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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줄갱이와 중고기의 '조개 사랑'

사오정버섯 2007. 2. 2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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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자연이야기] 납줄갱이와 중고기의 '조개 사랑'

큰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룰 수 없다. 숲에는 장대 나무는 물론이고 어린 나무, 잡풀, 고사리에다 버섯까지도 어우러져 산다. 바닥 흙에는 지렁이, 지네에다 눈에 안 보이는 곰팡이, 토양세균이 그득하다. ‘독불 장군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생물계는 따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없다. 서로 더불어 한 코, 한 땀 얽혀 산다. 말 그대로 상생(相生)한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我)라는 자리에서 보면 누구나 다 ‘우주의 중심’에 서 있다. 다 제 잘난 맛으로 사는 게지.

본론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생물들이 서로 도우며 공생(共生, symbiosis)을 하고 있는지 수많은 예 중 하나를 보자. 강에는 물고기와 조개(껍데기가 두 장인 조개)가 살고 있다. 그런데 물고기 중에는 유독 조개 없이 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납줄갱이 무리(12종)와 중고기 무리(2종)가 그들이다. 이 물고기들은 반드시 조가비 안에다 알을 낳기 때문이다. 조개는 물이 들어가는 입수관(入水管)과 물이 나오는 출수관(出水管)이라는 두 개의 구멍(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 물고기가 산란기가 되면 알을 낳는 관, 산란관(産卵管)이 길어지고 그 끝을 조개의 출수관에 집어넣어 산란한다.

알을 낳자마자 수컷이 달려들어 정자를 뿌려 조개껍데기 안에서 수정이 된다. 수정란은 딱딱한 조개 속에서 발생을 하여 한 달 후에는 어린 물고기(치어) 된다. 기막힌 작전이다! 조개 몸 속의 알은 다른 물고기에 잡혀 먹히지 않고 고스란히 다 커서 나온다. 얼마나 교묘한 적응(진화)을 했는지 모를 일이다. 강물에는 다행히도 조개를 통째로 잡아 삼키는 동물은 없지 않은가. 물고기는 인큐베이터(부란기) 속에서 자라 나온 미숙아의 모습을 빼닮았다. 그래서 이 물고기는 돌 밑이나 수초에 산란하는 물고기에 비해서 적은 수의 알을 낳는다. 낳은 알은 죄다 새끼가 되어 나오니 많은 알을 낳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적게 출산하듯이.

‘산란관’이란 말이 좀 어렵게 들릴지 모른다. ‘알을 낳는 관’이란 말로 귀뚜라미나 메뚜기의 암놈도 산란관을 흙에 꽂아 넣고, 말벌도 곤충의 애벌레 몸에 그것을 찔러 산란한다. 이들 어류는 산란기가 되면 가늘고 긴 산란관이 항문 근방에서 자라 나온다. 물론 산란 후엔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이때가 되면 수컷들은 온몸이 예쁜 색, 혼인색(婚姻色)을 띤다. 이렇게 신호를 보내어 상대를 유인한다.

조개 없으면 물고기 못 살아

아무튼 세상에 공짜가 있던가. 생물들은 반드시 갚음을 한다. 앙갚음이 아닌 보은, 은혜를 되돌려 준다는 말이다. 얻은 것이 있으면 그만큼 준다. 이것이 상생이요, 공생이다. 공생이란 다 알듯이 서로 이익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공생에도 두 쪽 모두 이득을 얻는 상리공생, 한 쪽만 득이 되는 편리공생이 있다. 한편 한 쪽은 득이 있고 다른 편은 손해를 볼 때 이것이 기생(寄生)이다. 그러나 넓고, 크게, 전체를 둘러보면 모두가 공생이고 상생이다. 기생도 공생이란 뜻이다. 못난이 덕에 잘난 놈도 있는 것.

어쨌거나 공짜는 없다. 그래서 이제는 조개가 물고기에게 신세를 진다. 아니, 조개가 본전을 뽑을 차례다. 물고기와 조개의 산란 시기는 우연찮게 일치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여기 말하는 조개 또한 물고기 없이 살지 못한다. 조개가 물고기에 알을 붙이는 무리는 말조개, 펄조개 등 10여종이나 된다.

물고기가 조개에 알을 낳는 순간 조개도 알을 출수관을 통해서 내뿜어버린다. 여기서 조개의 ‘알’이라고 했지만 실은 이미 발생이 진행된 ‘유패(幼貝)’란 말이 맞다. 조개의 유생은 이미 두 장의 어린 껍데기가 생겼고, 껍데기의 한 쪽 끝에 예리한 갈고리가 있어서 그것으로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비늘을 쿡 찍어 찰싹 붙는다.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고기의 살 속에다 뿌리(허근)를 박아서 피를 빨아먹는다. 조개의 유생도 거의 한 달간 물고기에 붙어 자라나 강바닥에 떨어진다.

이러니 강물에 조개가 없어지면 물고기가 사라지고 물고기가 죽어버리면 조개도 따라죽고 만다. 이것이 같이 살아가는 숙명적인 상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okkwon@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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