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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Taj Mahal) 세계 7대 불가사의

사오정버섯 2007. 4. 3. 14:24

         ** 인도 아그라 교외의 영묘 '뭄타즈할'( 타지마할 )의 아름다운 정경 **

2007. 02. 01 / sunmoon님의 글입니다(펌)

 

 

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와전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한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타지 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공되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
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

 

 

 

이 복합 건물은 너비 580m, 길이 350m인 직4각형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이 중앙에는 한 변이
305m인 정4각형 정원이 있고, 그 북쪽과 남쪽에 그보다 약간 작은 2개의 직4각형 구역이 있다.

 

 

 

남쪽 구역은 타지 마할로 들어가는 사암 출입구와 거기에 딸린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
구역은 야무나 강가까지 뻗어 있고 거기에 영묘가 있다.

 

 

 

영묘의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모스크이며
동쪽의 것은 미학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이른바 '자와브'이다.

 

 

 

모퉁이에 8각형 탑이 솟아 있는 높은 벽이 북쪽 구역과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울타리 밖에는
마구간과 경비병 숙소가 있다. 무굴 제국의 건축 관행은 나중에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 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

 

 

 

이 복합체의 북쪽 끝에는 영묘·모스크·자와브 등의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 붉은
시크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평방)가 있으며 일부
표면이 단단한 돌(pietra dura)로 장식되어 있어, 순수한 하얀색 마크라나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와
는 색깔과 감촉에서 대조를 이룬다

 

 

 

영묘는 높이 7m의 대리석 대좌 위에 지어졌으며 사방이 똑같은 모습으로, 모서리는 정교하게 깎여
있고 각 면마다 높이 33m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가 있다. 높은 원통형 벽(drum)으로 떠받친 양파
모양의 2중 돔이 이 건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영묘의 각 아치 위에 있는 난간과 각 모서리 위에 있는 장식 뾰족탑 및 돔을 덮은 원통형 정자는
영묘의 스카이라인에 율동감을 준다. 대좌의 각 모서리에는 3층 미나레트가 서 있는데, 대좌와의
대리석 접합부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묘의 대리석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영묘의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이
묘실에는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다. 이 대리석 무덤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저
기에 보석을 박은 투각(透刻)한 대리석 막이 둘러처져 있다.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는 진짜 석관이 있다. 타지 마할은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로 여겨진다.
 

 

 

 

 

사랑을 위한 불멸의 금자탑 타지 마할

타지 마할은 샤 자한(Shah Janhan)이 17년의 결혼기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번째의 아이를
낳으려다 1629년 세상을 떠난 부인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을 추모하여 만든 무덤이다.

 

 

 

샤 자한은 부인을 기념하여 타지 마할과 같은 호화 분묘를 조성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수도를 델리로
옮기기로 계획하고 레드 포트 등과 같은 엄청난 공사들을 계속적으로 진행하여 국가가 흔들릴 정도로
제정을 휘청거리게 만든다. 이러한 실정을 구실삼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는 반란을 일으킨다.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의 총애를 받고 왕위를 이를 아들 다라 시코(Kara Shikho)를 포함한 모든 왕자들을
죽이고 1658년 아버지인 샤 자한에게서 왕위를 박탈한다.

 

 

 

아우랑제브는 샤 자한을 타지 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포트의 8각형 탑과 같은 형식의 구조물인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에 가두게 되는데, 감금된 후 그 곳에서 타지 마할을 바라보며 죽을 때까지 지내야 했던 샤 자한은 1666년 죽어서야 부인 곁에 나란히 묻히게 되었다.

 

 

 

샤 자한은 부인 뭄타즈 마할을 위해 만든 무덤, 타지 마할과 비슷한 크기로 자신의 무덤을 타지 마할과
반대가 되는 검은 대리석만으로 야무나강에 건너편에 짓고, 구름다리를 만들어 이 두무덤을 연결하려는
계획이 었었다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지만 증명된 이야기는 아니다.

