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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차사[咸興差使]

사오정버섯 2007. 4. 6. 20:26

함흥차사[咸興差使]

조선 태조가 함흥에 있을 때 태종이 태조의 환궁을 권유하기 위해 보냈던 사신.

조선 초기에 이방원(李芳遠 : 뒤의 태종)이 2차례의 난을 일으켜 혈육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자, 태조 이성계는 아들 방원에게 실망하여 고향인 함흥으로 가버렸다. 이에 태종은 태조에게 여러 차례 차사(差使)를 파견하여 환궁을 권유했으나, 태조는 이를 거부하고 사신으로 오는 자를 모두 죽여버렸다. 이때문에 어디 갔다가 아무 소식도 없는 것을 함흥차사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 등에 수록된 야사에 나오는 이야기로 실록에는 태조가 사신을 죽였다는 기록은 없다. 또 마지막 함흥차사로 갔던 박순(朴淳)의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실록에 따르면 그는 함흥차사가 아니라 조사의(趙思義)의 난 때 함경도민을 회유하기 위해 파견된 자로 군중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보물 '함흥차사 본궁'

▲ 100여년 전 함흥본궁(咸興本宮)의 모습. 오른쪽에 보이는 누각은 풍패루(風沛樓)로, 누각 앞 연못에 비친 풍패루 그림자는 함흥의 대표적 절경으로 꼽혔다. 태조 이성계는 왕에 오른 뒤 조상들이 살던 집터인 이곳에 고조 할아버지 목조(穆祖) 등 조상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자신의 아들끼리 죽고 죽이는 ‘왕자의 난’을 겪은 그는 퇴위한 뒤 한때 이곳에 거주했는데, 이때부터 ‘본궁(本宮)’으로 불렸다. ‘함흥차사’라는 말도 여기서 시작됐다. 함흥본궁은 북한에서 보물 45호로 지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