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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우주에서 가장큰 다이아몬드

사오정버섯 2008. 1. 30. 08:45
lucy-우주최고의다이아몬드

 

 

 

별 전체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있는 별이 있습니다

2004년 2월 13일 미국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천문학자들이

별 내부가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 결정체로 구성된 백색왜성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태양 정도 크기의 별은 그 수명을 다할 때쯤 팽창하여 적색거성이 되었다가 다시 수축하여 고밀도의 별이 되는데 이것이 백색왜성 입니다. 이 별의 내부 핵은 대부분 탄소로 구성돼있고 수소와 헬륨가스층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직경이 대략 지구의 8분의 1 크기인 이 별의 핵은 다이아몬드를 표시하는 단위로 무려 10의34승 캐럿 이상이라고 합니다.

이 별은 센타우루스 자리에 위치했는데요 거리는 50광년 (빛의속도로 50년이 걸림)이고

이 별의 정식 명칭은 BPM37093이지만 연구자들은 비틀스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를 따서 '루시' 라는 애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비틀즈의 곡-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서 따온" lucy" 라 명명� 우주에서 가장큰 다이아몬드로 직경이 4000킬로미터 이며

 

무게는 10billion trillion trillion 캐럿  파운드  의 상상의 무게이다 

과학자들은  이 우주다이아몬드 는  과거 태양처럼 빛나다가 소멸한 어느별의 심장이라고 믿고있다고''' 

천문학자들은  우리태양도   50억년후  백왜성으로  돼고   그후20억년후   "루시" 처럼 다이아몬드로 남아서   태양계내에서 영원히 반짝일거라고한다 

 

인류의 고향이 아프리카란 걸 증명한 그녀, '루시'--루시의 유래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고, 세상을 떠난 후에야 이름을 얻었고, 곧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자가 되었다. 그녀의 키는 1m가 조금 넘고, 몸무게는 30kg을 넘지 않았다. 자그마한 체구처럼 머리도 조금 작았던 것 같다.

그리 스타일이 나는 몸매는 아니었을 것도 같다. 그녀가 처음 일어나 걷던 날, 그녀는 무엇을 봤을까? 눈앞에 수평으로 펼쳐진 하늘과 벌판에 그녀는 놀랐을까? 걷고, 뛰고, 울고, 웃으며 전율했을까? 그녀도 사랑을 했을까? 곁에서 잠든 이가 있어 밤새 천둥번개라도 치는 날이면 그의 품으로 파고들기도 했을까?

인류의 고향이 아프리카란 걸 증명한 그녀, '루시'

 
▲ 국립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루시의 석고 모형. 아디스 아바바.
ⓒ2006 김남희
그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녀의 이름은 루시. 그녀의 학명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그녀가 묻힌 땅의 사람들은 그녀를 '덴케네스'(Denkenesh : 당신은 대단해요!)라고 부른다. 그녀는 320만 년 전에 살았던,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이다.

에티오피아를 유명하게 만든 그녀의 이름은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 유래했다. 그녀가 발견되던 순간, 고고학자들의 캠프에 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단다.

1974년 11월 30일, 에티오피아의 북동부 지역 하다르(Hadar)의 마른 호수에서 그녀의 화석이 발견되었을 때, 세계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됐다. 그녀는 지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원시 인류였으니까.

인류의 가장 가까운 조상은 유인원이었고, 인류의 고향은 아프리카라는 것을 그녀는 증명해보였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유인원에 속하는 원시인류였던 그녀는 이미 완벽하게 직립하고 있었다.

그녀의 해부학적 구조는 그간의 이론과는 반대로 우리의 조상들이 큰 뇌를 발달시키기 전에 이미 걷기 시작했음을 증명한다. 그녀는 현생 인류보다 뇌가 조금 작았을 뿐 골반과 다리, 턱 모양은 현생 인류의 그것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다.

새로운 종교, '라스타파리교'의 등장

▲ 루시와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후손들이 주일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성삼위일체교회. 아디스 아바바.
ⓒ2006 김남희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겨우 몇 십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살아서 이미 유명했다. 1892년에 태어난 그는 타파리 마콘넨(Tafari Makonnen)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열아홉 살 때 황제 메넬리크 2세의 딸과 결혼하여 왕자(라스)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타파리 왕자(Ras Tafari, 라스 타파리)'라고 불린다. 열렬한 기독교도였던 그는 1930년 에티오피아 황제에 즉위하면서 하일레 셀라시에, 곧 '거룩한 삼위일체의 힘'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의 화려한 대관식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카리브 해의 자메이카에서 옛날 노예의 후손들로 구성된 어떤 그룹이 영감을 얻었다. 그 무렵 자메이카에서는 마르쿠스 가르베이(Marcus Garvey)의 '아프리카로 돌아가자(Return to Africa)'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들은 하일레 셀라시에가 '왕은 아프리카에서 나올 것이다'라는 고대 성경의 예언을 이루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자기들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구원자라 여기고, 마침내 아프리카 사람과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될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가 황제로 즉위하기 전의 이름을 따서 '라스타파리교'를 만들었다.

때로 새로운 종교의 등장이 이렇게 어이없는 식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라스타파리 신자들은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나갔고, 나름의 '구약성서' 해석에 따라, 임금을 받는 모든 노동을 거부하고 그 대신 특정한 음식물을 받았다.

그들은 엄격한 식습관을 지켰는데 돼지고기, 우유, 커피가 금지되었고, 영적인 고양을 위해 마리화나는 신성시되었다. 머리 모양으로는 오늘날 레게 머리라고 불리는 땋은 머리 비슷한 모양을 선택하였다.

에티오피아 왕조 부활 기다리는 라스타파리교도들

▲ 하일레 셀라시에가 묻혀 있는 성삼위일체 교회. 아디스 아바바.
ⓒ2006 김남희
라스타파리교는 차츰 흑인들의 자의식 고양과 정치적 과격주의 편에 서게 되었다. 라스타파리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자메이카의 레게 가수 밥 말리(Bob Marlet, 1945~1981)였다.

밥 말리는 스물두 살 때 기독교를 버리고 라스타파리교로 개종했다. 그와 더불어 레게와 라스타파리 문화는 카리브 해와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계를 넘어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얻었다.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1966년에 단 한 번 자메이카를 방문했다. 그는 자메이카 공항에서 자기를 보고 춤추면서 환호하는 수천 명의 라스타파리교도들의 환영을 받고 당황했고, 끝내는 화가 났다.

그는 자메이카 정부 측에 그것은 '모든 기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자메이카 정부의 공식 초청을 받은 국빈이었고, 자메이카 정부는 이 나라의 과격한 소수 집단인 라스타파리를 '평화와 질서에 문제'가 되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다.

황제의 방문은 자메이카와 라스타파리교도들 사이의 갈등 해소에 어떤 방식으로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방문 일정에서 라스타파리 대표자들과의 공식적인 만남은 철저히 제외되었다. 라스타파리와 자메이카 정부 사이의 갈등은 그 이후 더욱 커져갔다.

밥 말리는 1976년 누군가에게 암살 위협을 당한 다음 자메이카를 떠나 일찍 죽기까지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라스타파리 교도들은 참을성 있게 에티오피아 왕조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죽은 후에야 이름을 얻은 여자 루시, 그리고 살아서 이미 이름을 얻었던 남자 하일레 셀라시에 1세. '검은 사람들의 땅'이라는 에티오피아 여행기는 이렇게 전설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