 

 

 

1631년에 짓기 시작하여 22년만인 1653년에야 완공된 이 건물의 정면 마당에는 수로가 있는 전형적인 무굴(Moghul) 양식의 정원을 두고, 좌우로는 회교사원과 회당을 둔 구조로 되어 있다. 타지 마할의 뒤편으로는 야무나(Yamuna)강이 흐르고 있는데, 높은 축대로 쌓여진 야무나 강쪽의 뒷면을 제외한 타지 마할의 삼면은 모두 높은 담이 둘러져 있다.

 

 

타지 마할을 이루고 있는 하얀 대리석은 각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여 아침과 한낮 그리고 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다. 달빛 아래의 타지 마할을 보고 싶다면, 부근에 있는 높
은 건물의 옥상에 오르면 된다.

 

 

 

붉은색 사암으로 균형있게 지은 타지마할의 정문

 

타지 마할 건물의 정면 마당에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 수로는 무더운 한낮에 아지랭이 현상을 볼 수 있게
만든다. 본관에 있는 두묘는 아무것도 내장되어 있지 않고 본관 아래층에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나란
히 묻혀 있다.

 

 

 

[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는 마력에 찬 건물 ]

타지 마할은 이란의 쉬라즈(Shiraz) 출신인 우스타드 이샤(Ustad Isa)에 의해 설계된 것인데, 설계된대로 만들기 위해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등지에서 동원된 장인들을 포함하여 총 인원이 2만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건축 자재 운반을 위해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으며 라자스탄의 마크라나(Makrana)에서 채취된 대리석을 비롯하여 건물 안의 세세한 장식을 위하여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수입 했던 여러 가지의 돌이 사용되었는데,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준비과정과 장인들을 동원하여 만든 타지 마할의 건축비는 상당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동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에 타지 마할로 들어서기 위한 1차 관문이 있고 이 1차 관문을 통과하면 널찍한 마당이 나오는데 타지 마할은 이 마당을 건너 또 다른 문을 통과해야 볼 수 있다. 타지 마할로 통하는 최종 관문으로 세워진 붉은 사암으로 된 문에는 아랍어로 코란(Kolan)의 경구들이 새겨져 있다.
2007. 02. 01 / sunmoon

 

 

 

 

 

타지마할

인도 아그라 교외의 야무나 강(줌나 강) 남쪽 연안에 있는 영묘(마우솔레움).

무굴 제국 황제인 샤 자한이 아내인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을 기리기 위해 지은 이 영묘는 뭄타즈 마할('선택받은 궁전'이라는 뜻)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이 전와되어 타지 마할이라고 한다.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은 1612년에 황제와 결혼한 뒤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반려자로 지냈으나 1631년 부란푸르라는 도시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타지 마할은 인도,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등지에서 온 건축가들의 공동 설계에 따라 1632년경에 착공되었다. 매일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어 1643년경에 영묘가 완공되었고, 1649년경에는 모스크·성벽·통로 등 부속건물이 완공되었다. 타지 마할 전체가 완공되기까지는 22년의 세월과 4,000만 루피의 비용이 들었다.


이 복합 건물은 너비 580m, 길이 350m인 직4각형으로,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이 중앙에는 한 변이 305m인 정4각형 정원이 있고, 그 북쪽과 남쪽에 그보다 약간 작은 2개의 직4각형 구역이 있다. 남쪽 구역은 타지 마할로 들어가는 사암 출입구와 거기에 딸린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 구역은 야무나 강가까지 뻗어 있고 거기에 영묘가 있다. 영묘의 동서 양쪽에는 완전 대칭을 이루는 2개의 건물이 붙어 있는데, 서쪽에 있는 것은 모스크이며 동쪽의 것은 미학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운 이른바 '자와브'이다. 모퉁이에 8각형 탑이 솟아 있는 높은 벽이 북쪽 구역과 중정을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 울타리 밖에는 마구간과 경비병 숙소가 있다. 무굴 제국의 건축 관행은 나중에 증축하거나 개축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통일체로서 타지 마할을 구상하고 설계했다. 이 복합체의 북쪽 끝에는 영묘·모스크·자와브 등의 가장 중요한 건물들이 모두 모여 있다. 붉은 시크리 사암으로 지은 모스크와 자와브에는 대리석을 두른 돔과 아키트레이브(평방)가 있으며 일부 표면이 단단한 돌(pietra dura)로 장식되어 있어, 순수한 하얀색 마크라나 대리석으로 지은 영묘와는 색깔과 감촉에서 대조를 이룬다(→ 피에트라두라). 영묘는 높이 7m의 대리석 대좌 위에 지어졌으며 사방이 똑같은 모습으로, 모서리는 정교하게 깎여 있고 각 면마다 높이 33m로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가 있다. 높은 원통형 벽(drum)으로 떠받친 양파 모양의 2중 돔이 이 건물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영묘의 각 아치 위에 있는 난간과 각 모서리 위에 있는 장식 뾰족탑 및 돔을 덮은 원통형 정자는 영묘의 스카이라인에 율동감을 준다. 대좌의 각 모서리에는 3층 미나레트가 서 있는데, 대좌와의 대리석 접합부는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묘의 대리석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영묘의 내부는 8각형 방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얕은 부조 무늬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된 이 묘실에는 황제 부부의 기념비가 있다. 이 대리석 무덤은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으며, 여기저기에 보석을 박은 투각(透刻)한 대리석 막이 둘러처져 있다. 정원과 같은 높이에 있는 지하 납골당에는 진짜 석관이 있다. 타지 마할은 무굴 제국 최고의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의 하나로 여겨진다.

