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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조선 땅 고문서 공개

사오정버섯 2007. 2. 19. 15:29

오사카 유지 교수, "독도는 조선 땅" 고문서 공개

“일본의 독도 편입 주장은 속임수” 지적

“일본이 1905년에 독도를 강제적으로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배경에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도명 혼란과 법을 교묘히 이용한 침략적 행동이 있었다.”

<일본 고지도에 독도 없다>라는 책으로 일약 ‘독도 지킴이’로 알려진 오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가 15일 한 국내학술대회에서 거듭 “일본의 시네마현 독도 편입사는 당시 지명 혼란을 이용한 은폐와 왜곡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4년 귀화한 오사카 유지 교수는 도쿄대 공학부를 졸업한 이후 2001년부터 한일 근대사에 천착해 국내 학계에서는 취약한 일본의 고문서, 고지도 중심의 연구를 계속해왔다.

그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연구가 상당히 왜곡되고 은폐된 반면 한국은 많은 자료에도 불구하고 일본 학계의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한일 양쪽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일본의 독도점유권 주장 이해하려면 메이지 시대 도명 혼란 이해 필요”

유지 교수는 15일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소장 이재형)가 주관한 ‘독도문제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 학술대회에서 ‘독도와 울릉도를 조선 영토’라고 밝힌 1877년 태정관 지령문을 중심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태정관은 메이지 시대에서 내각의 역할을 했던 당시 막강한 권위를 갖고 있던 기관. 유지 교수가 지난 5월 최초 공개한 1877년 메이지 시대의 공식문서가 바로 태정관이 ‘독도는 한국 땅’임을 공식으로 인정한 문서다.

유지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 내무성은 전국지도를 만들기 위해 일본 전국의 지적조사를 각 현에 지시했다. 이때 시네마현은 당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위치하던 울릉도와 독도를 지적 조사에 포함시킬 것인가를 내무성에 문의했고 내무성은 태령관에 자문을 구했다.

이에 태령관은 자체 조사에 나섰고 1877년 3월 29일 내무성에 “다케시마 외일도는 1699년에 조선과 구 일본정부(에도막부)간에 왕래가 끝나 본방(일본)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명심할 것”이라는 내용의 지령문을 내려 보낸다.

1877년 태정관 지령문 “울릉도와 독도 조선 땅임을 명심하라”

당시 일본 내각이 직접 다케시마(울릉도)와 외일도(독도)가 에도막부 시절부터 일본영토가 아니었음을 확인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그로부터 18년 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된 조선의 불안한 정국을 틈타 독도를 무인도로 규정하고 원래 울릉도의 명칭이었던 다케시마를 독도의 일본 명으로 정해 시네마현으로 강제편입시켰다.

유지 교수는 이 같은 일본정부의 독도 편입을 ‘메이지 시대의 잘못된 서양 지도로 인한 도명 혼란’과 ‘강화도 조약, 조일양국통어규칙’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메이지 시대 초기의 일본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도명에 혼란을 일으켰다. 17세기 유럽에서 유입된 지도에는 일본과 조선 사이에 세 개의 섬이 기록되어있다.

유럽인들이 울릉도를 중복으로 기재해 일본인들은 울릉도와 독도를 다케시마, 마츠시마로 혼용해 기재하는 지도를 작성하는 등 두 섬에 대한 정확한 지명을 확립하지 못했다.

유지 교수는 “한때 유럽지도와 일본지도에는 세 개의 섬이 중복으로 명시되는 등 일본인들에게 혼란을 야기했다”며 “이 사실은 일본이 17세기 중반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일본정부의 견해가 허구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일본인들의 지명 혼란은 1905년 일본 정부가 1877년 당시의 공식문서를 철저히 무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된다.

1880년 이후 일본은 울릉도를 다케시마라는 지명 대신 마츠시마로 바꿔 불렀고 독도를 량꼬토라고 부르는 습관이 정착됐고 이를 빌미로 독도를 일본의 고지도에 존재하는 다케시마라고 이름 붙였다.

지명의 혼란을 이용해 독도를 고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섬으로 전락시키고 무인도로 규정한 후 자신들이 익숙했던 지명을 붙임으로써 마치 일본에 의해 처음으로 영토를 인정받는 섬으로 만들어 버린 것.

또한 1876년에 일본이 강제체결한 강화도 조약은 동해지역을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만들어 국제법상 실효지배 행위에 해당하는 측량행위를 가능케 했다.

