, 전세계 유능한 학생들에게 서양 명문대 입학을 장려하고 있다.


세실 로즈의 뒤를 이은 사람은 오펜하이머(Ernest Oppenheimer).

 

 

                                                                    

 

그는 드비어스를 세계 최강의 다이아몬드 독점 사업체로 만든 장본인으로, 정치 활동을 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정치 상업적 인맥을 쌓는다. 그리고 앵글로 아메리카 광산 회사를 설립해 당시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업체였던 드비어스를 인수한다.

그는 이후 비열하고 비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경쟁사들을 몰락시켰으며, 아프리카의 부패 정권에 뒷돈을 대 대다수의 광산 채굴권을 독점한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 정보부와 외교부를 두고, 적대적 인수, 주가 조작, 가격 담합 등 수많은 무자비한 방법으로 재산 규모를 알기 어려울 정도의 부자가 된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diamond is forever)"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로 다이아몬드의 가격을 극대화한 인물도 오펜하이머였다.


1990년대 들어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분쟁은 더욱 격해지기 시작,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아프리카 각국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선 광산 점유권을 독점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살육이 벌어졌다. 2002년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입으로 마무리 되기까지 다이아몬드 때문에 무려 370만명이 목숨을 잃고, 600만명이 난민이 되었으며 사지가 절단된 사람도 4000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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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를 둘러싸고 마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저주의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다.

호프 다이아몬드라 불리우는 희귀한 블루 다이아몬드는 그 크기가 매우 크고 독특한 푸른색을 내는 다이아몬드로 현재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호프 다이아몬드'의 모습)

 

 

 

호프 다이아몬드 저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기원에 얽힌 전설

- 프랑스의 보석상 Tavernier라는 사람이 인도를 여행하던 도중 힌두교의 Sita 여신의 석상의 눈(혹은 이마)에서 뽑아내었다. 그로인해 Tavernier는 훗날 러시아를 여행하던 도중 들개떼에게 갈가리 찢겨 죽임을 당했다.

 

 

                  

 

                                       

                                         (Tavernier의 112캐럿 호프 다이아몬드 러프 스케치)

 

 

2.프랑스 왕실과 관련된 저주

- Tavernier가 프랑스로 돌아와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44개의 큰 다이아몬드와 1,122개의 작은 다이아몬드와 함께 블루 다이아몬드를 판다. 이때 그 크기는 112 3/16 캐럿이었다. 후에 루이 14세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새로이 가공한다(이때 67 1/8캐럿으로 줄어듬). 그리고 이것을 "Blue Diamond of the Crown"이라 부르고 언제나 목에 걸고 다녔다. 하지만 그로인해 그는 저주를 받고 천연두로 죽었다고 한다.

- 루이 15세는 이것을 105캐럿짜리 Cote de Bretagne 루비와 함께 훈장(Order of the Golden Fleece)과 같은 일종의 장식물로 만든다.

- 루이 16세와 비운의 왕비라 알려진 마리 앙투와네트는 이 블루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고 있다가 결국 저주로 인해 프랑스 혁명에서 참수형을 당한다.

 

                                                           

                                            (Order of the Golden Fleece는 이와 같은 형태이다)



3.영국으로 넘어온 블루 다이아몬드

- 프랑스 혁명당시 사라진 블루 다이아몬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영국이었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결국 Henry Philip Hope라는 대부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호프 다이아몬드'라 불리게 되었다.

- 호프 일가는 자신들이 이 다이아몬드로 인해 저주받았다고 말하는데, 구전된 이야기에 의하면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로 인해 파산했다고 한다.

- 전설에 의하면 그 이후로 호프 다이아몬드를 소유했던 러시아 귀족은 러시아 혁명가에게 칼을 맞아 죽었으며, 다음 소유자인 그리스 보석상은 절벽에서 추락사했으며, 터키의 술탄은 권좌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호프 다이아몬드에 대한 저주가 알려졌다.

 

4.미국으로 넘어와 저주를 내리다.

- 1901년 Simon Frankel이라는 보석상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미국으로 사온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Pierre Cartier에게 넘어오게 되었다.

- Cartier에게서   Eval   yn Walsh McLean은 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이전과는 다른 목걸이 형태로 세공한 뒤에 구입하게 되는데 메클린이 호프 다이아몬드를 소유하면서부터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언론 재벌이었던 남편과 이혼하게 되고(훗날 그는 정신병원에 갔다) 그녀의 외아들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그녀의 딸은 자살했다. 이로인해 호프 다이아몬드에 대한 저주는 널리 알려지게 된듯 하다.


5.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되다.

- 결국 뒤에 보석상 Harry Winston가 자신의 샵에서 전시를 했었으나 어떤 나쁜 기운을 느꼈는지 곧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하여 현재까지 전시되고 있다.

 

 

                                

                                          (1958년 9월 10일 박물관 기증 당시의 모습)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호프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거나 그것을 만진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거나 파산하는 등 불운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전설을 가진 호프 다이아몬드, 그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일까? 여기에 대해 'Blue Mystery : The Story of the Hope Diamond' 의 저자 Susanne Patch는 몇가지 이유를 들어서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첫번째, 블루 다이아몬드의 기원은 힌두교의 여신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인도 Golconda에 있는 Kollur 광산에서 나온 것을 보석상 Tavernier가 구입하여 프랑스로 가져온 것이다.

Tavernier는 매우 귀족적으로 살았으며 84세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두번째, 루이 14세와 루이 15세는 블루 다이아몬드를 소유했었지만 그로인해 어떠한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 없다. 그냥 자기 명대로 살다가 죽은 것이다.

세번째, 호프 다이아몬드라 불리게 된 영국의 Henry Philip Hope는 어떠한 저주도 받지 않았다. 필립 호프는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호프 다이아몬드는 그의 가장 큰 조카 Henry Thomas Hope에게로 넘어간다. 토마스 호프도 저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단지, 토마스 호프가 54세의 나이로 죽었다. 다이아몬드는 토마스 호프의 미망인이 잠시 소유하고 있다가 손자인 Francis Hope에게 주었다. 결국 호프 다이아몬드는 대를 이어 프란시스 호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가 호프 집안에서의 마지막 호프 다이아몬드 소유자였다. 호프 다이아몬드는 그 후 프란시스 호프가 도박과 방탕한 생활로 인해 집안을 파산시키는 바람에 팔리게 된다.

즉, 호프 다이아몬드를 소유했던 필립 호프와 토마스 호프에게는 어떠한 저주도 없었으며, 집안이 파산하게 된 것은 저주로 인함이라기 보다는 부잣집에서 성장한 프란시스 호프의 방탕한 성격 탓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마지막 메클린 집안의 비극 때문에 '호프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없다라고 말하기에는 힘들게 된다. 실제로 메클린의 아들 Vinson은 9살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또한 딸 역시 자살을 하는데 이때 그녀의 나이 25세였다. 이에더해 이블린 메클린의 남편 역시 정신병원으로 가게 되었으니 호프 다이아몬드를 산 그녀에게 집중된 불행의 근원을 '호프 다이아몬드'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호프 다이아몬드)



사실일까?

호프 다이아몬드를 어두운 곳에서 자외선을 쬐면 스스로 빛을 내는 듯 보인다고 한다. 이때 광원을 제거하면 붉은 색의 옅은 빛을 스스로 낸다고 하는데 이는 큰 다이아몬드 속에 원자가 축적된 에너지를 해방하기 때문이라고.

야후funny (funnyblog)님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