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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권력 정점에 올랐던 희대의 살인마

사오정버섯 2007. 7. 17. 12:19

                       구소련의 권력 정점에 올랐던 희대의 살인마

 

                                   

 

라브렌티 베리아 - 1899년 3월 29일 출생, 1953년 12월 23일 사망

무정하고 냉혹한, 역사상 최악의 악인 중 하나였던 그의 외모는 생각보다 평범하다. 하지만 그가 소련 권력의 정점에 서서 했던 행위들을 생각하면 그 속에 악마보다 더한 사악한 욕망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리아는 젊은 시절 변변한 친구조차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내면에 숨겨진 욕망이 은연중에 드러났으리라. 하지만 그에게도 매우 절친한 친구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스탈린이었다.

베리아와 스탈린은 1915년 처음 만나게 되는데 당시 스탈린은 러시아에서 혁명 사상을 전파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탈출해 쫓기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만난 둘은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이 세워지기까지 함께 한다.

 

 

           

 

                                        베리아의 유일한 친구 스탈린의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베리아는 그 후 KGB에 들어가 권력을 키워나갔고, 베리아의 정보적 지원을 받은 스탈린은 역시 서서히 소련을 장악해나가고 있었다. 베리아의 정보를 토대로 스탈린은 자신의 정치적 라이벌을 제거했고, 그것이 용이하지 않을 경우에는 베리아가 나서 정적들을 '실종'시키는데 일조했다.

그가 KGB에서 이룬 업적(?)은 실로 말도 못할만큼 대단한 것이였다. 일련의 생산라인처럼 피의자를 잡아들이면 24시간 고문과 구타로 어떤 말이든, 설령 평생 해본적도 들어본적도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술술 실토하게 만들었다. 가학주의자였던 베리아는 이런 고문 과정에 자주 참석하여 직접 구타와 가학행위를 즐겼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측근들에게 강제적으로 동참하게 하여 자신의 치부를 공유하여 절대 배신할 수 없게 만들었다.

 

                                       

                                       최고의 권력에 가까웠던 시기 베리아를 찬양하는 포스터

 

또한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할 필요가 있는 인물들에게는 일명 '죽음의 집'이라 불리는 곳으로 초대하였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우연히' 치명적인 독극물이 묻어있는 지팡이에 긁혀 죽어가야만 했다.


베리아의 찬란한 업적(?)

라브렌티 베리아의 찬란한 업적 가운데는 유대인 학살도 들어가 있다. 특이하게도 스탈린 역시 지독한 반유대주의자였는데, 그를 대신하여 소련 관료 가운데 모든 유대인들을 숙청하였다. 또한 스탈린과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물을 가려내기 위해 소련 내의 모든 우편물을 감시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반체제인사들을 모조리 강제수용소로 집어넣어 몇년동안 강제노역을 시켰다. 그렇게 강제 수용된 사람이 1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또한 스탈린에게서 핵미사일을 만들어내라는 과업을 전해받은 베리아는 자기식으로 그 일을 해결했다. 그 기간은 서방측의 정보기관에서 예상한 시간의 1/4도 안되는 기간만에 이루어낸 것이었다. 우선 독일의 과학자들을 납치하듯 데려와 아낌없는 보상과 함께 소련식 V2 로켓을 만들게 하였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독일의 과학자들은 만일 이 일이 실패할 시에는 베리아에게 어떤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일례로 로켓 실험도중 사고로 100여명의 소련측 엔지니어와 인부들이 죽자 베리아는 '이 쓰레기들 빨리 치우고 작업 진행해'라고 소리쳤을 정도이다.


악행

사실 그가 저지른 일들은 대부분 악행이라고 볼 수 있다.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정도만이 유일한 악행이 아니랄까?

구타와 살인, 가학행위 뿐만 아니라 소련 전역에서 10여세 무렵의 여아들을 납치하여 강간 살해했다고 전해지며, 심지어는 퇴근길 길가를 걸어가는 소녀를 차로 납치, 강간하고 길가에 버렸다고 하니 한마디로 강간살인마가 권력을 쥐게 되면 어떤 꼴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KGB의 악명이 높은 것도 그가 초기에 이룩해놓은 수많은 고문기술과 절차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특별히 그가 키운 암살부대 SMERSH라는 조직은 스파이나 자신을 배신한 이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는 특수부대로 소련 군부 내에서도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서방 세계에서도 악명높았던 베리아
                                                 1953년 7월 표지 베리아 "인간의 적"

 

그럼 스탈린은 베리아의 이런 악행을 몰랐을까? 알았지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수단이 되는 그를 묵인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최후

스탈린의 죽음 이후 베리아는 당연히 자신이 스탈린의 뒤를 이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소련 군부는 베리아를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있었던 베리아는 그 사실에 대해서 무지했다고 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스탈린의 사후 승계 문제로 회의석장에 참석한 베리아는 깜짝 놀란다. 그곳에서 소련 군부를 대표하는 고위급 장교들이 모두 모여있었고, 그곳에서 '소련 인민에 대한 범죄행위' 때문에 그가 즉결재판에 회부되었다는 것을 통고받고 얼떨결에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순간 바로 옆에 있던 장교가 총으로 그를 사살해버렸다. 그의 악행에 비교해보면 너무나 깔끔한 죽음이었다고 생각한다.



기타 사진

 

                      

 

                                                         1939년 스탈린과 베리아

                       

                                                   베리아와 스탈린의 딸 Svetl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