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1000원권 뒷면 그림 ‘미스터리’
도산서당? 계상서당?
한국은행이 새로 발행된 1000원권 지폐에 실린 겸재 정선의 그림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의 실제 장소가 어느 곳인지 아직까지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실한 고증작업으로 ‘어디를 그린 것인지도 모르는’ 그림을 지폐 도안에 사용한 셈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월 지폐 도안 확정 과정에서 그림 속의 장소를 ‘도산서당’이라고 못박았다가, 정작 지난 22일 지폐를 발행하면서 별다른 설명 없이 그림 속의 모습이 ‘계상서당’이라고 말을 바꿨다.
한국은행이 그림 속의 장소를 바꾼 것도 자문위원회의 지적 때문이 아니라 한 네티즌이 블로그에 올린 글이 단서가 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새 지폐 도안을 지휘했던 한국은행의 한 간부는 “도안을 결정할 당시에는 그림 속의 장소가 도산서원의 전신인 도산서당으로 알고 있었다”며 “이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고서야 연대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겸재의 그림이 실린 서첩에 “그림 속의 퇴계가 ‘주자서절요’를 집필하는 모습”이라고 소개돼있는데, 집필 당시는 도산서당이 지어지기 전이라는 것. 따라서 단양, 풍기군수에서 물러나 낙향한 직후 세웠던 계상서당이 맞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새 지폐를 발행하면서‘계상서당’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이 과정에서도 구체적인 고증작업을 벌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은행 발권정책팀 관계자는 퇴계 종택 인근에 계상서당이 복원된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퇴계 문중의 관계자와 계상서당 복원에 참여했던 건축가 김경호씨 등은 “퇴계의 주자서절요 집필 연대로 보면 ‘계상서당’이 맞겠지만, 겸재가 퇴계 사후 170여년 이후에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과 그림 속의 지형을 감안해보면 도산서당을 모델로 삼은 것이 확실해보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측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앞으로 고증작업을 더 벌여서 그림 속의 장소를 정확하게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은행의 신권 발행과 관련해 1만원권의 뒷면에 새겨진 ‘혼천의’가 우리의 독창적인 과학창조물이 아니라는 논란이 빚어졌으며, 지난해 1월부터 유통되는 5000원권도 뒷면의 신사임당 그림의 소재인 과일이 외래종이어서 적합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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