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사진/아름다운 세상

법정 스님과 이혜인 수녀님

사오정버섯 2010. 3. 23. 17:31
 
사오정의 쉼터

 

 

법정(法頂) 스님이 미리 쓰신 유서(遺書)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 라도 첨부되어야 하겠지만
제 명대로 살만치 살다가 가는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증오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라도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걸음 한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육신으로는 일회적일 수 밖에 없는  
죽음을 당해서도 실제로는 유서같은 걸 
남길만한 처지가 못 되기 때문에

편집자의 청탁에 산책하는 기분으로 따라 나선 것이다.

 


누구를 부를까? (유서에는 누구를 부르던데) 아무도 없다. 
철저히게 혼자였으니까.
설사 지금껏 귀의해 섬겨온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결국 타인. 


 

 
이 세상에 올 때에도 혼자서 왔고  
갈 때에도 나 혼자서 갈 수 밖에 없으니까.
내 그림자만을 이끌고 휘적휘적 일상의 지평을 걸어 왔고 

또 그렇게 걸어 갈테니 부를 만한 이웃이 있을리 없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멀고 가까운 이웃들과 서로 의지해서 살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생명자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이므로
인간은 저마다 혼자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보라빛 노을같은 감상이 아니라 
인간의 당당하고 본질적인 실존이다. 

고리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도 말한 바 있다.

나는 인간의 선의지 이것 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을 하직하기 전에 내가 할 일은

먼저 인간의 선의지를 져버린 일에 대한 참회다.


 

 
이웃의 선의지에 대하여 내가 어리석은 탓으로 저지른 
허물을 참회하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때로는 큰 허물보다 작은 허물이 
우리를 괴롭힐 때가 있다.

허물이란 너무 크면 
그 무게에 짓눌려 참회의 눈이 멀어 버리고  
작을 때에만 기억에 남는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지독한 위선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두고 한 가지 일로 해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자책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면서 문득문득 
나를 부끄럽고 괴롭게 채찍질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동무들과 어울려 
집으로 돌아 오던 길에서였다. 

엿장수가 엿판을 내려놓고 땀을 들이고 있었다.

그 엿장수는 교문 밖에서도 가끔 볼 수 있으리만큼

낯익은 사람인데, 
그는 팔 하나와 말을 더듬는 장애자였다.


 

 

대여섯된 우리는 그 엿장수를 둘러싸고  
엿가락을  
고르는 체하면서 적지 않은 
엿을 슬쩍슬쩍 빼돌렸다. 
돈은 서너 가락치 밖에 내지 않았었다. 

불구인 그는 그런 영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이 일이,

돌이킬 수 없는 이 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가 만약 넉살 좋고 건강한 엿장수였다면

나는 벌써 그런 일을 잊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에 지워지지 않은 채 
자책은 더욱 생생하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지은 허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중에는 용서받기 어려운 허물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 때 저지른 그 허물이

줄곧 그림자처럼 나를 ?고 있다.  

이 다음 세상에서는 다시는 이런 후회스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며 참회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 생전에 받았던 배신이나 모함도 
그 때 한 인간의 순박한 선의지를 저버린  
과보라 생각하면 능히 견딜만한 것이다.
"날카로운 면도날은 밟고 가기 어렵나니,
현자가 이르기를 구원을 얻는길 또한 이같이 어려우니라." 
 

 


<우파니 샤드> 의 이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내가 죽을 때에는 가진 것이 없음으로

무엇을 누구에게 전한다는 번거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본래 무일푼은 우리들 사문의 소유관념이니까.


 

 
그래도 혹시 평생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밭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오!"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 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그토록 번거롭고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만약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 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평소의 식탁처럼 
간단 명료한 것을 즐기는 성미이니까.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거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좋아하게 된 
양귀비꽃이나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기능이 나가버린 육신은 보기 흉하고 
이웃에게 짐이 될 것이므로  
조금도 지체할 것 없이 없애 주었으면 고맙겠다. 
그것은 내가 벗어버린 헌옷이니까. 
물론 옮기기 편리하고
이웃에게 방해되지 않은 곳이라면

아무 데서나 다비해도 무방하다.


