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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영동군 미촌마을
화사한 복사꽃이 풍요로움을 더해주는 충북 영동군 학산면 봉림리 미촌마을은 요즈음 백로와 왜가리의 군무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60여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온 500~600여마리의 백로와 왜가리 떼는 마을 사람들에게 기쁜 선물을 주는 영물로 특히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마을에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것은 왜가리다. 겨울 추위가 물러가는 2월 말이 되면 왜가리는 어김없이 따뜻한 남쪽 나라의 봄소식을 안고 마을 뒷산을 찾는다. 왜가리가 돌아온 뒤에야 마을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왜냐하면 왜가리와 백로가 많이 날아오는 해는 반드시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백로는 왜가리보다 약 한 달 늦게 찾아온다. 덩치는 왜가리보다 작지만 꾀가 많다고 한다. 일찍 온 왜가리가 번식을 위해 지어놓은 집을 약탈하는가 하면 자신보다 몸집이 큰 왜가리를 쫓아내는 것을 보면 힘도 센 모양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왜가리와 백로는 같은 식구나 다름없다.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친구가 되기도 하고 늘 같이 생활하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등이 울창한 마을 뒷산은 멀리서 보기에 마치 하얀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초록으로 물든 뒷산 숲 속을 훨훨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목을 S자 모양으로 하고 다리를 쭉 뻗은 채 커다란 날갯짓을 하는 것을 보면 우아함을 넘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것 같았다. 번식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백로와 왜가리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했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좀더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하고 싶은 충동을 어찌할 수 없었다. 600㎜ 초망원렌즈를 들고 경사가 심한 산을 되도록 멀리 돌아 높은 곳으로 올랐다. 그들의 단란한 시간을 잠시라도 빼앗고 싶지 않은 최소한의 배려라고나 할까. 망원렌즈를 통해 바라본 그들의 둥지는 생명이 어떻게 잉태되고 태어나는가를 생생하고도 고귀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행여 다칠세라 어린 새끼를 진한 모성으로 돌보고 있는 왜가리를 보니 그보다 못한 인간들의 자화상에 부끄럽기까지 했다. 알맞은 온도에서의 부화를 위해 긴 다리로 조심조심 알을 굴리는 백로는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숨을 멈추게 했다. 둥지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 달랐다. 백로는 이제 한창 알을 품고 있는 반면 일찍 부화한 새끼 왜가리들은 어미가 물고 온 먹이를 받아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빈 둥지도 저녁이 되면 먹이를 찾아 나섰던 어미들이 일제히 돌아와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다. 갓 태어난 새끼들은 어서 빨리 어미가 돌아오길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지금은 백로와 왜가리들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때는 위기의 순간도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보릿고개를 넘나들던 60~70년대까지만 해도 야밤을 틈타 외지인들이 몰래 찾아와 마구잡이로 그들을 공격했다. 결핵과 뇌졸중 예방에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랬다니 한편으론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백로와 왜가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특별히 도움을 주는 것은 없다. 오히려 그들의 배설물 등으로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빨래도 마음대로 널지 못할뿐더러 장독도 열어 놓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돌아오는 그들이 이젠 조금이라도 늦을라치면 조바심이 나며 기다려진다고 했다. 이 마을 성길식(53) 이장은 “백로와 왜가리는 우리 마을의 보배입니다. 혹여 마을을 떠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자식처럼 보호하고 있습니다”라며, 주민 모두가 생태지킴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대부분 노인들만 남아있는 미촌마을 사람들은 백로와 왜가리의 집단서식지인 이곳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출처]문화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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