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동물·곤충/심해생물·바다류

[과학이야기]똑똑한 고래, 이유 있었네

사오정버섯 2007. 6. 26. 11:41

                         [과학이야기]똑똑한 고래, 이유 있었네

 

2007년 6월 4일 (월) 14:49   뉴스메이커

[과학이야기]똑똑한 고래, 이유 있었네

바다에서 가장 똑똑한 동물은? 고래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고래에 좀 더 관심이 많다면 범고래 등 구체적인 종이 나올 것이다. 영장류보다 똑똑하다는 고래가 실제로 인간과 같은 종류의 뇌세포를 가졌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뉴욕 마운트 시나이 의대의 패트릭 호프 박사는 “영장류의 뇌에서만 발견되던 방추세포가 고래에서도 발견됐다”고 과학학술지 ‘해부학’에 최근 발표했다. 방추세포는 긴 실 꾸러미 모양의 뇌세포다.
 

 

                                                 힘차게 유영하는 돌고래. (남호진 기자)

 

                  

                                           서해 연안에서 촬영한 범고래. (경향신문)

 

이 세포는 사랑과 고통 같은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빠른 반응을 하도록 돕기 때문에 복잡한 사회활동을 하는 데 중요하다. 호프 박사가 여러 종류의 고래 뇌를 조사한 결과 혹등고래, 참고래, 향유고래, 범고래의 대뇌피질에서 이 세포가 발견됐다. 고래가 왜 영장류만 가진다는 ‘사회 세포’를 갖고 있는 걸까. 자세한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이 세포 덕분에 먹이를 사냥할 때 서로 작전을 짜고 협동하는 행동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사냥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사회 행동이 가능할 것이다. 고래가 똑똑한 것은 역시 이유가 있다.

한 달 동안 안 자는 새끼 고래

똑똑하다는 점 외에도 고래는 재미있는 행동을 많이 한다. 가장 큰 포유동물로서 바다에서 산다는 점이 제일 신비롭지만 잠수 능력도 탁월하다. 해면 위로 올라와 충분히 산소를 들이마신 뒤 2시간 정도는 끄떡없이 3000m까지 잠수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가 있다. ‘잠 안 자기 동물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다. 범고래와 큰돌고래의 갓 태어난 새끼는 무려 한 달간 잠을 자지 않는다. 보통 포유류는 태어난 직후에 가장 오랫동안 잠을 잔다. 잘 때 성장호르몬도 많이 분비해야 하고 깼을 때 얻은 정보를 자면서 뇌에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새끼 고래가 잠을 자지 않는 걸까. 새끼 고래는 태어나자마자 물 속에 있기 때문에 해면 위로 올라가 첫 숨을 쉬지 못하면 죽어버린다. 그래서 탯줄이 끊어지면 본능적으로 해면으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 제롬 시겔 박사팀이 새끼 고래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한 달간 잠을 자지 않고 어미의 뒤를 좇아 해면 위로 3~30초 간격으로 올라갔다. 대형 수조에서 임신한 범고래와 큰돌고래 여러 마리를 풀어 넣고 새끼가 태어난 후 1년까지 이들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였다.

새끼 고래는 불면증에 시달릴 때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양을 측정하자 건강한 어른 고래와 유사했다. 한 달 동안 자지 않아도 스트레스가 별로 없는 셈이다. 고래 학자들은 새끼고래가 한 달이나 잠을 자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혹시 눈을 뜬 상태로 설잠을 자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고 있다.

소설 ‘모비딕’에서는 배를 머리로 받아 침몰시킨 향유고래가 나온다. 실제로 향유고래는 박치기왕으로 불릴 만하다. 향유고래의 이마에는 두 개의 거대한 기름주머니가 들어 있다. 윗주머니는 향유고래의 특징인 향기 나는 기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아래 주머니는 더 밀도가 높은 기름이 들어 있고, 딱딱한 콜라겐으로 여러 층이 나뉘어 있다.

미국 유타대 데이비드 캐리어 교수팀이 시뮬레이션 실험을 한 결과 두 개의 기름 주머니가 충돌시 자동차의 에어백처럼 향유고래가 받는 충격을 줄여준다는 것이 밝혀졌다. 향유고래에서 기름주머니를 포함해 박치기를 하는 머리 부분은 전체 무게의 4분의 1을 차지했으며, 전체 길이의 3분의 1이나 됐다. 캐리어 교수는 “소설 ‘모비딕’에서 작살을 맞은 향유고래의 분노의 박치기는 선원들을 바다의 무덤으로 보낼 만큼 위력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향유고래는 박치기에 유리한 몸이 됐을까.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서다. 수컷 향유고래는 암컷보다 기름주머니가 더 크며, 짝짓기를 할 때 수컷끼리 박치기로 승부를 겨룬다. 기름주머니가 크면 치열한 짝짓기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축구선수는 헤딩을 잘 하면 골을 넣지만, 향유고래는 아내를 얻는 것이다.

노래 부르는 고래

고래는 똑똑하고 박치기도 잘 하지만 더 즐기는 것은 노래다. 특히 혹등고래는 길고 다양한 노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곡은 10~15분이나 계속되는데 흑동고래는 이 노래를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부른다.

혹등고래의 노래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리듬감을 갖고 있으며 교향곡에서 타악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같은 음조의 소리를 사용한다. 고래는 기본 테마를 변조해 후렴구를 반복하는 긴 음악도 만들 수 있다. 고래가 좀 더 똑똑해지면 고래의 ‘캐논변주곡’이 나올지 모를 일이다.

혹등고래는 음악을 기억하고 학습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인도양의 혹등고래가 호주 서부해안으로 이동했다. 3년 뒤에 그곳에 살던 고래 모두 전에 부르던 노래 대신 인도양 혹등고래의 노래를 했다. 인도양에 퍼져 있던 고래 노래가 호주의 노래보다 더 아름다웠나 보다.

그러나 최근 인간이 바다에서 만드는 거대한 소음이 고래의 노래를 파괴하고 있다. 상업용 배, 군함과 잠수함, 군사용 수중음파탐지기, 탄성파 탐사 등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이 고래가 보내는 신호와 섞이면 고래에게 혼란을 준다. 가끔 고래가 해안으로 올라와 죽는 경우가 있는데 원인 중 하나가 군함에서 나온 초음파로 꼽히고 있다.

고래와 하마는 친척

그렇다면 고래의 조상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노스이스턴 오하이오의대의 한스 테위센 교수팀과 미시간대 필립 깅리치 교수팀은 파키스탄에서 고래의 조상으로 보이는 화석을 발굴해 2002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약 5000만 년 전에 살았던 이 화석은 소, 돼지, 하마 등과 같이 발굽이 갈라진 초식 우제류에 속하는 동물이다.

이 화석은 두개골의 귀 동공과 이빨의 구조가 고래와 비슷했다. 일반적인 육상동물과 달리 두 눈의 간격이 좁고 주둥이가 길며 발달한 긴 꼬리를 갖고 있었다. 이와 함께 네 다리를 가졌으며 우제류의 특징적인 발목뼈 구조를 보여줬다. 과거 이뤄진 DNA 조사에서도 고래와 하마가 같은 조상에서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고래 화석은 1300만 년 전 살았던 돌고래의 화석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 임종덕 박사가 2005년 발표했다. 길이 7㎝, 폭 5㎝인 돌고래 주둥이 위턱의 일부며 돌고래 전체 크기는 약 2m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 기자〉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