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 자연이야기]낙지의 짝짓기 |
그놈들을 잡으러 눈에 불을 켜고 그렇게 기웃거리고 있는 것이다. 잡힌 녀석들은 줄줄이 머리통이 꿰인다. 팔팔 끓는 해물탕 육수에 올려지기도 하고 고추장 양념으로 야채와 함께 볶음도 될 것이다. 식도락가(?)들을 만나면 산 채로 다리 토막 나서 참기름 부운 소금 접시에 올라 꿈틀꿈틀…. 입천장 목구멍에 빨판(흡판)이 쩍쩍 달라붙으니 그 맛으로 먹는다고 한다. 낙지는 몸에 뼈가 없이 살이 부들부들한 동물이라 연체동물(軟體動物)이라 하고, 머리몸통과 거기에 긴 다리가 달라붙은 괴이한 놈이라 두족류(頭足類)라 부른다. 하긴 녀석들은 우리를 보고 우뚝 서서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괴상한 동물이라 하겠지. 다 제가 지구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제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낙지 ‘다리(脚)’라고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팔(arm)’이라고 부르니 낙지다리가 발이냐 팔이냐. 뭐라고 불러야 할까. 아무튼 문화의 차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다리가 10개인 십완목(十腕目)에는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가 있고 문어, 낙지, 주꾸미 등은 다리가 여덟 개인 팔완목(八腕目)이다. 연체동물들은 주로 게, 새우 등의 갑각류(甲殼類)나 사촌(四寸)뻘인 굴 같은 조개(연체동물)들을 먹고산다. 보통 때는 느릿하지만 먹이만 봤다하면 재빠르게 달려가서 확 덮치는 품이 더없이 날쌔다. 여덟 다리에는 온통 빨판(sucker)이 더덕 달라붙어 있어서, 억센 근육질 팔로 조여 들어가 먹잇감의 힘을 빼버린다. 이들 동물의 빨판을 흉내내어 여기저기 달라붙이는 인조 흡반(吸盤)을 만들었다. 그것을 벽이나 타일에 붙일 때는 물을 조금 바르고 꼭 눌러서 공기를 빼어버린다. 둘 다 원리가 같다. 가만히 있다가도 달려 나갈 때는 몸 안의 외투강(外套腔) 속에 든 물을 순간적으로 확 내뿜는다. 물이 작은 깔때기(수관·siphon)를 빠져나가면서 분사(제트) 수류를 일으켜서 휙 내뺀다.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머리몸통을 움츠리고 여덟 다리를 바싹 오므려서 잽싸게 도망친다. 위장(僞裝)을 하다가도 정 위급하다 싶으면 먹통(잉크주머니·ink-sack)의 먹물을 확 뿌려버린다. 먹물이 몸을 가리기도 하지만 포식자(捕食者)가 먹물 냄새를 맡으며 먹잇감을 찾느라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안전지대로 대피한다. 꾀보 낙지다. 낙지들의 사랑 또한 기특하다. 두족류는 하나같이 자웅이체(雌雄異體)다. 수놈이 암놈을 만나면 몸 색깔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좋다”는 것을 알린다. “사랑한다”는 그들의 수런거림이 들려오지 않는가! 그런가하면 수놈끼리 만나는 날에는 난리가 난다. 체색을 표변(豹變)하면서 세력권을 방어하고 수틀리면 생명을 맞바꾸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암놈이 확실하게 얼룩말무늬를 띠면 그것을 신호로 알아차리고 재빨리 암놈한테 달려든다. 낙지의 수놈은 암컷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수컷의 오른쪽 셋째 다리(오징어는 네 번째 다리) 끝에 숟가락 닮은 교접완(交接腕, 생식완, 짝짓기팔)을 갖는다. 정자를 쏟아내어서 모아 덩어리로 만드니 이를 정포(精包)라 하고 그것을 짝짓기팔에 얹어서 암놈 입 근방의 주머니(외투강)에 집어넣는다. 이것이 낙지의 짝짓기다. 저것들도 사랑을 논하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잡으려는 사람과 도망가는 낙지의 술래잡기, 아니 목숨잡기는 오늘도 끝없이 이어진다.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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