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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와 백조의 사랑이야기 (제3화)

사오정버섯 2009. 11. 2. 21:14
사오정의 쉼터

제    목 : 백수와 백조의 사랑이야기 (제3화)

 

31

 

 

----백조-------
 
놈이 500을 원 샷 하는걸 보니 내 학창시절이 기억났다.
지금은 체력이 딸려 안된다.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셨다....

자식이...어제 좀 그렇게 마시지.
나 한잔 마실 동안에 500을 네잔이나 먹더니 화장실에 물을 빼러 갔다.
그 틈을 이용해 집에 전화를 때렸다.
"엄마 나야."
"어~ 왜?"
"엄마는.... 딸이 전화 했는데, 어, 왜가 뭐야. 걱정도 안 돼?"
"어제 은미가 전화해 주더라...너 자고 온다고."
"아유, 알았어. 끊어. 쫌 있다 갈께."

슬펐다.....

 

 


이젠 체념한 듯, 초연한 엄마의 목소리가 날 아프게 했다....ㅜ.ㅜ
근데 놈이 화장실에 갖다 오더니
후~ 하고 한숨을 쉬며 날 똑바로 쳐다봤다.
무슨 약물을 투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여....물어 볼게 있는데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는 집에 가서 먹었어야 하는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다....ㅜ.ㅜ
"제가 뭐 할 거 같애요?"
".........??"
"제가 사실 놀거든요. 회사 짤린지 6개 월 됐어요."
"예....."
"근데 제 얘길 안하니까....그 뭐랄까....웬지 답답하더라고요.
뭐,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더라구요.
누근가를 만나서 이렇게 짧지 않은 시간 대화를 하는데.....
괜히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도 같고요.
그냥 저에 대해서 솔직하고 싶네요."
"아......예."

솔직히 의외였다.

 

 

 


은미 그 기집애도 그런 얘길 안 해줘서.
하긴 물어볼 틈도 없었지만........
그래도 솔직한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자식, 근데 벌벌 떨면서 얘길하냐...^^
무슨 큰 죄 지은 것 처럼.
내 얘길 할 까 말 까.....?

그래 나도 솔직해 지자.
"저겨....짤리신지 6개월 됐다구요?"
"예?...아 예. 그 뭐..곧 일 들어가야죠."
요놈아...^^ 직장 잡기가 그렇게 쉽냐...
그럼 내가 2년 넘게 쉬고 있겠냐....

 

 


"사실 전..... 짤린지 2년 넘었어요."
미쳤나 보다...이런 말을 이렇게 쉽게....
"예?!!!"
아~ 그자식 사람 민망하게.....
"사실 저도 백수 아니 백조예요."
"......................"
이 자식이 왜 이러나.......
"푸하하하하~~~ !!!!"
"아우, 뭐가 그렇게 웃겨요...."
"악수 한 번 합시다! 아~ 사람이,
진작 얘기하지...암튼 반갑습다!!"

웃긴 놈이 였다.....뭐가 그리 좋다구.
암튼 홀가분한 맘으로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사람은 거짓말 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놈이 백수라는 걸 털어 놓으니까 엄청 홀가분 하긴 했나보다.

술을 마구 들이 부었다....그러더니.....그냥 잠들어 버렸다.
마치 삶의 모든 긴장을 일순간에 놓아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좀 안 돼 보였다.....하긴 남 걱정 할 때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놈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걱정이었다.

간신히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힘이 딸려서 잠시 계단에 앉혔다.
웬수가 내 어깨에 기대어 다시 잠이 들었다.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은데 피곤에 지친 모습이었다.

잠시 그대로 있었다.
가볍게 코를 골며 자는데
깨우기가 미안 할 정도로 곤히 잠들어 버렸다.
왠지 모를 측은함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낄낄거림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쩍 팔려따.....

 

 

 

 

놈의 핸펀을 꺼내서 집전화번호를 찾아 봤는데
아무것도 입력된 것이 없었다.
고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갑을 꺼내 뒤졌다.
복권이 나왔다. 눈물났다....
꿈도 야무지게 40억 당첨금 짜리였다.

근데 내가 막 지갑을 뒤지니까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무슨 빽치기 보듯이 했다.
간신히 수첩에서 집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여동생인거 같았다.
누구냐고 해서 얼떨결에 여자친구 라고 했다.
그럴리가 없다는 듯 의심스러워 했다.

아무튼 집이 대림동 쪽 이라는 걸 확인하고,
여동생 보고 나와 있으라 그러고 택시에 태워 보냈다.

 

 


집에 들어와 생각하니, 집까지 바래다 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핸드폰에 찍힌 놈의 집 전화번호가 보였다.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머니이신 듯한 분이 받았다.
여보세요~~ 하시는데, 수화기 저 너머에서 "아우~ 오빠 정신 좀 차려~~"
하는 여동생의 괴성이 들려왔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전화를 내려 놓았다.
길고도 험한 1박 2일 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