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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몬로의 스캔들

사오정버섯 2007. 2. 28. 21:24

River Of No Return - Marylin Monr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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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人 薄命“(미인 박명)이라는 말이 있지만,
”Marilyn Monroe”(1926-1962, 미국 LA)
의 죽음 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쉽다.

더군다나 그 죽음이 표면적으로 (당시에)발표된 이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음모론이 최근에 제기된 적도 있어서 더욱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과연 그녀를 그렇게 누가 약을 먹여서 죽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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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권력의 최고위층에 있는 자와 여배우간의 스캔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지만 어느 나라 나 이런 식의 은밀한 Behind Story 는 항상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John F Kennedy“ 대통령(1917-1963, 미국)
이 ”Marilyn Monroe”의 염문도 소문을 넘어 사실로 들어 나면서 영부인이었던“재클린” 의 속 을 꽤나 상하게 하였을텐데, 그녀의 죽음도 이런 스캔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고 , 또 최근에는 "Kennedy“ 대통령의 죽음조차 새로운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서 더욱 그녀의 죽음은 미스테리 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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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8월5일 오전에 “Norma Jean Mortensen"(그녀의 본명)은 LA 자택의 침실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이 되었는데 전날 밤의 약물과용이 그 죽음의 원인으로 발표되었다.

1926년, LA에서 태어난 조숙한 그녀는 이미 16세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경제적인 이유로), 1946년에 이혼을 한 그녀는 한 사진사에 의해 잡지 표지모델이 된 이후 이듬해 “20세기 폭스“사에 발탁이 되었다.(7년 계약)

1947년부터 여러 영화에 출연하던 그녀는 (역대 공동 1위로, 아카데미 상에 무려 14개 부문에 후보작이 되었던 “All About Eve, 1950"에도 출연),
1953년의 “Niagara"를 비롯한 몇 작품으로 드디어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이후 1962년까지 총30편의 영화에 출연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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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얼굴값 을 한다고나 할까?
사생활면에서 무척이나 복잡한 인생을 산 그녀는 스타가 된 이후에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의 뉴욕 “양키스“의 강타자 야구선수인, “Joe Dimagio"(1914-1999) 와 또 ”세일즈 맨의 죽음“으로 잘 알려진 극작가인, ”Arthur Miller"와의 결혼(1955년)  등으로
숫한 화제 를 불러 일으켰는데,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렇게 권력의 최상층 인물들과의 교제로(“Kennedy“ 대통령의 동생 ”Robert Kennedy"와 의 염문설도 있다.)


생을 결국 단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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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agara"가 발표된 1953년에는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와 ”How To Marry a Millionaire"가 한꺼번에 히트를 하였는데, 바로 이 작품“돌아오지 않는 강“(1954)에 출연한 그 다음해에 이미 그녀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20세기 중반의 최고의 “섹스 심볼“이라는 칭호를 받은 그녀의 연기가 때론 어설프다는 평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녀는 승승장구 하였고 거기다 노래도 몇 곡 취입 을 하였는데 그 노래 솜씨 역시 아마츄어 는 벗어난 프로수준 이랄 수 있고 그래서 인지 이 영화에서도 직접 기타를 치면서 멋지게 노래를 들려 주므로서 이 영화가 더욱 더 인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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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를 개척하던 시절에 어느 광산촌의 술집에서 일하는
“케이 웨스턴“(Marilyn Monroe, 1926-1962, 미국 LA),
노래도 곧잘 불러 그곳의 뭇 사내들에게 인기가 대단한데 도박꾼이자
사기꾼인“해리”(Rory Calhoun, 1922-1999,미국 LA)의 꼬임에 빠져 이곳을 같이 벗어날 작정을 하던 중에, 꼬마 아들과 함께 인근 평야에서 착실히 개간을 하며 살고있는
“Matt"(Robert Mitchum,1917-1997, 미국 코넥티컷) 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점점 본성을 들어내는 “해리”와 본의 아니게 결별을 하게 된 “케이”는 우여곡절 끝에“Matt"과 함께 뗏목을 타고 이 “돌아오지 않는 강“(아래사진은 실제 촬영 장소) 을 (절대로 무사히 갈수 없고 또 돌아 올수도 없다는 인디언 전설로 해서 붙여진 이름)
내려가게 되는데, 그 와중에 인디언들도 쫒아오고, 또 중간에 급류도 만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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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우선 캐나다 쪽의 Rocky 산맥에서 촬영한 장엄하고 웅장한 경치가 일품 이다. 완전 무공해 의 그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이 두 남녀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서부극 형태로 전개가 되는데 시원스런 이목구비의 “몬로”(166Cm)의 외모와 또 그리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아주 남성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Mitchum“ 의 서부사나이 다운 모습이 서로 상당히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는 스턴트도 별로 없던 시절이고 또 예산 관계로 해서 이 두 배우는 실제로 촬영도중에 그 거친 강의 급류 속에서 위험에 빠진 경우가
여러 번 있었던 그런 고생을 무척이나 많이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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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반주에 맞춰 조용하게 발라드 스타일로 시작되는 동명 타이틀의 주제곡,노래는 영화초반부의 Saloon 장면에서 나오는데, “Marilyn Monroe“의
섹시한 그 콧소리가 무척 매력적이다.

“때로는 조용하게 흐르다
때로는 거칠고 제 멋 데로 흐르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불리는 그 곳....
‘와일라리’ ‘와일라리’ 라고 부르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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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에 발표된 “영광의 탈출”(Exodus)로 우리나라에서도 알려진,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출신의 유태인 영화인,
“Otto Ludwig Preminger”(1906-1986)
서부 영화를 많이 만든 감독은 아니었는데도, 넓은 “시네마 스코프”에다
목가적인 분위기를 잘 연출하였고, 또 전체 영화음악(OS)을 맡은
“Cyril J. Mockridge”(1896-1976, 영국)과 이 주제곡을 만든
“Lionel Newman”(1919-1989,미국, 평생 약80편의 영화음악도 만듬)
역시 아코디온 을 주로 사용하면서 그 잔잔한 분위기를 잘 뒷받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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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올라오는 지하철 환기구 위에서 치맛자락을 잡고 있는 이 야릇한 포즈가 아직도 “Marilyn Monroe“하면 생각이 나는 영원한 그녀의
Trademark 인데,(위의 사진)(“Billy Wider” 감독의 1955년 작품인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에서의 한 장면이지만 위의 사진은 포스터용의 새 촬영 본이다)

벌써 이 영화가 나온 지도 반세기가 지나갔고 배우들과 스탭들의 대부분이 이 세상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초인 지금, 반세기 전의 그녀와 같이 사회적으로도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니는 화끈한 “섹스 심볼” 은 과연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