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 자연이야기]
더듬이를 네 개나 가진 달팽이
꽤나 오래 주간조선에 글을 써오면서도 정작 필자가 전공하는 달팽이에 대해서는 여태 말하지 않았다. 어리석고 못난 사람을 불출(不出)이라 한다지. 삼불출(三不出)은 마누라 자랑하는 남편, 남편 자랑하는 여인네, 자식 자랑하는 부모라고 한다. 그 꼴이 되기 싫었던 모양이다. 달팽이는 내 자식이요, 바로 나이기도 하니 말이다. 한데, 어찌 제자랑쟁이는 불출에 넣지 않았을까? 아무튼 너나 할 것 없이 다 제 잘난 맛에 산다! 이 엄동설한에 겨울잠(동면·冬眠)을 자는 내 새끼들이 무척이나 춥겠다. ‘겨울에 죽순 이야기요, 하루살이에게 얼음 이야기를 하는 셈’이지만 잠자는 녀석들을 만나보자.
먼저 ‘달팽이’란 말의 뜻은 무엇일까? 달팽이라!? 아마도 하늘의 둥근 ‘달(月)’을, 또 팽글팽글 돌아가는 ‘팽이’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일 듯(필자의 주장임). 옛날 사람들은 달팽이를 ‘와우(蝸牛)’라고 했는데 ‘와’는 달팽이, ‘우’는 소라는 뜻으로, 행동이 소처럼 느릿하다는 의미도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달팽이(snail)는 둥그스름하여 정감이 가고, 굼뜨기에 무섭지 않으며, 꾸준하게 움직이는 것이 돋보이는 매력점이다. ‘Slow and steady!’ ‘실패의 반은 게으름에 있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느림보면서도 바지런한 달팽이를 닮아보는 것도 좋으리라. 씨앗이나 과일이 죄다 둥글다는 것은 뭘 뜻하는가?
달팽이는 응달에 살면서 이끼무리를 갉아먹는다. 밭가에 사는 것들은 옥수수, 배춧잎, 무 이파리들을 갉아먹고. 입에는 치설(齒舌)이라는, 탄산칼슘으로 된 딱딱한 것이 있어서 이것으로 오물오물 풀을 뜯는다. 껍데기 없는 달팽이를 민달팽이라 하고, 여기서 ‘민’자는 ‘없다’란 뜻으로, ‘껍데기가 없는 달팽이’란 의미다. 흰 자국을 남기고 가는 민달팽이다.
뭐니 해도 달팽이는 태어나면서 제 집을 받아가지고 나온다. 물론 여기서 ‘집’이란 껍데기를 말한다. 껍데기가 늘어가면서 몸뚱이도 조금씩 불어난다. 집 사기 위해 주택부금 들지 않아도 되는 행운의 달팽이! 천적(새, 딱정벌레 등)이 나타나면 재빨리 몸을 껍데기 안으로 집어넣어 죽음을 면하니 그 또한 편리하기 짝이 없는 집이다.
달팽이는 딴 동물과 달리 더듬이(촉각·觸角)가 네 개다. 위쪽에 큰 더듬이 두 개, 아래에 작은 더듬이 두 개가 있어 모두 합쳐 네 개의 더듬이를 갖는 특이한 동물이다. 큰 더듬이 끝에는 동그란 눈이 붙어있다. 그 눈을 손으로 만지거나 다른 것으로 살짝 대보면 더듬이를 안으로 쏙 말면서 눈이 쑥 들어간다. 그래서 ‘달팽이 눈이 되었다’는 말은 겸연쩍거나 민망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를 비유한다. 다시 말하면 큰 더듬이는 물체를 보는 데 관여하고, 작은 더듬이는 냄새를 맡거나 온도나 습도의 자극을 알아낸다.
가까이 가서 가만히 보면, 슬슬 기면서 네 개의 더듬이를 온사방 얽듯 흔들어댄다. 혹시 먹을 게 없나, 또 나를 잡아먹으려드는 놈은 없나, 어디로 갈까 살피고 있다. 그런데 옛날 어른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더듬이들이 서로 다투는 것’으로 봤다. ‘와우각상전(蝸牛角上戰)’이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집안이, 또 나라끼리 다툰다는 의미다. ‘거지 제자리 뜯기’다.
얘들아, 춥지! 그러나 봄은 오고야 만다. 부디 칼바람, 얼음추위 잘 참았다가 해동(解冬)하거든 만나자꾸나!
강원대학교 명예교수(okkwon@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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