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청각·후각·미각… ‘장맛 四覺지대’
강원 정선 ‘메주와 첼리스트’
★...전통메주가 주렁주렁 -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가목리의 ‘메주와 첼리스트’너와집 창가에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장은 추위가 풀리기 전 음력 정월에 담가야 가장 감칠맛 나는 최상의 품질을 얻을 수 있다
태백산맥의 주봉인 두타산(1353m) 북쪽 끝자락. 백봉령을 굽이굽이 돌아 부수베리 골짜기로 향하면 강원도 정선의 임계면 가목 마을에서 ‘메주와 첼리스트’를 만날 수 있다. 첼리스트 도완녀(54)씨가 학승이었던 돈연스님과 함께 하는 된장마을이다.
부수베리계곡의 맑은 물과 잣나무로 둘러싸인 마당에는 3200개가 넘는 항아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가깝게는 18년 전 항아리부터 멀게는 일제시대의 항아리까지 전국에서 수집된 각양각색의 항아리에는 간장과 된장이 가득하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숫자다.
★...香과 音의 앙상블 - 첼리스트에서 된장 담그는 아줌마로 변신한 도완녀씨가 항아리와 가족을 형상화한 나무조각 앞에서 ‘정선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범어경전 번역가로 이름난 돈연스님과 첼리스트 도완녀씨가 만나 평생의 연을 시작한 것이 1993년. 서울대 음대에서 첼로를 전공하고, 독일 유학까지 다녀온 도완녀씨가 돈연스님의 농촌 사랑과 된장에 반해 두메산골의 된장 담그는 아줌마로 변신했다. 그는 틈틈이 음악을 선물하는 첼리스트로 전통 된장의 장맛에 깊이 빠져 생활하고 있다.
장은 대체로 추위가 풀리기 전인 음력 정월에 담근다. 정월 중에서도 말날인 오일(午日)이나 손 없는 날을 선택해 장 담그기 좋은 날을 정한다. 예로부터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며 장맛 관리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장을 담그는 여인들은 삼일 전부터 외출을 삼가고 부부관계도 갖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부정한 사람을 막기 위해 금줄을 쳐 놓기도 했다.
된장에는 다섯 가지의 덕이 있다. 다른 맛과 섞어도 제 맛을 내는 단심(丹心)과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항심(恒心),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제거하는 불심(佛心)이 있다. 매운 맛을 부드럽게 하는 선심(善心),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는 화심(和心)이 된장에서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선물들이다
★...항아리에 정성껏 - 아낙네들이 깨끗하게 씻겨진 메주를 정성스런 손길로 장독에 담고 있다.
감칠맛 나는 장을 담그기 위해서는 콩, 소금, 물, 항아리가 필요하고, 맑은 공기와 햇빛 등 자연환경도 큰 영향을 미친다.
콩은 수확한 지 3개월 미만의 것을 사용해야 한다. 메주의 주재료인 콩은 반드시 국산 콩이라야 하며, 묵은 콩으로 장을 담그면 제대로 된 장맛을 낼 수가 없다. 소금은 갯벌에서 말린 천일염을 2년 정도 간수를 빼낸 뒤 쓴다. 물은 정월에 봄눈이 녹으면서 얼음 밑으로 흐르는 표층수(해발 1300m 이상부터 흐르는 계곡물)가 가장 좋다고 한다. 항아리는 장 속의 미생물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자연 유약을 바른 것을 써야만 한다.
메주와 첼리스트(www.mecell.co.kr)의 된장마을에서는 최근 웰빙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물맛이 중요하지” - 황토로 지은 너와지붕의 통나무집에서는 창 밖의 메주와 항아리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여래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약 500m의 전나무 숲길에서는 산책을 하며 명상도 할 수 있다. 소원을 담은 쪽지를 나무에 매달 수도 있다. 숲에는 놋쇠로 만든 밥그릇이 여러 개 놓여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마음껏 두드리며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도 한다.
따뜻한 봄이 오면 이곳만의 특별한 음식도 만날 수 있다. 된장마을답게 이름도 ‘항아리 뚜껑 정식’. 된장 항아리 뚜껑에 각종 나물반찬을 담아 뷔페식으로 내 놓는다. 도완녀씨의 첼로 연주를 감상하며 장맛이 진하게 배어 있는 나물밥을 시식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도완녀씨에게 꿈이 있다. ‘콩 명상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수려한 자연환경 속에서 자연음식으로 몸의 독소를 빼고 된장 찜질과 춤명상, 좌선, 걷는 명상, 음악치료를 통해 사람들이 삶의 에너지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과 함께 은근과 끈기의 된장문화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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