 

                                        

 

이 사랑의 세레나데그 무덤은 지하에 있고 그 가묘를 관광객이 보이는 곳에 위 그림과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건물을 짓게 된 전설로는 다음과 같은 서글픈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무굴제국 재상의 딸에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아름다운 아르쥬만드 바누가 있었다. 19살에 사자한을 만나서 이듬해에 결혼을 하였다. 황제 샤자한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여 '궁전의 영광'이라는 뜻의 '뭄타즈 마할(Mumtax Mahal)'이란 칭호를 주고 사랑을 쏟았다. 타지마할은 17년 결혼 기간 동안 14명의 아들을 낳고 전쟁에 나가는 황제를 따라 15번째의 아이를 낳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출처: indiary.net
왕비를 잃고 하룻만에 머리가 하얗게 시었다는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1년 후 아그라 언덕에 아내의 묘 타지마할을 세우기로 하였다. 
1631년부터 22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2만여 명의 노동자와 1,000마리 코끼리를 동원하여 호화 분묘를 지었다. 한 변이 약 95cm, 높이 6m 되는 기단 위에 대리석으로 어느 쪽에서 보아도 같은 대칭형의 타지마할을 지은 것이다. 중앙의 큰 돔은 흰 대리석으로 높이 33m, 사방에 작은 돔을 거느리고 있다. 대리석은 빛이 투과하는 고급 인도 대리석이라서 자연광이 대리석을 뚫고 왕비의 석관을 비치게 하였다.
그 관에 '신은 영원하시며, 신은 완전하시도다.' 라는 비명이 새겨져 있다. 그들의 사랑은 신처럼 영원하며 신처럼 완전히 저승에서 다시 재결합을 상징할 것을 뜻하는 말이라 한다.
그리고 건설에 동원된 2만 인부들의 손을 잘라 다시는 이와 같은 건물을 짓지 못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모스크바에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원의 하나라는 성바실리 사원을 지은 러시아 황제 이반 4세가 이 건물을 지어놓고 보니 너무나 아름답고 멋있어서 다시는 이런 건물을 짓지 못하게, 이 성당을 설계한 자의 눈을 뽑아버렸다는 이야기처럼.
국력을 탕진하는 건축왕 샤자한의 이런 공사의 불평에 편승한 막내 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가 반란을 일으켜 형제 왕자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고 타즈마할이 마주 보이는 아그라 포트의 무삼만 버즈( (Musamman Burj)에 유폐시키는 바람에 아내의 무덤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8년 동안 그리워 하다가 거기서 75세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죽어서야 샤자한 왕은 아내의 무덤타지마할에 나란히 묻히었다. 
 
이 사랑의 세레나데그 무덤은 지하에 있고 그 가묘를 관광객이 보이는 곳에 위 그림과 같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뭄타즈의 묘실(墓室), 뭄타즈마할과 샤 자한의 두개의 관(棺)이 놓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