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메지성의 6층 높이 천수각의 모습.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인 히메지성은 목조건물로 약 400년간 그 원형을 최대한 유지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영화와는 달리 히메지성은 불에 탄 적 없이 400년을 히메산(姬山) 위에 우뚝 선 채 그 자태를 뽐내왔다. 실제로 불에 타 전소된 성은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이 알려진 오사카성이다. 오사카성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이라면, 히메지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쓰의 사위인 이케다 데루마사의 성이다. 게이쵸 연간(慶長年間)인 1596년에서 1615년 사이에 건설된 히메지성은 독특한 건축 구조와 망루, 성벽, 문, 해자 등 성 전체가 잘 보존돼 있어 17세기 성곽 건축 양식이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케다는 이 중 1601년부터 1609년까지 8년에 걸쳐 현재 남아 있는 80개 건물 대부분을 증축했다. 히메지성의 중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6층 높이의 천수각(天守閣), 즉 ‘대천수(大天守)’와 세 개의 ‘소천수(小天守)’가 복도식 망루로 이어지는 연립식 천수가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 성은 또 흰 회반죽으로 천수나 망루를 칠한 모습 때문에 ‘백로의 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백로의 모습을 한 이 성은 모모야마 시대에서부터 에도 시대까지 막부간 각종 내전과 2차 세계대전, 심지어 1995년 바로 옆에 있는 고베 대지진으로부터도 살아남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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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메지성 천수각 꼭대기층에는 장벽신사(長壁神社)가 마련돼 있어 방문객들이 소원을 빌기도 한다. |
일본의 성곽 건축에 있어 가장 큰 골칫거리는 화재였다. 전쟁 및 천재지변으로 인한 목조건물의 화재를 막기 위해선 회반죽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백색 회반죽은 성의 외곽뿐 아니라 모든 건축 자재, 즉 기둥에서 추녀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골고루 칠해져 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오사카성이나 히메지성 모두 기왓장을 제외하고는 흰색으로 만들어졌다. 회반죽은 균열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직사광선, 빗물, 습기 등을 막아준다. 히메지성은 이 회반죽 코팅으로 방화에 대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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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가 300m나 되는 히메지성의 복도. |
히메지성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특이한 벽 형태는 기름벽이라고 불리는 ‘유벽’. 히메지성 내부에 있는 ‘호노문’의 안쪽에 보면 마치 점토를 편편하게 바른 것처럼 보이는 벽이 있다. 유벽은 점토에 콩자갈을 섞고 쌀뜨물로 다지는 특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케다 데루마사가 히메지성 증축을 맡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쌀뜨물과 콩자갈의 반죽물은 400년 전 방탄벽의 건축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천수각의 내부로 들어가면 일본 목조 건축물의 묘미를 더욱 느낄 수 있다. 수백 개의 나무 뼈대로 연결된 거대한 천수각을 지탱하는 것은 직경 1m에 가까운 두 개의 기둥으로, 서쪽 큰 기둥(서대주, 西大柱)과 동쪽 큰 기둥(동대주, 東大柱)이라고 일컫는다. 서대주는 쇼와 시대의 대수리 때 새 것으로 교환됐으며 동쪽 큰 기둥은 지하 부분을 교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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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메지성의 외벽은 회반죽으로 칠해져 화재를 예방했으며, 기울어진 석벽 위에 높이 건설되었다. |
오사카성의 경우 전쟁과 천둥번개 등 천재지변으로 인해 건물이 불타는 바람에 수차례 증축을 거치게 되었고 1997년에는 현대식으로 완성돼 천수각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는 등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반면 히메지성은 신발을 비닐 봉투에 넣고 삐걱대는 나무복도와 계단을 6층까지 오르내리는 불편함이 있지만 17세기 일본 성주의 생활상을 훨씬 더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마치 영화 ‘란’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글ㆍ사진=정은진 WpN·OnAsia 소속 프리랜서 사진기자
히메지성 천수각 꼭대기층에는 장벽신사(長壁神社)가 마련돼 있어 방문객들이 소원을 빌기도 한다.
길이가 300m나 되는 히메지성의 복도.
히메지성의 외벽은 회반죽으로 칠해져 화재를
예방했으며, 기울어진 석벽 위에 높이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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