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유적지 그 최후의 도시
잃어버린 잉카문명을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 마추피추
마추피추는 쿠스꼬에서 우르밤바 강을 따라 114Km 내려간 지점에서 400m 높이 표고 2,280m의 산정에 자리잡고 있다. 마추피추 주위는 높이 솟아 있는 산들과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우르밤바 강 유역은 열대우림이 무성한 정글로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고, 공중에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어 '공중도시'라고 불리고 있다. 공중에서 본 맞추피추의 총면적은 5㎢이며 절반 가량이 경사면으로 되어 있다.
유적 주위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으로 견고하게 만든 요새로 둘러싸여 있으며, 유적의 가장 오래된 부분은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으며, 적어도 잉카 이전일 것이라고는 추정하고 있다. 마추피추는 크게 농경지, 도심, 종교지역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의 역할에 맞게 건물과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종교지역은 수천 피트 아래의 우루밤바 계곡이 내려다 보이는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스페인 정복 후 쿠스코나 다른 도시는 전부 파괴되어 잉카의 건축양식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잉카 시대의 잃어버린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유적지인 마추피추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건기인 6월부터 9월까지는 하루에 천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세계적인 관광지이다.
1983년에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추픽추의 언덕
페루 남부 쿠스코시 소재하는 페루 남부 쿠스코시의 북서쪽 우루밤바 계곡에 있는 잉카 유적지. 주위를 둘러싼 뽀족한 봉우리들이 마추픽추를 외부 세계와 격리시키고 있다.
마추픽추의 오두막
잉카시대 마추픽추에 있는 주택은 직사각형에 마름돌로 지어졌고, '파칠라'라고 부르는 조그만 돌들이 쐐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주거형태는 지금도 페루원주민 케추아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우루밤바강과 화강암 절벽
잉카문명의 유적지로 계곡에는 600mm나 되는 화감암 절벽들이 도처에 있어 마추픽추를 둘러싸고 있다
마추픽추의 계단식 대지
잉카(Inca)
잉카 족은 수레바퀴나 간단한 문자조차 갖고 있지 않았지만 15세기 경에는 로마제국에 견줄만한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였다. 1533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멸망시켰으나 잉카의 잔존자들은 안데스 산맥의 대서양 기슭에서 50년 이상이나 저항했다.
잉카 신화의 특징은 통치자의 통치의무를 강조하는 점이다. 인티 신은 인간의 곤궁과 후진성에 대한 연민 때문에 자기의 아이들(잉카 족)을 지상에 내보냈다.
잉카 태양의 신전(페루 마추피추) | 잉카,마야신전
페루 마추피추 잉카 문명 유적지(신전 군)
마추피추는 쿠스코에서 112km 떨어진 곳에 해발 2400m 높이의 산봉우리에 만들어져 있다. 아마존 강의 원류인 우루밤바 강 위의 절벽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총 면적은 40만km 2 이고 약 1만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과 가파른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1964년 미국의 고고학자 진 사보이는 이 지역의 전모를 파헤쳤다. 빙엄의 발굴보다 넓은 양 끝이 약 1km에 이르는 건물들을 찾아냈으며 여러 결정적인 증거도 발굴해냈다.
1988년 탄소동위원소 연대측정을 통하여 잉카제국이 형성되기 6백년 전인 서기 800년에 정착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히함 비프만은 "마추피추는 잉카문명의 전단계로 잉카의 기원이며, 1300년경 버려진 것을 스페인 침공을 계기로 망코 잉카가 재점유하여 1543년경 다시 건설하였다. 마추피추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층계와 높은 방호 벽, 그리고 수로에 의하여 북부와 남부의 두 부분으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고지대 농업지구와 저지대 농업지구가 있고, 북쪽은 도시구역이다. 도시구역은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서부 도시구역인 하난(Hanan)과 동부 도시구역인 후린(Hurin)으로 나뉜다.
