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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탄자니아 마사이족 [Masai]

사오정버섯 2007. 7. 20. 17:11

                                      아프리카 탄자니아 마사이족

 

 

사진작가의 눈에 비친 검은 대륙 아프리카!

 마사이족, ‘마사이’의 어원은 ‘나’를 뜻하는 ‘마’에서 비롯된다. ‘마사이’는 “나 같은 사람”이라는 뜻. 그만큼 그들은 나와 다른 사람. 나의 문화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만큼 '세상사람이 모두 나 같았으면'을 희망한다. 그래서 같은 아프리카 사람이라 해도 다른 부족끼리는 교류나 왕래가 거의 없다. 그런 그들에게 안영상은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로뮤냑 까미오르(olomunak kamiore)가 그의 이름이다.

아프리카 사람들  역시, ‘소나 남자는 한양으로 보내는’ 우리나라의 옛 말처럼 장남을 도심으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한다. 안 작가는 나이로비에서 마사이족 전통 공연을 하고 있던 오지 출신의 이들과 교류했다.

아프리카 현지인으로서 전혀 불편함이나 거리낌이 없는 안 작가에게 이들은 마음을 쉽게 열었다.아마도 안작가에게서 '나같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한 번은 젊은 친구의 아버지가 그를 직접 초대하러 나이로비 시내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집을 찾아 가는 길에야 알았다. 버스로도 13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 그 거리를  단지 ‘초대’의 말을 전하기 위해 찾아 온 것이었다. 그것이 그네들의 방식이었다. “우리는 그 거리를 ‘멀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닿을때까지 걷는 거예요. 불편하다는 생각은 없어요. 단지 예의고, 문화 풍습을 따를 뿐이죠.”


부뚜막을 가르치다.

 

유목 생활을 하며 정처없이 떠돌던 그들. 최근 근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갈 곳을 잃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마사이족은 유목민이 아니다. 일정한 구역에서 정착 생활을 하는 부족으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우리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원시적일 수 밖에 없다. 안 작가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단지 가족이 되다 보니, 불편한 부분을 보완 하고 싶을 뿐이었다.

 나무를 구해다 집안 흙바닥에 불을 피워 밥을 짓는 비효율적인 방식에는 부뚜막과 아궁이를 그려보여 연료 효율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옥수수나 감자를 가루로 내기 위해서 여자들이 무거운 자루를 메고 땡볕 사막 길을 수십 킬로미터씩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우리나라의 ‘맷돌’을 가르쳐 주었다. 선교사들이 파준 깊은 지하수와 수중 모터가 전력이 없어 그냥 방치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우물을 파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걸 기독교의 폐해라고 생각해요. 자기들의 좁은 시야로 보는 신앙, 그 종교의 눈으로만 모든 문화를 이해하려고 한단 말이죠.”

 안 작가는 6백명의 교민이 있는 나이로비에 4백50명의 선교사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 중 현지인처럼 사는 선교사는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선교사라는 것은 교세 확장입니다. 그들 생각대로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합니다. 기독교의 정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죠.선교사들이 아니더라도 거기에는 순수한 의미에서 종교적 삶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데 말예요”

 그는 “한국에서 교인들이 온다고 하면 며칠동안 내내 설사약을 먹고, 살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는 한 한국인 선교사의 웃지 못 할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 “우리 선교사님 고생이 많으시다”며 있는 돈, 없는 돈 다 주고 간다는 것.

 김치도, 쌀도 없는 곳에서 오래 생활했는데도, 안 작가의 체중은 변함이 없었다. 한국 음식을 찾지도 않았고, 한국의 풍습을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호텔에 가서 관광객의 밥을 먹을 돈으로 네 다섯명의 현지인 식사를 그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는 그 편을 택했다.

 마사이족에게는 시간 개념도, ‘힘들다’, ‘아프다’는 단어도 없다. 감기나 병이 걸리면 그 현상 자체로 당연하다. “13시간씩 걸어도 ‘걷는다’는 현상만 있지, 힘들고 괴롭다는 느낌은 없어요.”

 예쁘고, 못생기고의 기준, 건강하고 약하고의 개념이 없는 그들. 비교대상이 없는 그들의 행복지수는 우리보다 높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항상 비교하잖아요. 못생기면 못생긴 거지, 왜 탤런트랑 자꾸 비교해서 우리 삶을 비참하게 만드느냐 이거예요.섹시하다는 것은 곧 그들의 성을 파는것에 다름아닌 것인데 말이죠.”