유지 교수 “독도는 법적 문제에 앞서는 역사적 문제”

유지 교수는 “당시 일본정부는 강화도 조약 체결로 인한 사실상의 동해 강점상태를 이용 이름만 교묘히 바꾸는 속임수를 통해 독도를 강제 편입시킨 것”이라며 “이것이 침략과정에서 독도가 일본에 불법 편입된 진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본이 최근 들어 펴내는 독도 관련 연구서에는 독도의 조선 영토를 정부 차원에서 확인해주는 1877년 태정관 공문서나 내무성 공문서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유지 교수는 이에 대해 “일본 정부의 주도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두 문서를 은폐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05년의 일본의 독도편입을 논리적으로 굴복시킬 수 없다면 독도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대립을 완화시킬수 없다”며 “악법을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 일본에 대해 우리는 법적인 문제에 앞서 역사적 문제임을 강조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역사적 문제를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의 이면에 숨어있는 일본인들의 악법을 이용한 침략행위, 현재의 은폐.왜곡 행위를 정확히 따질 때 일본은 자신들이 저지른 한반도에 대한 약탈행위의 사실에 눈 뜨고 더 이상의 영유권 주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최병성 기자 (1895cbs@views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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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암석이 아니라 섬이다


일본 도쿄에서 12일 시작된 한일 간 동해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 획정 협상에서 우리 측은 기존 울릉도 기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독도 기점을 원칙으로 일본 측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정부의 독도 기점 주장은 지난 4월 독도 인근 수역에서 무허가로 해양과학 조사라는 명분의 구체적 행동을 하는 등 일본 측의 도발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며, 이번 기회에 독도 영유권에 대한 쐐기를 박겠다는 의도다.

영유권 분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용한 외교’를 내세웠던 기존 입장을 바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독도를 EEZ 기점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국제법적 판단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갖지 아니한다’는 유엔 해양법협약 제121조 3항이 기준이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독도는 ‘암석’일까, ‘섬’일까? 일단 독도에는 '인간'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독도경비대 37명이 상주하고 있고, 김성도 씨 부부가 계절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또한 주변 어업자원이 풍부한데다, 소량이지만 서도에서 식수로 가능한 물이 나오고 김씨 부부가 이 물을 사용한다는 점 등은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근거다. 독도를 섬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독도 면적 18만7000여㎡에 남해 도리시마 면적은 50㎡ 불과

더군다나 해외의 사례를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서임에도 불구하고 EEZ 기점으로 활용한 경우가 적지 않다. 2004년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볼즈 피라미드(Ball's Pyramid)가 호주 EEZ 기점으로 인정됐으며, 1983년 피지의 모래 산호초 역시 기점으로 인정된 바 있다.

이런 사례들에 비춰 훨씬 환경이 좋은 독도가 독자적 EEZ 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독도 기점 사용과 관련된 일각의 우려는 제주도 남부에 있는 도리시마(鳥島)와 단조군도(男女群島)를 EEZ 기점으로 삼으려는 일본 측의 의도를 정당화시켜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는 EEZ 경계 획정의 원칙을 따져봤을 때 너무 앞서간 추측이다. 기점 문제는 해당 지역의 지리적ㆍ환경적 특성이나 재원 등을 갖고 결정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독도를 기점으로 삼는다고 해서 다른 해양의 암석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더군다나 도리시마의 경우 18만7000여㎡에 달하는 독도의 규모에 비해 크게 작은 50㎡ 크기의 암석일 뿐이다. 독도와는 비교 자체가 곤란할 정도다.

대전대 이창위 교수는 “거꾸로 독도 기점을 사용치 않는다고 해서 일본이 다른 쪽 바다에서 같은 원칙을 적용하지는 않는다”며 “이번 협상에서는 동해만 생각하면 된다. 동중국해나 서해의 경계 획정은 완전히 별개인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너무 조급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발표한 독도독트린을 협상 근거로 삼아 꾸준히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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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울진군 죽변에서 동쪽으로 약 215km,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약 92km 지점에 있다. 동도(東島)와 서도(西島)를 비롯한 36개의 부속섬과 암초를 포함한 총면적은 0.186㎢이다. 동해에서 분출한 화산섬으로 울릉도의 지질구조와 비슷하며, 상부는 조면암과 응회암, 하부는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