서부도시구역이 주로 사원, 왕궁, 탑, 그리고 귀족계급을 위한 권위적이고 종교적인 건물이 세워진 반면 동부도시구역은 일반대중들을 위한 주거와 작업장 그리고 거주민의 통제를 위한 건물군으로 계획되었다. 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에는 통나무다리가 있는데 적군이 침입해 오면 이 통나무를 치워 길을 끊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지붕없는 집, 산비탈의 계단식 밭,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 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마추피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가 몇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마추피추의 건축물에서 가장 특이하고 기이한 형태로 모든 건물에 벽감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결같이 사다리꼴 형태로 위보다 아래가 넓은 안정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큰 것은 미라나 사제들의 물품을 보관하는데 사용되었고 작은 것들은 가정의 우상이나 일반 물건을 놓았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확실하게 그 용도가 규명되지 않았다
마추피추 태양의 신전
태양을 숭배했던 잉카인의 도시답게 마추피추 가장 높은 곳에는 '인티와타나'란 해시계가 자리잡고 있었다. 커다란 돌을 깎아 만든 해시계는 사각형으로 다른 지역에서 보았던 해시계하고는 사뭇 달라 보인다. 마추피추의 해시계가 사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는 까닭을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하고 있다. 하나는 태양이 모서리를 지날 때를 기준으로 시간을 측정하였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각 면은 동서남북의 방향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도 추측일 뿐이다. 해시계가 정확한 물증이 없는 반면 잉카 인들은 태양력을 사용하고 농경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는 증거는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잉카 인의 달력에 의하여 확인되고 있는데 잉카 인들은 5월에는 수확을, 6월엔 태양의 축제를 그리고 8월에는 파종을 실시했다는 자료가 남아 있다. 마추피추에서 가장 중요시했던 장소는 태양의 신전이다. 잉카 최후의 왕국이었던 쿠스코에 있는 태양의 신전과 흡사하다. 수많은 문과 구멍으로 이루어진 태양의 신전에서조차 가장 주목받는 장소는 신전 입구에 있는 독사의 통로로 어느 방향에서 물건을 넣어도 빙글빙글 돌아 반대편으로 빠져나간다
마추피추 태양의 신전
태양의 신전으로 사용된 탑과 2층 주택, 왕궁이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태양의 신전이 원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곳도 태양의 신전이라 불린다. 마추피츄에서 유일한 원형 건물이다. 이 건물의 지하에는 여러개의 제단이 만들어져 있고 미이라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곳을 왕의 무덤이라고 한다
태양신전 아래의 왕의 무덤
신전의 벽은 아주 잘 다듬어졌다. 그곳에는 두개의 창이 있는데 이 창의 각 구석에 하나씩 총 네 개의 상징적인 창이 있다. 이 창의 하나는 동쪽을 다른 것은 남동쪽(인티 뿐꾸 쪽)을 향해있다. 동지(7월 21일:여기는 남반구) 해뜰 무렵 태양 빛이 정확하게 동쪽 창을 통하여 비추고, 하지(12월 21일)에는 역시 남동쪽의 창을 통하여 비춘다
태양을 묶는 돌 (해시계)
태양의 광장에 있는 인띠와탄(태양을 묶는 기둥)이다. 이 기둥은 큰 바위를 조각하여 만든 기둥과 더불어 동짓날 떠나가는 태양을 붙잡기위한 기둥이라고 한다
마추피추 콘돌(철새, 기러기 모양)의 신전
마추피추 콘돌의 신전
바닥에 있는 돌의 모양은 마치 모이통에 부리를 넣고 있는 닭머리 형상의 납작한 바위가 있고, 그 뒷쪽에 솟아 있는 커다란 바위의 모습은 마치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이곳을 콘돌의 신전이라고 한다. 그 바위 아래는 지하로 내려 가는 계단이 있는데 마치 지하감방처럼 만들어 졌다하여 '감옥'으로 불리운다.글쓴이 : zoomlove
추가자료입니다
인티와따나. 태양신을 숭배하는 잉카인들이 태양을
잡아 매어 두는 기둥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런곳을 보는대로 파헤치고 파괴하였다
그러나, 마추피추의 인티와따나는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이 여기 까지는 한번도 와보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마추피추는 잉카문명의 상징이며, 세계의 대표적인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마추피추(2280m)는 옛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3360m)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안데스 산맥의 협곡을 따라서 3시간 거리에 있다
신비한 잉카문명의 극점이라고 표현되는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피추는 미국의 탐험가 하이람 빙엄에 의해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문헌에 희미하게 언급된 단서를 바탕으로 마추피추가 단지 신화속의
얘기만은 아닐것이라는 신념하에 탐험을 하여, 이를 극적으로 발견한
이래 수많은 연구와 탐험이 진행 되었으나 아직도 의문에 쌓인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계단식 농경지. 그들은 물을 계곡 아래에서 끌어다 쓰는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비가 많이오는 우기때는 물을 저장해 두는
기술도 갖고 있어서 넓은 농경지를 경작할수 있었다
삼면으로 둘러 쌓인 신전. 제단은 저 멀리 높은 곳에 보인다.
삼면으로 둘러쌓인 신전의 한쪽면. 저 멀리 만년설에 쌓인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가 보인다
종교적 제례목적에 쓰인 평평한 거석
커다란 창문이 세개 뚫려 있는 신전
잉카인들은 험준한 안데스 산맥의 협곡에 있는 한 봉우리 위에
제대로된 도시를 건설하여 생활을 하였다. 협곡 아래의 물을
끌어 들였으며, 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고 신전을 만들어
태양신에 제사를 지냈으며, 귀족들과 농민들이 사는곳이 분리 되어 있었다.
수많은 석조건물들이 용도별로 있었으며, 가축을 기르고,
직조술이 발달 되어 있어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할수 있었다.
마추피추는 침략자 스페인 군대의 살육과 약탈을 피해서
필사적으로 쿠스코를 빠져나온 마지막 잉카의 후예들이
구름속에 둘러 쌓인 봉우리 속으로
숨어들은 슬픈 역사를 간작하고 있는 곳이다
가보고 싶은곳~잉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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