 집안의 어른인 가장은 그에게 초대의 말을 전하기 위해 13시간의 거리를 달려왔고, 가장의 첫째 부인은 특별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1시간을 걸어 아들의 집으로 건너 왔다. 끓인 쇼트닝과 그들의 주식인 튀긴 밀가루반죽,찐 옥수수 가루. 그리고 그들의 재산목록 1호인 염소를 잡았다. 가장 ‘인간적’이고 소중한 진수성찬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기준으로 ‘휴머니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배고프고 추워도, 사람들은 수 만 년을 그 땅에서 살아 왔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거구요. 진짜 필요한 것은 밀가루 몇 포대가 아닙니다.

 그는 “김혜자씨가 아프리카 난민들이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복지를 위해 힘을 쓰는 것, 그것 또한 자기의 시선일 뿐”이라며 “밀가루가 떨어지는 순간, 불행하지 않던 사람도 배고픔과 불행을 느끼게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자의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사랑에 빠질까 두려워서다. “대상을 사랑해서 동화되지 못하면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사진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인거죠.”

 그래서 그의 아프리카 사진은 놀랍거나 신기하지도, 우월적이거나 기교적이지도 않다. 그의 작품 중, ‘굶어 죽어가는 아이’의 사진이 있다. 바로 그 옆에서는 도심에서 교회의 집회가 열리고 있지만, 아무도 그 아이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 몇 시간 힘이 없어 시체처럼 쓰러져 있던 아이는 또 비실비실 일어나서 어디론가 사라져 간다. 그의 사진에는 ‘안타까움’이나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없다. 현지인처럼 현상 그대로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꾸리며 여생을 보낼 소망을 가지고 있다. 자영농들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한국의 옛 농사법을 가르치고 굶어 죽는 사람이 아프리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도록 만드는 것. 단순히 밀가루 포대 전달과 약품 지원이 아니라, 그들 손으로의 발전을 일구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의식의 진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진정한 삶의 의미가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가다 2


그들만의 성인식, ‘할례’


 안 작가는 마사이족의 할례에 관한 사진을 모아, ‘할례 굿’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는 “마사이족의 할례 의식의 의미는 우리네 옛 굿과 비슷하다”며, “지금은 굿이 미신이나 기원의 의미가 강해졌지만, 원래 한국의 굿은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한 데 묶는 ‘잔치’였다”고 설명했다. 그가 참여했던 마사이 족의 할례 의식은 5~6일 동안 진행된다. 안 작가가 받아들여 졌던 가족의 할례 ‘잔치’에는 1백5십명 정도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소를 잡아 주기도 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아이들의 성인식을 축하해 준다.

 할례의식에 우선하는 것이 ‘정화’절차. 할례를 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우유를 머리에 부어 머리를 깨긋이 깎는다. 가족이 함께 순결한 상태로 의식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다.

 할례를 받는 14~15살의 아이들은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의식이 준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로 모여든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서부터 무의식의 상태가 되어 쓰러진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은 쓰러진 아이를 들어 할례 장소까지 직접 들어서 옮긴다.

 

 

 

 

 

드라이클리닝 용액으로 소독


 우리의 무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주술사(위치닥터) 또한 있다. 주술사가 의식을 주관할 뿐만 아니라, 의학적인 시술 또한 맡는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기술을 갖춘것은 아니다. 잘 들지 않는 칼을 그냥 ‘대충’갈아, 스스로 마취에 빠져 있는 ‘반수면’상태의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한다(완벽한 릴렉스,이완의 상태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이것  또한 마사이족의 정신적 전통이며 할례의식을 통하여 전수된다.)

 안 작가는 그들만의 소독(?)방식 또한 갖추었더라고 전했다. 알코올대신 보라색 드라이클리닝 용액을 붓더라는 것. 소독이 될 리 도 만무하고, 알코올보다 몇 배는 더 쓰라릴 텐데도, 아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들에게는 무섭다, 힘들다, 두렵다는 단어 자체가 없어요. 현상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거죠.” 달이 뜨지 않는 밤에도 몇 십리씩 산길을 걸어간다. 말 그대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밤이면 어두운 것이 당연하고, 산길을 걷는 것을 피할 이유가 없다.

 그는 “할례에 관한 보고를 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일부 사진작가들도 ‘할례’하면 고통이나 비인간적인 해석을 주제로 한다”며 그러나 그가 본 할례는 “어떤 것 보다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아프리카에서 알코올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다. 전문적인 시술을 행할 수도 없고, 할례 같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시술이 아직 이루어지는 데도, 알코올을 파는 곳을 찾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혹시라도 주민들이 잘못 마시고 죽을까봐 파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것, 그는 “세균에 감염되서, 후유증이 생겨서 죽는 일은 발생할 수가 있다”고 하면서도, “의식 도중에 죽는 일은 없었다”고 전했다.

