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살어요/인물·연예·유명

국보자매(임경희 43ㆍ임성희 39)

사오정버섯 2007. 3. 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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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에 신곡으로 돌아온 국보자매

나를 나를 잊지마세요~'로 시작하는 히트 넘버, '내 모습이 쓸쓸해요'의 주인공 국보자매(임경희ㆍ임성희)가 10년 만에 신곡 '심청이와 춘향이'를 타이틀로 한 14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사진은 1980년대 초 '내 모습이 쓸쓸해요'로 활동하던 국보자매 모습. (서울=연합뉴스)

10년 만에 신곡 내고 가요계 복귀

"퓨전 여성국악단 결성해 아버지 유작 뮤지컬로 만들 것"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가수 진시몬 씨가 대기실서 저흴 못 알아보더라고요. 국보자매 딸들인 줄 알았대요, 글쎄. 호호, 깔깔깔."

25년여의 세월을 건너뛰었나 보다. 1980년대 초 데뷔 시절, 밝은 성격, 깜찍한 표정이 그대로다. "중년의 '여사님'으로 변했을 줄 알았다"고 하자 또 한바탕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82년 '나를 나를 잊지마세요/머리에서 발끝까지~'로 시작하는 히트 넘버, '내 모습이 쓸쓸해요'의 주인공 국보자매(임경희 43ㆍ임성희 39). 10년 만에 신곡인 국악가요 '심청이와 춘향이'를 타이틀로 한 14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2002년 '내 모습이 쓸쓸해요' '백치미' '금수강산' 등이 담긴 '데뷔 20주년 기념 베스트 음반'을 냈지만 신곡은 96년 설운도가 작곡한 '자존심' 이후 10년 만이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MBC에서 만난 경희ㆍ성희 자매는 여러 개 파일이 담긴 종이 가방을 풀었다. 데뷔곡은 사실 81년 '하늘 같은 그 사람'. 이때부터 차곡차곡 모은 신문ㆍ잡지 스크랩과 활동 당시 사진이 쏟아져나왔다.

'국악ㆍ팝송 뭐든지 척척, 각광받는 악극인 2세'(동아일보 81년 10월30일자)

'무용ㆍ악기 다루는 솜씨 일류, 일본 빅터 레코드사 7년 장기 계약 제의'(스포츠동아 81년 11월25일자)

'듀엣 국보자매 7월 유럽 순회 공연, 데뷔 9개월 만에 찾아온 벅찬 행운'(일간스포츠 82년 6월16일자)

국보자매의 출현은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핫팬츠와 민소매셔츠의 파격적인 의상, 무대에서의 깜찍한 율동으로 시선을 모았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도쿄 유학생 가수, 명문 악극단 집안 자제, 한국의 '핑크 레이디(70~80년대를 대표한 일본 여성듀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특히 집안 내력은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87년 타계한 아버지 임천수 씨는 국악과 양악을 접목한 선구자로, 도쿄음대 교수를 역임한 테너이자 작곡가. 국보오페라단ㆍ국보소녀가무단ㆍ코리아엔젤스 등의 단체를 설립해 장미화, 김상범, 봉봉 4중창단 등의 제자를 배출했다.

또 고모인 임춘앵 씨는 50년대 전설적인 여성국악단인 임춘앵 여성국악단를 이끌었다. 이에 자매는 네 살ㆍ여섯 살 때부터 국악, 고전무용을 시작했고 코리아엔젤스 등에서 활동하며 피아노, 가야금, 기타, 드럼, 장구 등의 악기 실력도 갖추게 됐다.

해외 활동도 원조 격이다. 지금은 보아ㆍ비 등 많은 한류 스타들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로선 국보자매의 행보가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임성희는 "'제2의 핑크 레이디'를 만들려는 일본 빅터 레코드가 저희를 눈여겨보고 전속 계약 제의를 했다"며 "당시 계약 조건은 일본에서 6개월간 노래 연습하고 2년 일본, 2년 미국, 다시 2년을 일본에서 활동하는 것이었다. 막 국내에서 시작한 단계여서 한국 활동 때문에 계약을 포기했다"고 한다.

82년엔 독일ㆍ스위스ㆍ네덜란드ㆍ영국ㆍ프랑스 등 유럽을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이 공연은 서독한인회 총무이자 의사인 외삼촌의 도움으로 성사됐고 특히 네덜란드 공연은 PSV 에인트호벤에서 활약하던 허정무 선수의 매니저인 사촌형부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지금 가수들처럼 개런티를 받고 간 게 아니라 독일 노인요양원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한 자선 위문 공연이었어요. 86년에는 전영록, 백설희 씨와 함께 미국 워싱턴, 뉴욕에서 한인부인회관 설립 기금 모금 마련 공연도 했죠. 당시 워싱턴타임스 1면에 우리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실렸는데…."

나이와 팀명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데뷔 당시 나이를 속였어요. 제가 국악고등학교 3학년이면서 도쿄음대 합격증을 받은 상태였고, 동생은 중학교 3학년(나이보다 한해 빨리 입학)이면서 도쿄음대 부설고등학교 입학을 준비중이었죠. 동생이 미성년자여서 활동에 제약이 컸어요. 그래서 실제 나이 차가 네 살이지만 두 살 차로 활동했고 데뷔 시절 언론에는 대학생, 고등학생으로 보도됐죠(웃음)."(임경희)

"그룹 이름으로 외래어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바니걸스가 토끼소녀로 활동했으니까. '국보'는 나라의 보배(國寶)라는 뜻인데 나라의 악보(國譜)란 의미의 아버지 호(號)에서 따왔습니다. 영어가 아닌데도 일부 방송 단체에서 '너희가 어떻게 나라의 보배냐, 이름을 바꾸라'는 지적도 받았죠(웃음)."(임성희)

"하루 아침에 눈 떠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는 자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인 86년 아시안게임까지 전성기였다. 이후 간간이 음반을 냈지만 TV에서 멀어지자 주목받지 못했다. 89~90년 10대로 구성된 여성 4인조 그룹 '마스코트'를 제작해 쫄딱 망해보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새 음반을 발표한 건 또 다른 목표가 있어서다. 앞으로 21세기에 맞는 퓨전 여성국악단을 설립, 오케스트라ㆍ밴드ㆍ전통악기를 버무려 아버지의 유작인 '백설공주' '춘향전' '견우와 직녀' 등의 작품을 뮤지컬로 재현하는 것이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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