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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새에게 자기 알을 맡기는 뻐꾹새,뻐꾸기

사오정버섯 2007. 2. 2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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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자연이야기] 다른 새에게 자기 알을 맡기는 뻐꾹새

지금도 내 연구실 앞 건물에 우뚝 선 피뢰침 꼭대기에서 뻐꾸기 수놈 한 마리가 목청을 한껏 높여 사랑노래를 부르고 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지. 녀석은 언제나 확 트인 높다란 곳에서 뻐꾹 뻐꾹 세차게 소리를 내지른다. 암놈을 꼬드기는 행위다. 절대로 구슬픈 울음이 아니다. 부럽다. 종명(終命)을 기다리고 있는 이 늙다리의 귀에는 저 소리가 정녕 신비롭기만 하다. 여느 동물이나 수놈은 잘 울어대지만 암놈은 음치(音癡)다. 뻐꾸기의 암놈도 다르지 않아서 ‘삣 빗 삐’ 들릴락 말락 낮은 소리를 낼 뿐이다.

한데, 저것들은 분명히 작년에 이 근방 숲에서 태어난 놈들이리라. 녀석들은 제비처럼 제가 태어나 자란 곳(서식지)을 기억하여 대만이나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하고 오뉴월에 귀신같이 찾아온다. 뻐꾸기(cuckoo) 무리는 우리나라말고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도 서식한다.

그런데 제 알을 제가 품지 않고 다른 새의 둥지에 몰래 집어넣어 새끼치기 하는 것을 탁란(托卵)이라 한다. 탁란하는 새(탁란조)는 모두가 두견(杜鵑)이과(科)로 우리나라에는 뻐꾸기, 두견이, 매사촌, 벙어리뻐꾸기가 있고 뒤의 두 종은 아주 귀한 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두견새는 꾀꼬리의 둥지에 알 하나를, 그리고 뻐꾸기는 때까치, 알락할미새,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의 둥우리에 역시 한 개를 낳는다. 지구상 새의 약 1%가 얌체족인 탁란조다.

“뻐꾸기가 둥지를 틀었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웃기는 일을 비꼬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 탁란을 다른 말로는 ‘부화기생(brood parasitism)’이라고 하며 어미가 알을 품지 못하니 새끼도 따라 못한다.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어찌 줄 수가 있나. 십자매에 금화조나 문조의 알을 품게 하는 것도 탁란이 아닌가. 하나 분명한 것은 귀소본능(歸巢本能)은 물론이고 자기를 키워준 어미 새와 같은 둥지에 알을 맡길 것이다. 어미와 보금자리가 이미 각인(刻印)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면 탁란하는 새(기생 새)와 탁란을 당하는 새(숙주 새)가 서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요, 무엇보다 알의 색깔이 서로 같다.

뱁새가 알(보통 3~5개)을 품고 있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회만 노리던 눈치 빠른 뻐꾸기는 잽싸게 달려들어 알 하나를 깨먹거나 굴려 떨어뜨리고, 제 것 하나를 재빨리 낳고는 줄행랑을 친다. 이렇게 이 둥지 저 둥지를 배회하면서 12~13개의 알을 낳는 요사(妖邪)한 암놈 뻐꾸기다. 보통 새알이 부화하는 데 14일이 걸리는 데 비해 뻐꾸기의 것은 9일이면 된다. 부화 후 10시간이 지날 무렵에 드디어 망나니 본성이 발현(發現)한다. 제 잔등에 딱딱한 것이 닿았다 하면 날갯죽지를 뒤틀어서 집 바깥으로 밀어내버리는 본성을. 이렇게 하여 어미를 독차지한다.

그것도 모르는 뱁새 어미! 알고도 속아주는 것일까? 제 몸을 삼킬 듯이 다 자란 뻐꾸기 새끼를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 키우는 어미 뱁새다. “영리한 자의 속임수란 말인가? 뻐꾸기에게 탁란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어미 뱁새는 날개가 헤져 너덜거리며 먹이 찾아 숲속을 힘들게 쏘다니고 있을 때 다른 어미 뻐꾸기는 먼 나무 위에서 청아(淸雅)한 소리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낳은 어미와 기른 어미, 두 어미를 가진 뻐꾸기! 뻐꾸기를 욕할 처지가 못되어 할 말을 잃고 만다. 유구무언(有口無言)!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