 할례의식을 치른 아이들은 올리브 나무가지로 만든 임시 침대에 2주 동안 꼼짝 않고 누워 지낸다. 그 후에 그들은 남성, 또는 여성으로 분화된다. 그 이전에 그들에게는 남녀의 개념이 전혀 없다고 했다. 아기들이 처음 태어날 때도 아들 또는 딸이라 좋아하고, 걱정하는 일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고 했다. 할례 이후에야 집단내에서 남자와 여자로서의 몫이나 책임감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미(美)에 대한 개념이 없고, 예쁘다 못 생겼다 기준도 없다. 일부 아프리카 부족은 목이 길어야 미인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어 부족 여성들이 긴 스프링을 목에 달고 살기도 하지만, 마사이족에게는 그런 것조차 없다고 했다.거기에는 '인간'만이 있었다.

 

 

 

 

할례 이후, 당당한 사회 구성원


 할례를 치러 내고 비로소 ‘남자’가 된 아이들은 전사의 이름을 부여 받는다. 이제야 사회구성원의 몫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숲으로 들어가 동년배 그룹(age group)끼리 1년간을 동거동락한다. 말하자면 군대의 방식이다. 그들은 부족 간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나서서 전투에 참여하게 되며 어느 마을에나 들어가 고기나 우유, 혼자 사는 여자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여자는 빨래와 물의 공급 전체적인 식량을 관리하는데 투입되고, 남자는 보름에서 한 달 씩 사냥이나 가축을 돌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그 때마다 열악한 자연환경과 질병, 독충,맹수들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남자들은 사망률이 높다. 때로 부족간의 전쟁이 일어나거나 가축을 팔러 몇 달 간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안 작가는 “위험한 일을 겪을 경우가 많다 보니 남성의 인구가 적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생겨난 제도가 일부다처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 할례 또한 이런 문화를 지탱하기 위한 필요수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필요없는 살을 잘라내는 남자의 할례와 달리, 여자의 성기 일부분을 도려내는 여성할례는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 안 작가 또한, “너무 비인간적인 수술”이라며 항의해 본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미 아프리카 도심에서는 할례의 문화는 많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 그러나 이런 안 작가의 항의에 대해 “우리 또한 전통이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마사이족의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마사이족에게 ‘성(性)은 동물적인 개념과 같다. “단순한 행위일 뿐이죠. 인위적이고 과대 포장된 성 행위는 없어요. 남자는 씨를 뿌리는 거고, 여자는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리고 동물처럼,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시기가 행위의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에 강간의 의미는 거의 인식하지 못해요.여성성기의 민감한 부분(클리톨리스)을 일부 절제함으로써 성적흥분이나 유혹으로부터 보호함과 아울러 공동체의 질서가 문란한 섹스로 어지럽혀 지는 것을 방지하자는 그들 나름대로의 전통인 셈이죠”

 

 

 

 

그네들의 방식으로 둬라


 그래서 남자들이 마을을 떠나 있는 동안 일어날 수 있는 ‘강간’과도 같은 위험에 자신들의 여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 여성 할례에 대해 ‘성적인 무감각을 유도’한다는 것에 안 작가 또한 동의했다. 그 역시 “남자들이 마을을 떠나 있는 동안, 다른 부족의 남자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위한 장치도 된다는 것. 그러나 ‘비인간적’이라던가, ‘남녀 불평등’이라는 일부의 시선에는 반대한다. 그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예요, 비인간적이니, 미개하니 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을 강요하는 것 밖에 되지 않아요.”

 그리고 그는 “이들도 분명 문명화가 진행되면 바뀔 것”이라며, 외부 문명이 미리 침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네들은 그네들 방식으로 살게 둬라, 그것이 그가 말하고 싶은 요지라고 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의 문화나 전통, 사회 시스템 전체를 모두 책임 질 수 있습니까?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일부’만 괜히 간섭함으로써 그 사회 전체를 깨트린다는 거죠.”

 그는 또 “거기에 제일 앞장 서는 것이 기독교”라며, “일부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선교사들”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하러 들어와서, 제례의식 전체를 뒤엎으려고 했던 예전 선교사들도 마찬가지예요. 수 세기 이상을 거쳐 기능해 온 우리의 기본적인 예(禮)는 이해하고 왔었어야 되는 것 아닐까요? �기는 천주교인들을 숨겨 주고 보살펴줬던 천진암의 승려들은 간 곳 없고 그 곳을 자신들 만의 성지로 만든 것이 누구입니까? 이런 일이 아프리카에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담장도 없고, 경찰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강간의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방식. 적어도 안 작가가 보기에, “미개하지도 우둔하지도 않은 그들 나름의 지혜”라고 말했다.