 

 
사리같은 걸 남겨 이웃을 귀찮게 하는 일  
나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별로 없을 것이므로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한 일들을 하고 싶다. 

 

- 글 / 법정(法頂) 스님 - 

 


 
 
법정스님 유언장 전문
 
장례식을 하지 마라. 수의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관(棺)도 짜지 마라.
강원도 오두막의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놓고 다비 해라.
사리도 찾지 마라. 남은 재는 오두막 뜰의 꽃밭에 뿌려라.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하여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리겠다

 
 

 
법정스님과 이혜인수녀님과의 아름다운편지
 
법정 스님께 /이해인 수녀로 부터
 
스님, 오늘은 하루종일 비가 내립니다.
비오는 날은 가벼운 옷을 입고 소설을 읽고 싶으시다 던 스님,
시는 꼿꼿이 앉아 읽지 말고 누워서 먼 산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소리내어 읽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하시던 스님.
가끔 삶이 지루하거나 무기력해지면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흙 냄새를 맡아보라고 스님은 자주 말씀하셨지요
 
 
며칠 전엔 스님의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 오래 묵혀 둔
스님의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니 하나같이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닮은
스님의 수필처럼 향기로운 빛과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일로 괴로워할 때 회색 줄무늬의 정갈한 한지에
정성껏 써보내 주신 글은 불교의 스님이면서도 어찌나 그리스도적인 용어로
씌어 있는지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년 전 저와 함께 가르멜수녀원에 가서 강의를 하셨을 때도
'눈감고 들으면 그대로 가톨릭 수사님의 말씀'이라고
그곳 수녀들이 표현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왠지 제 자신에 대한 실망이 깊어져서 우울해 있는 요즘의 제게
스님의 이 글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고, 잔잔한 깨우침과 기쁨을 줍니다.
어느 해 여름, 노란 달맞이꽃이 바람 속에 솨아솨아 소리를 내며 피어나는 모습을
스님과 함께 지켜보던 불일암의 그 고요한 뜰을 그리워하며 무척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이해인 수녀님께 / 법정

수녀님, 광안리 바닷가의 그 모래톱이 내 기억의 바다에 조촐히 자리잡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난들로 속상해하던 수녀님의 그늘진 속들이 떠오릅니다.
사람의, 더구나 수도자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만 한다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어떤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는 보다 높은 뜻을 찾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 힘든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주님은 항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기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신의 조영 안에서 볼 때 모든 일은 사람을 보다 알차게 형성시켜
주기 위한 배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런 뜻을 귓등으로 듣고 말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수녀님, 예수 님이 당한 수난에 비한다면 오늘 우리들이 겪는 일은
조그만 모래알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 성인들은 오늘 우리들에게 큰 위로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분 안에서 위로와 희망을 누리실 줄 믿습니다.
 

이번 길에 수녀원에서 하루 쉬면서 아침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던 일을
무엇보다 뜻 깊게 생각합니다.
그 동네의 질서와 고요가 내 속 뜰에까지 울려 왔습니다.
수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심기일전하여 날이면 날마다 새날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그 곳 광안리 자매들의 청안(淸安)을 빕니다  

 

 

 무소유(無所有)/ 法頂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털이가 되는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것이 아니라
불 필요한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수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태도가 아니다.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우리가 만족함을 모르고 마음이 불안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마음이 불안하고
늘 갈등상태에서 만족할줄 모른다면
그것은 내가 살고있는 이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주위에 있는 모든것의 한부분이다.
저마다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전체의 한 부분이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이다.

세상이란 말과 사회란 말은 추상적인 용어이다.
구체적으로 살고있는 개개인의
구체적인 사회이고 현실이다.

 

 

우리는 보이든 보이지않든
혈연이든 혈연이 아니든 관계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설켜서 이루러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이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어려운일도 어떤 즐거운일도 영원하지 않다.
모두 한때이다.

 

 

한 생애를 통해서 어려움만 지속된다면
누가 감내하겠는가 다 도중하차 하고 말것이다.
모든것이 한때이다 좋은일도 그렇다.
좋은일도 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면 사람이 오만해 진다.

어려운 때일수록
낙천적인 인생관을 가져야 한다.

