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폭폭… 추전역 입니다”
[조선일보 이혁재기자, 인턴기자]
태백역을 출발한 태백선 열차는 끝없는 비탈을 오르며 5개의 터널을 힘겹게 지난다. 이윽고 산과 산 사이 분지(盆地) 같은 곳에서 나타나는 작은 역. 추전(杻田)역이다. 해발 855m. 63빌딩(264m)을 3개 쌓은 뒤 다시 63m를 올려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역이다. 추전역 앞에는 다시 길이 5㎞가 넘는 정암터널이 있고, 여기를 지나 내려가면 고한과 사북으로 이어진다. 오지(奧地) 중의 오지 역이다. 은대봉(1442m)과 매봉산(1308m) 같은 태백 준봉들마저 만만하게 눈에 들어온다. 매봉산 능선에는 강풍에 풍력발전기들이 허겁지겁 돌아간다. 추전역은 날씨가 많이 풀렸다는 28일에도 아침 기온이 0도 근처에 머물렀다. 주변 곳곳이 아직도 눈에 덮여 있다.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 추전역. 싸리밭골 언덕에 있어 추전(杻田)으로 명명됐다. 1973년 태백선 개통 때 만들어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한 달 10만t의 무연탄이 이곳을 거쳐 수송됐다. ‘동네 강아지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 정도로 활기 넘쳤던 곳이다.
하지만 영화(榮華)는 사라졌다. 한때 역 부근에 탄광 노동자 가족 30가구가 살았다지만, 지금은 없다. 50개에 이르던 광업소도 이제는 단 3개가 운영될 뿐이다. 무연탄 수송량도 전성기의 6분의 1(월 1만5000t) 정도. 추전이 속한 태백시 인구 역시 80년대 초 12만6000명에서 절반 수준으로 격감했다.
추전역 최인주(47) 부역장은 “열차는 하루 45편이 지나가지만 정차하는 것은 딱 두 개뿐”이라고 했다. 주말이면 관광객 수십 명이 찾지만 열차로 오는 이는 거의 없다. 여객열차는 이른 아침과 저녁에 한 차례씩 설 뿐이어서 자가용이 편한 게 사실이다. 그는 “이따금 역에 손님이 내리면 굉장히 반갑다”며 “괜히 말을 붙이기도 하고, 사무실로 모셔 차 한 잔 대접하기도 한다”고 했다. 부역장은 연탄난로에 고구마를 굽고 있었다.
탄광 몰락에 경기는 폭락했지만, 추위와 눈을 이용한 새 수입원이 개발됐다. 6년 전부터 ‘환상선 눈꽃 순환열차’가 운행되면서 겨울이면 2만명 가량이 추전을 지나가며 고산의 이국적 설경을 즐긴다. 눈꽃열차의 목적지도, 주요 경유지도 아니지만 이만 해도 큰 변화란다.
추전역은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보니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9개월은 난로없이 지낼 수 없다. 겨울이면 30~40㎝씩 눈이 오기 일쑤이고, 많으면 70㎝나 쌓이기도 한다. 여기서 폭설은 일상이다. 9명 역무원이 총동원돼 눈을 치우다 보면 먹이 찾아 내려온 고라니와 만나기도 한다.
역 대합실에는 작은 미술관이 있고, 작가들이 기증한 빛바랜 사진 몇 점이 전시돼 있다. 낡은 방명록도 보인다. ‘절망의 끝에서 헤매다가 추전역에서 새 희망을 찾아갑니다’ ‘눈을 멀게 하는 한바탕 설경과 어릴 적 바라보던 초롱불처럼 아득한 역무실. 그 살겨운 사람들의 숨결이 함께하는 곳, 추전역’. 이런 글들이 남겨졌다.
역무원들은 말 그대로 ‘호형호제’하며 가족같이 산다. 작년에는 관광객을 위해 힘을 합쳐 눈썰매도 만들었다. 막내 역무원 최중성(25)씨는 “철도공사에 들어와 처음 부임해 왔을 땐 마을도 사람도 없어 막막했다”며 “하지만 이제는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동기들이 오히려 부러워한다”고 했다.
(추전역=이혁재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elvis.chosun.com])
(염창선 인턴기자·한림대 언론학과 4년 changsun@hally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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