 ‘까뮈르’가족이 되어 마사이족으로 살았던 수 개월. 오늘도 그는 뉴에이지 음악이 흐르는 그의 충무로 작업실에서, 아프리카 오지에서 보낼  여생과 나같은 사람들을 꿈꾸고 있다.

 

 

 

        

                                                          (olomunak)

 

 

 

출처 : (olomunak)의 자료입니다

 

 

마사이족 [Masai]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 경계의 가시나무가 많은 초원에 거주하는 주민.

 
나일로트계(系) 흑인종이다. 평균 173 cm의 큰 키에 고수머리, 단정한 용모에 암갈색 피부가 특징이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가죽으로 된 케이프를 걸치고, 여자는 케이프나 스커트를 착용하며, 머리는 붉은 흙으로 굳힌 이상한 모양의 헤어 스타일로 꾸민다. 주거는 반원형의 낮고 작은 진흙집으로, 우기(雨期)에는 모피(毛皮)를 지붕에 덮는다. 남자들을 중심으로 몇 가족이 작은 마을을 이루어 100∼200마리의 소 외에도 염소 ·양 ·당나귀 등을 사육한다.

농경은 하지 않으며, 소의 생혈(生血) ·젖 ·고기를 식용한다. 소는 그들의 독점물이라는 부족의 신화(神話)에 따라 부당하게 소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약탈하여 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 토테미즘을 신앙하고, 씨족외혼(氏族外婚)을 행하며, 사회조직은 남자를 중심으로 한 연령집단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는 15세 전후에 할례(割禮)를 받은 다음 연령집단에 가입하여 전사(戰士)가 된다. 전사는 소의 약탈과 다른 종족의 습격을 방어하는 것이 임무이며, 타조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고 긴 창과 방패로 적과 용감하게 싸운다. 전사는 미혼여성에 대한 성적 자유, 우유와 쇠고기 등을 어느 가정에서나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마사이족 소년

 

 

 

 

 

마사이족 전사들

남성들은 막대기를 들고 차례로 돌아가며 하늘 높이 뛰면서 춤을 추고, 여자들은 무릎만 살짝 구부린 채 춤과 노래를 불렀다. 남자들이 껑충껑충 하늘로 뛰는 춤을 추는 데에는 용맹을 과시하면서 하늘과 가까워지려는 염원이 깃들어 있다. 남성미를 과시하여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몸짓이라고도 한다.

 

 

 

 

아래는 네이버 카페

블루넷 쉼터
cafe.naver.com/cboo3907  자료입니다

 

 

주택 : 가는 나무로 벽과 지붕을 얽어놓고 쇠똥과 진흙으로 발라 굳혔다.

 

 

마사이 마을의 집들은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마을 둘레에 쳐진 가시가 달린 나무 울타리는 다른 부족이나 야생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다. 집은 쇠똥과 진흙을 섞어서 만든다.

집 지을 때 쇠똥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소를 기르다 보니 쇠똥을 구하기 쉬운데다 쇠똥에는 섬유질과 기름기가 있어 우기에 비바람에 잘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서늘해지는 때에는 건축 재료로 썼던 쇠똥을 뜯어내 불을 피우는 연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쇠똥은 이처럼 마사이족에게는 다목적 재료다.
 

 

 

실내부엌이다. 재무덤에 불씨가 있다.

 

 

 

침실: 땅에서 높여놓은 침실 양가죽을 깔았다.

 

 

 

 

학교: 나무로 성글게 엮어 벽을 만들고 지붕은 풀로 덮었다.

 

 

교실 : 맨 바닥에 앉어 공부를 한다. 우리가 준 연필을 교사가 나누어줌

 

마사이족 인사법


케냐의 용맹한 부족인 마사이족은 만나면 서로 침을 뱉음으로써 인사한다고 한다.

원래 인사라는 것이 상대를 해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인데, 마사이족의 인사는 상대방에게 '물의 축복'을 베풀어 준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또한 마사이족은 얼굴에 파리가 앉아도 이를 손으로 내쫓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파리가 물이 그리워 수분이 있는 인간의 얼굴로 찾아 왔는데 내쫓는 것은 물에 대한 경외심이 부족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