 


덜 가지고도 더많이 존재할수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무심히 관심갖지않던 인간관계도
더욱 살뜰이 챙겨야 한다.
더 검소하고 작은것으로써 기쁨을 느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참으로 소중한것은
어떤 사회적이 신분이나 지위, 소유물이 아니다.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런 어려운 시기를 당했을때 도대체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지니고있는
직위나 돈이나 재능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그것으로써 우리가 어떤일을 하며
어떻게 살고있는가에 따라서 삶의가치가 결정된다.

잡다한 정보와 지식의 소음에서 해방되려면
우선 침묵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침묵의 의미를 알지못하고는
그런 복잡한 얽힘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나 자신이 침묵의 세계에 들어가 봐야한다.

우리는 얼마나 일상적으로
불필요한 말을 많이하는가
의미없는 말을 하루동안 수없이 남발하고있다.

 

 

친구를 만나서 예기할때
유익한 말보다는 하지않아도 될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말은 가능한한 적게 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충분할때는 두마디를 피해야한다.

인류 역사상 사람답게 살아간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침묵과 고독을 사랑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을
우리들 자신마져 소음이 되어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열심히 찾고 있으나
침묵속에 머무는 사람들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말이 많은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어떤일을 하는 사람이든간에
그 내부는 비어있다

 

 

 

법정 스님

 

법정(박재철) 승려, 수필가
생몰 1932년 10월 8일 ~ 2010년 3월 11일
학력 해인사대교과
경력 1997년 대한불교조계종 길상사 스님
1994년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회주
수상 2004년 제2회 대원상 대상

 

 

 

생애
1932년 10월 8일에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목포시에서 지냈다.

목포상업고등학교(현 전남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전남대학교 상대에 진학했다.

그는 당시에 일어난 한국 전쟁을 겪으며 인간에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 그리고 오대산으로 떠나기로 했던 그는 눈길로 인해 차가 막혀 당시

서울 안국동에 있던 효봉 스님을 만나게 된다.

효봉 스님과 대화를 나눈 그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 해에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1959년 3월에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으며,

1959년 4월에는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 스님을 강주로 대교과를 졸업했다.

 


종교간 화합
1997년 12월 14일에 서울 성북동의 길상사

개원법회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자,

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 24일에 명동 성당을 방문하여

특별 강연을 가져 종교간의 화합을 보여 주었다.

 

 

대표 저서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산방한담》
《텅 빈 충만》
《물 소리 바람 소리》
《버리고 떠나기》
《인도 기행》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그물에 걸지 않는 바람처럼》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1932년 10월 8일 =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출생
▲1954년 =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선사를 은사로 입산 출가
▲1956년 7월 15일 = 효봉 선사를 은사로 사미계 수계
▲1959년 3월 15일 =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
▲1959년 4월 15일 =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화상을 강주로 대교과 졸업,

이후 지리산 쌍계사와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
▲1960∼1961년 = '불교사전' 편찬 작업에 동참
▲1967년 동국역경원 편찬부장
▲1972년 첫 저서 '영혼의 모음' 출간
▲1973년 불교신문사 논설위원, 주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 철폐 개헌 서명운동 참여
▲1975년 10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충격, 송광사 불일암으로 돌아감
▲1976년 대표 저서인 '무소유' 출간
▲1984∼1987년 송광사 수련원 원장
▲1985년 경전공부 모임 법사
▲1987∼1990년 보조사상연구원 원장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정진
▲1993년 8월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준비위원회 발족
▲1993년 10월 10일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인 파리 길상사 개원
▲1994년 1월 1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1994년 3월 26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기념 첫 대중법문을

서울, 부산, 대구, 전주 등지에서 하며 지부 발족
▲1995년 김영한(법명 길상화)씨의 대원각 시주를 받아들여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조계종에 등록
▲1997년 1월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 이사장 취임
▲1997년12월14일 대법사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바꾸고 창건 법회
▲1998년 2월 24일 명동성당 축석 100돌 기념 초청 강연
▲2003년 10월 '맑고 향기롭게' 창립 10주년 기념 강연,

파리 길상사 개원 10주년 기념 법문
▲2003년 12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회주에서 스스로 물러남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입적

(서울=연합뉴스)

 

이젠 편안한 쉼을 이루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