동도와 서도는 폭 110~160m, 길이 330m인 물길[水道]을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다. 동도는 최고봉이 88m로 비교적 경사가 급하며 북쪽 사면에 2개의 화구 흔적이 있는 반면, 서도는 최고봉이 174m로 산정이 비교적 뾰족하다. 해안은 대부분 암석해안으로 가파른 해식애와 넓은 파식대지, 점점이 산재한 암도(岩島 : sea stack의 일종) 등이 발달되어 있다. 특히 동도의 동남쪽에는 많은 해식동(海蝕洞)과 수중 아치가 있으며, 서도의 북쪽과 서쪽에는 파식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기후는 해풍이 심한 해양성기후로 연평균기온은 연중 영상이며, 강수량도 연중 고르다. 소나무과·노랑덩굴과·장미과 등 목본식물 3종과 명아주과·비름과·질경이과 등 초본식물 50여 종이 자생한다. 조류로는 바다제비·슴새·팽이갈매기·황초롱이·물수리·노랑지빠귀 등이 서식하며, 철새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특히 바다제비·슴새·팽이갈매기 등의 번식지는 천연기념물 제 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곤충류로는 잠자리·집게벌레·메뚜기·매미·딱정벌레·나비 등 37종이 있다. 그러나 육상포유류는 전혀 없고, 1973년 육지에서 가져간 토끼가 번식하고 있을 뿐이다. 연근해의 표면수온은 3~4월에 10℃ 정도로 가장 낮고, 8월에는 25℃이다. 북한해류가 이 섬 부근에서 선회하며, 쓰시마 해류(對馬海流)는 더 북상하여 선회한다. 표면수의 염분농도는 33~34%로 비교적 높고, 표층산소량은 6.0㎖, 투명도는 17~20m로 상당히 맑은 수역이다. 또한 한·난류가 교차하며, 플랭크톤이 많아 회유성 어족이 풍부하다. 특히 오징어·명태·대구·상어·북낙·고래·연어·송어 등이 많이 잡히고, 미역·다시마·전복·소라 등이 채취된다. 주민으로는 울릉도에 살던 최종덕(崔鍾德)이 1965년부터 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지금은 그 후손이 살고 있다. 1947~81년까지 제4차에 걸친 종합조사를 통하여 지질·지형·생물·토양·해양·인문 등이 밝혀졌다
행정구역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에 속한다. 동경 131°51'~131°53', 북위 37°14'00"~37°14'45"에 위치한다. 옛날부터 삼봉도(三峰島)·우산도(于山島)·가지도(可支島)·요도(蓼島) 등으로 불려왔으며, 1881년(고종 18)부터 독도라 부르게 되었다. 이 섬이 주목받는 것은 한국 동해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이라는 점도 있지만, 특히 한·일 양국간 영유권분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는 울릉도 동남쪽 87.4km, 일본의 오키섬에서 북서쪽 157.5km 떨어져 있으며,
독도좌표(동도기준)는 동경 131˚52'10.4", 북위 37˚14'26.8"에 위치하고 있고
울릉도에서는 맑은 날 독도를 직접 볼 수 있으나 일본 오키섬에서는 불가능하다.

한편 우리나라 동해안에서의 최단거리는 울진군 죽변에서 동쪽으로 216.8km로 한국의 섬 가운데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으로 한국 영토의 동쪽 끝이다.

독도 주소는 2005.9.21 일자로 경북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분번포함 총101 필지)로 변경되었으며, 대표지번으로 독도경비대가 30-2번지, 주민 김성도씨의 거주지는 20-2번지이다.
또한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는 2003.1.1 독도에 우편번호 '799-805'를 부여하였다.

전체면적은 187,544m²(동도 73,297m², 서도 88,740m², 부속도 25,517m²) 101필지이며, 주변 도서수는 89개이고, 해양수산부 소유의 국유지이다.

 


<'독도는 우리 땅' 듣기>

<'노래로 배우는 독도' 바로 가기>

박인호 작사 작곡, 전경란 편곡에 정광태 씨가 노래한 '독도는 우리 땅'은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환경적 배경을 설명하고, 역사적 근거를 예로 들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외치고 있다. 최근 네티즌들의 블로그 등에서는 이 노래를 자주 들을 수 있는데, 그와 함께 가사를 통해 독도에 대해서 배워보는 '노래로 배우는 독도' 페이지도 인기를 끌고 있다. 노래 가사를 읽어보고 그와 관계된 문제를 통해 독도에 대한 의미들을 되짚어 보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