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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와 피뿔고둥의 만남

사오정버섯 2007. 2. 2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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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자연이야기] 주꾸미와 피뿔고둥의 만남

우리나라에서 오징어는 주로 동해안에, 주꾸미는 물이 얕은 서해안에 서식한다. 둘 다 머리와 발이 붙어있는 연체동물(軟體動物)의 두족류(頭足類)지만 오징어, 갑오징어는 발(다리)이 열 개인 데 반해 문어, 낙지, 주꾸미는 여덟 개다. 그러나 끼리끼리는 사촌이나 육촌간인 셈이다. ‘생물은 다 제 자리가 있고, 또 제 이름이 있다’고 한다. 참 맞는 말이다! 이름 없는 생물은 학계에 발표되지 않은 신종(新種)뿐이다.

맛있는 주꾸미의 철, 알을 낳는 산란기 오뉴월이 다가온다. 주꾸미는 문어보다 다리가 짧고 몸집이 아주 작다. ‘꼬마 문어’라고 보면 된다. 먹는 방법이나 맛은 낙지와 비슷하다. ‘주꾸미 집’에서 저렇게 많이 먹어대는 저것을 어디서, 어떻게 다 잡아오는 것일까?

주꾸미가 가장 많이 나기로는 서해안, 그것도 충남 서천군 근방이 유명하다. 그곳을 다녀온 어느 기자의 글 한 토막을 보자. “끌어올린 소라 껍데기에 들어있는 주꾸미를 갈고리로 끄집어내고 있다. 주꾸미는 이처럼 소라 껍데기로 유혹해 잡는다. 갈고리로 찍어내도 빨판(흡판)을 껍데기에 딱 붙이고 있어 쉽게 딸려나오지 않는다. 주꾸미를 꺼낸 소라 껍데기는 다시 바다에 가라앉힌다. 주꾸미가 또 들어가도록 한 사나흘 두었다가 걷어올린다. 빈 소라 껍데기 끝자락에 구멍을 뚫어서 길고 굵은 줄에 디룽디룽, 줄줄이 매달아서 바다에 내린다. 소라 껍데기가 주꾸미 잡는 낚시미늘인 셈이다.”

‘주꾸미와 소라의 만남’은 예사롭지 않은 거룩한 인연이다. 우연이 아닌 필연의 만남! 맞다. 주꾸미는 그렇게 잡는다. 머리싸움이라고나 할까. ‘소라’라고 하는 말은 보통 쓰는 말이고, 우리말 이름은 ‘피뿔고둥’이다. 피뿔고둥은 주꾸미가 몸을 숨기는 은신처이고, 거기에다 알도 낳는다. 피뿔고둥은 입 둘레가 넓어 주꾸미가 들어앉기에 안성맞춤이다. 피뿔고둥이 있어야 주꾸미가 산다.

주꾸미는 피뿔고둥의 제일 꼭대기 안쪽에서 시작하여 아래 입구쪽으로, 죽 이어 껍데기 벽에다 알을 낳는다. 알은 길쭉한 오이씨를 닮았고, 알덩어리는 아카시아 잎사귀를 닮았다고 한다. 알은 낳은 어미는 55일간을 지킨다! 노심초사(勞心焦思), 마음으로 애를 쓰며 속을 태운다. 빨판으로 알을 닦아주고, 물을 일부러 흘려 산소를 공급한다. 주꾸미도 가슴앓이 하는 모성애가 있다. 그러고 나면 어미는 진이 빠져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다.

영리한 꾀보 주꾸미 놈의 기막힌 은폐기술을 보자. 고둥 곁에 노니다가 둥그스름하고 납작한 조개껍데기를 물고 들어간다. 몸을 슬그머니 고둥 안에 집어넣고는 그 조가비로 입구를 꽉 막아버리는 주꾸미!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온 물고기는, 방금 도망간 주꾸미는 보이지 않고 뚜껑 꽉 닫은 피뿔고둥만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으니,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주꾸미 너는 그것을 어찌 터득했니? 신통한 일이로고.

물고기는 물 없으면 죽지만 물고기 없어도 물은 물이다. 주꾸미는 고둥 없이 못살지만 고둥은 주꾸미가 없어도 고둥일 뿐. 어째서 주꾸미는 알을 고둥 속에다 낳는 것일까. 제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보고 접한 것이 그 고둥이었다. 고둥이 어머니로 각인(刻印)되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이다. 주꾸미와 피뿔고둥의 만남, 그들의 맺음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당신의 만남은?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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